I'll be there for you

왜 나는 <프렌즈>를 좋아하는가?

by jsuika

몇 달 전, 미국인 친구에게 "나 <프렌즈> 완전 팬이야."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난 정말 <프렌즈>를 좋아한다. 넷플릭스 자체도 <프렌즈> 때문에 구독하기 시작했고, 밥 먹을 때마다 <프렌즈>를 보았다. 덕분에 지금은 프랑스어 더빙을 보든, 자막 없이 오리지널을 보든 알아들을 수 있다. (사실 거의 외웠다고 보아야 한다.) 미국인 친구는 내 말에 놀랍다는 반응이었는데 약간 "그렇게 오래된 시리즈를 네가 어떻게 알아?"라는 뉘앙스였다. 하긴 나도 외국인 친구가 "나 하이킥 좋아해."라고 하면 비슷한 반응을 할 것 같다. 하지만... 하지만 프렌즈인걸! 프렌즈를 어떻게 몰라! 어떻게 안 좋아해!!


5월 27일 프랑스 기준 오전 9시 30분에 OTT 플랫폼 중 하나인 Salto에서 <Friends The Reunion>을 HBO와 동시 방영을 했다. (처음 기사를 찾아볼 때는 미국은 LA 기준 0시 1분에 시작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쨌든 여기는 오전 9시 30분부터 볼 수 있었다.) 나는 당연히 새로운 에피소드 공개로 생각했는데 그냥 토크쇼였다. 실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지만 그래도 너무 좋았다. 배우들 따라 같이 웃고 울었다. 그러다 방송이 끝나면서 나는 이런 의문이 하나 들었다.


근데 내가 왜 같이 감동하고 같이 추억하지?

<프렌즈>는 1994년부터 2004년까지 방영된 미국 TV 시리즈이다. 나는 1995년 한국에서 태어났다. 사실 내게 <프렌즈>에 대한 첫 기억은 별 생각이 돌리던 채널 중 하나인 '온 스타일'에서였다. <프렌즈>가 종영하고 1,2년 후로 기억하는데 그날도 나는 별생각 없이 채널을 돌리다 <프렌즈> 마지막 시즌, 마지막 에피소드를 보았다. 레이철이 부츠 끈을 묶고 있었고 로스가 이불 사이에서 고개를 빼는 장면이었다. 도대체 이게 왜 기억에 나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나는 이게 <프렌즈>에 대한 첫 기억이었고 그다음 장면이 기억 안나는 것을 보면 아마 그때 그 장면을 보고 또 별생각 없이 채널을 돌렸던 것 같다. 그렇다. 나는 <프렌즈>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세대는 아니다.


그러나 지금, 2021년, 20대 후반인 나는 <프렌즈> 특별 토크쇼를 보기 위해 아침 9시에 일어나서 플랫폼 어플을 깔고 가입을 한다. <프렌즈>에 진심인 나는 Salto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기 전에 프랑스에서 HBO Max를 보기 위해 VPN을 돈 주고 구매할 생각까지 했었다. 프렌즈! 다시 뭉친 프렌즈라니! 17년 만에 다시 뭉친 그들을 보기 위해 이런 노력(?)을 하는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라 자신한다. 아니, 미국도 아니고 한국에서, 한창 방영 중이던 90년대 후반~00년대 초도 아니고 2021년도에, 1020을 타깃으로 한 SPA 브랜드에서 <프렌즈>와 콜라보를 했다. 이것은 무슨 의미겠는가!


<프렌즈>를 프랑스에서 보기 위해 구글을 미친 듯이 뒤지던 와중에 '르 몽드'에 실린 <Friends The Reunion> 관련 기사를 하나 발견했다. 사실 <프렌즈> 속 농담들 가운데 성차별적이고 호모 포비아적이며 외모지상주의가 다분히 느껴지는 농담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브래드 피트가 출연했던 시즌 8의 에피소드 9에서 태국에서 온 교환 학생의 이름을 우스꽝스럽고 과장되게 발음하며 희화화하는 장면이 있었다. 대부분이 백인 미국인이었을 제작진, 관객들에게는 별 의미 없는 코믹한 장면이었겠지만 외국에서 살고 있는 (심지어 내 이름도 발음하기도 어렵다.) 나에게는 아시아 단어들을 우스꽝스럽게 발음하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농담들이 떠올랐다. 또 무려 10개의 시즌이 진행되는 가운데 유색인종 캐릭터는 시즌 2의 줄리, 시즌9, 10의 찰리가 유일하다. 이렇듯 <프렌즈> 속 여러 차별적인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종영 이후 지금까지 사랑을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르몽드'는 우선 젊은 시청자들은 시리즈가 제작될 당시 사회 분위기가 오늘날의 것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사회적 맥락이 다르다, 개인적으론 이것은 변명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비슷한 시기에 동성애 관련 시리즈들이 제작되었기 때문이다.('르몽드'도 이를 지적했다.) 어쨌든 여러 차별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 <프렌즈>는 한편으로는 레즈비언 결혼식이나 대리모 등 진보적인 이슈들을 간접적으로 다루기도 했다. 또한 기사는 <프렌즈>가 현대인들의 "doudou" (아이가 안정감을 얻기 위해 껴 앉는 물건)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친구들 간의 깊은 우정과 신뢰를 보며 마음의 안정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 분석에 대해서 매우 공감하는 바이다. <프렌즈>는 우선 시트콤이다. 시트콤은 모름지기 현실적이되 현실적이면 안된다. 물론 모든 콘텐츠들이 다 그렇겠지만 유쾌함을 모토로 하는 시트콤에게 심각하고 진지한 장면은 용납되지 않는다. 진지해질 수 있는 장면들은 최대한 가볍고 심플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결말은 마치 디즈니 영화처럼 언제나 Happily ever after. <프렌즈> 속 세상은 현실이지만 어딘가 현실 같지 않은 환상과도 같다.


