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ger

버닝 모티브

by 김삼류

Hunger

나는 군대를 마치고 회계사 시험에 도전했으나 그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로라하는 수재들이 모인 우리 학교엔 나보다 더 잘난 두뇌를 가진 이들도 많았고 그들도 시험에 허덕거렸는데 대체 나는 군대에서 누가 시키는 일만 해대서 굳어버린 머리로 무슨 자신감이 붙어서 그 시험에 도전했는지 그때의 패기가 가끔씩은 그리워질 때였다. 나는 그 열정을 어디에 쏟아보고 싶었다. 때마침 세상 사람들은 티브이 속 연예인들이 떠나는 여행을 바라보며 가보지 못한 세상을 궁금해했고 서점과 도서관엔 궁금하지도 않은 자신의 여행기를 써놓은 책들이 즐비했다. 거기에 덧 붙여서 모두의 SNS엔 여행 사진이 빠짐이 없었다. 그러니까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은 여행에 미쳐있었다. 그저 부모님을 따라서 패키지여행을 가본 적은 많으나 혼자서 여행을 해본 적은 없었던 내게 배낭여행은 한번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두 달간 과외로 모은 돈과 부모님께서 주신 돈을 보태서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한나를 처음 만난 건 이태리 여행 에서였다. 나는 그때 비포 선라이즈라는 영화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낯선 곳에서의 로맨스를 기대하기도 했다. 그때 나타난 여자가 한나였다. 공대 군대 코스에 고시까지 준비하던 나에게 처음으로 떨어진 행운 같은 기회였다. 원래는 나포함 네 명이 로마 시내 투어를 한 후에 다 같이 밥을 먹기로 했는데 약속했던 남자 두 명이 나오질 않았다. 한 명은 숙소 룸메이트가 밤새 코를 골아 한숨도 못 자 너무 졸리다고 말했고 한 명은 기차 시간을 착각해서 새벽부터 다음 도시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햇살이 좋은 로마의 오후에 서로 어색한 인사를 주고받았다. 날 뚫어지게 쳐다보던 한나는 점심부터 먹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조식을 많이 먹고 나온 후라 배가 그리 고프진 않았지만 그냥 먹자고 말했다. 한나는 나를 지역 피자집으로 데리고 갔다. 한나는 이미 로마에 온 지 7일째라고 말했다. 로마는 볼 것은 많지만 워낙 작은 도시라서 보통의 여행자들은 3일 정도 있는 곳이었다. 나는 한나 에게 왜 그렇게 오래 있냐고 물었다.

“여기 피자가 양이 많고 싸서요.” 동문서답을 하는 한나 에게 나는 한 번 더 물었다.

“피자가 맛있는데 양도 많고 싸요.” 나는 그런 한나가 귀엽게 느껴졌다.

피자가 맛있어서 떠나지 않냐고 묻는 내게 한나는 그것은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한나는 자기 피자를 다 먹고 남은 내 피자까지 모조리 해치웠다. 한나는 크롭 티를 입고 있었는데 한 줌도 안 되는 허리에 그 많은 피자가 다 들어가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한나는 하루 종일 날 데리고 다니며 로마에 대해 설명해 줬다. 콜로세움을 완벽히 복원할 수 있음에도 다시 완벽한 모습으로 복원하지 않는 것은 무너진 그 모습조차도 콜로세움의 역사라고 생각하는 이태리 사람들의 마음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것을 설명한 한나는 콜로세움 앞에서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 사진을 보더니 한마디 말을 덧붙였다.

“같은 배 속에서 나온 것 같아.” 나는 그것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날 저녁 내가 하루 종일 날 데리고 다닌 한나 에게 감사의 의미로 젤라또를 사주며 대화를 나누기 전 까진.

바닐라 젤라또를 고른 날 보며 한나는 비웃었다. 적어도 이태리에 왔으면 과일 맛 젤라또를 먹으라면서 혼냈다. 얼굴을 구기는 모습이 귀여운 고양이처럼 느껴졌다. 한나는 젤라또를 몇 번 먹더니 자신이 젤라또에 들어간 술에 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이 진짜인지 궁금해서 젤라또 가게 주인에게 물어보니 정말 술이 들어가 있다고 말했다. 한나는 부모님이 자신을 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한나의 말을 조용히 들었는데 한나는 갑자기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 말을 이었다. “나는 너무 망가졌는데 부모님은 나를 고치려 하지 않아.” 나는 그냥 그 말을 들어주는 일 밖에 할 수 없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한나의 말에 반박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리고 잘 모르는 여자의 등을 쓰다듬어 줄 수도 없었으니까.