10개의 시즌을 거치며 여러 갈등들이 발생했고 크고 작은 사건들이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프렌즈>는 언제나 유쾌했다. 현실적인 문제들은, 예를 들면 조이의 기나긴 백수 생활, 언제나 에피소드의 소재로 짧게 쓰일 뿐 현실적이게 다뤄진 적이 없다. 피비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 역시 마찬가지다. 생각해보면 <프렌즈>가 배경으로 하는 뉴욕의 맨해튼은 전 세계에서 땅값이 제일 비싼 동네이다. 그런데 어떻게 길고 긴 백수 생활을 보내고 있는 조이가 그곳에서 생활할 수 있고, 피비는 어떻게 모니카와 룸메이트로 생활할 수 있었을까? (물론 여기에는 충분히 이해 가능한 캐릭터 설정들이 있지만....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보면 소위 말해 '뉴요커'인 그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뉴요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바쁜 일상은 뒤로하고 언제나 그들은 집에서 같이 저녁을 먹고, 카페에서 늘 수다를 떨며 하루를 보낸다. 유명 레스토랑 주방장, 교수, 배우 등등 잘 나가는 직업군들을 보여주지만 챈들러의 직업을 끝까지 알려주지 않는 것도 어쩌면 뉴요커의 환상을 지키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회사원' 하면..... 환상보단 현실을 먼저 생각하게 되니까... 야근...... 야근.... 야근.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서, 나는 왜 <Friends The Reunion>을 보며 감동하고 왜 그들과 같이 추억을 하는가? 시리즈 속 인물들은 생각해보면 정말 콤플렉스 투성이다. 시즌 2의 피비의 정신과 의사의 분석은 하나도 틀린 말이 없다. 찌질하고 유치하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친구들'과 함께 있는 모습 역시 유치하지 않나? 중학교 때 친구들을 만나면 매번 하는 말이 있다. "우리가 어떻게 27살이냐." 물론 <프렌즈>와 지금의 나 사이에는 맨 처음에도 언급했지만 시간과 공간의 갭이 상당하다. 이야기는 '뉴욕'이라는 환상 속의 도시에서 벌어지지만, 결국 그 안에 모습들은 나와 친구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프렌즈>를 주로 밥을 먹거나 이동하는 지하철 안에서 보았는데 정말 일상의 소소한 순간 속에서 마주하는 자연스럽고 친근한 모습에서 나는 그들과 진짜 친구가 된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시즌이 10개이고 매 시즌마다 에피소드가 20여 개가 되는데..... 그거 다 보고... 마지막 복도 장면 보면 당연히 눈물 나는 것 아니겠어요?


특집 방송에서 제작자 Marta는 <프렌즈> 마지막 촬영 날을 회상하며 그날은 시리즈의 마지막이었을 뿐만 아니라 10년 동안의 관계의 마지막이었다고 말한다. 또 마지막 엔딩에 대해서 그녀는 친구가 내 가족이던 때를 이야기할 때, 만약 '나의 가족'을 갖게 되었을 때 그 이야기는 끝이 난다고 말하며 <프렌즈>의 엔딩은 아주 자연스러운 결말이었다고 말한다. 인생의 테마가 친구에서 가족으로 바뀌었을 때 이전의 테마를 덮어두는 것,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래서 이번 <Friends The Reunion> 토크쇼가 뭉클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인터뷰를 보면서 시즌 1의 8화, 모니카 할머니의 장례식장 에피소드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에피소드 마지막에 멤버들은 할머니의 젊었을 적 오래된 사진을 본다. 모니카는 사진 속 할머니의 나이가 대략 지금 자신들의 나이라고 말을 하고 카메라는 점점 줌 아웃하며 한 프레임 안에 여섯 명의 모습을 담는다. 화면 안에 여섯 멤버들이 모두 자리 잡았을 때 가운데 앉은 로스는 "It looks like fun gang"이라고 말을 하는데, 그때 그들은 서로를 쳐다본다. 마치 사진 속 할머니와 친구들의 모습이 자신들의 모습인 것처럼. 나 역시 마찬가지다. <Friends The Reunion>을 보면서 나와 내 친구들을 떠올렸다. It looks like fun gang. 프렌즈 여섯 캐스트들의 시트콤 속 모습과 현실에서 그것을 추억하는 모습은 서로 바빠 연락하지 못하고 지냈던, 하지만 늘 기억하고 있는 나의 친구들을 생각하기에 아주 충분했다.


<프렌즈> 속 모습은 위에서도 말했듯이 현실보다는 환상에 가깝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 역시 환상에 가깝지 않을까? 기억은 언제나 미화된다. 그리고 미화된 기억은 결국 우리 자신이다. <프렌즈>가 어떻게 아직까지 인기가 있냐고? 결국 그들은 우리의 친구가 되었으니까.


I'll be there for you

cause you're there for me too




... 근데 토크쇼만 하고 끝나는 것은 너무 아쉽지 않아요? ㅠ

엠마 생일 파티 에피소드 내심 기대하고 있었단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