늦은 밤 한나는 나를 호텔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말했다. “오빠는 피부가 너무 하얘서 위험해 보여.” 나는 한나가 같이 자자는 말의 뜻으로 나를 데려다 주는 건 아닐까 생각했으나 진짜 나를 숙소까지 데려다 주고는 한나는 뛰어갔다. 그리고 문자를 남겼다.

“왕자님은 쉬세요.” 나는 그런 한나의 문자에 웃음이 터졌다.


이탈리아 일정 중 로마를 마지막으로 떠나려던 나는 한국으로 가는 티켓을 취소하고 한나의 곁에 더 머물기를 원했다. 로마에서 한나를 만나기 전 나는 피렌체에서 아주 맛있는 로컬 피자를 먹었었고 더불어 피렌체는 활성화된 가죽시장 덕분에 소고기도 유명했다. 음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던 한나를 데리고 다시 피렌체로 떠났다.

한나는 피렌체로 가는 기차 안에서 가벼운 화장을 했다. 원체 피부도 좋아서 예쁜 얼굴인데 화장까지 하니 황홀할 만큼 예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그런 한나를 보면서 피렌체에서의 낭만적인 여행을 상상했다. 립스틱을 한번 더 덧바르던 한나는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오빠 무슨 생각해?” 나는 한나가 무슨 대답을 듣고 싶어 하는지 생각하느라 대답을 놓쳤다.

“섹스?” 나는 한나의 대답에 놀랐다. “보통 남자들은 그 생각만 하니까”

나는 딱히 반박하진 않았다. 하지만 딱히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그것에 대해 생각을 아주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한나는 립스틱을 다 바르더니 날 보곤 웃었다. 그러곤 덧붙였다.

“남자를 꼬시는 건 참 쉬운 일 이야?”


피렌체에 도착한 한나는 짐을 풀기 전부터 피자를 먹어야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런 한나를 피자집으로 데려갈 수밖에 없었다. 한나는 신기 하리 만큼 많이 먹었다. 그런 한나를 보며 나도 모르게 신기한 눈빛을 보냈다. 한나는 자기도 그 눈빛을 느꼈는지 나에게 말했다.

“왜 너무 많이 먹어?” 나는 그런거 같다는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덧붙였다. “근데 살이 안찌냐 신기하다.” 한나는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다고 말했다. 음식이 다 어디로 가는건지 배가 고프다며 피자를 한 판 더 시켰다.

음식을 다 먹은 한나와 나는 피렌체의 거리를 걸었다. 명품들이 즐비했고 곳곳 마다 젤라또가게와 통유리 너머로 이탈리아 전통 디저트인 까놀리를 비롯한 쿠키들이 보였다.

한나는 잠시 젤라또를 먹으며 쉬자고 말했고 나는 힘들어 보이는 한나를 벤치에 앉히고 젤라또를 사러갔다. 한나가 먹고 싶다던 피스타치오 젤라또는 없었기에 그냥 체리 맛을 사서 돌아왔는데 한나는 벤치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그런 한나를 깨웠다.

“이제 아무 곳에서 자냐?” 그런 한나가 신기했다.

“명품이 너무 많아 사람들은 저걸 어떻게 살까?” 한나는 계속 눈을 감고 말했다. 슬슬 짜증이 나던 나는 젤라또를 사왔으니 그만 일어나라고 했다.

“오빠가 차고 있는 이 시계 비싸 보여.” 신기해 이 시계랑 어울리는 남자랑 데이트해서

나는 한나의 손에 젤라또를 쥐어줬다. “두오모에 가자” 한나가 말했다.

“나도 쉬고 싶어 잠깐만” 나는 젤라또를 한입 베어물고는 한나의 어깨에 기대었다.


나와 한나는 두오모로 갔다. 아무래도 “냉정과 열정 사이” 의 배경이 된 도시답게 두오모에는 주인공들의 마음을 체험해 보려는 듯한 관광객들이 줄서있었다. 나는 이미 위에 올라갔다 왔었기에 한나에게 올라가 볼 것을 권유했다. 그러자 한나는 그저 첨탑의 끝을 바라보는게 좋다고 대답했다. 근처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중국인 관광객들과 상인들 그리고 비둘기들을 바라보았다. 한나는 나를 툭툭 치더니 막 웃기 시작했다. 나는 한나가 무엇을 보며 웃는지 잘 이해가 가지않았다. 한나의 시선을 나름 따라가 보니 종탑의 끝가지 올라갔다온 관광객이 숨을 헐떡이며 웃고있었다. “혹시 너 저사람 보고 웃냐?” 나는 신기한 듯 물었다.

“응? 어 저사람 숨 헐떡거리면서 엄지손가락 들면서 좋다잖아.” 나는 그게 대체 왜 웃긴건지 궁금했다. “너 좀 가끔 이상해” 나도 모르게 마음 속에 있는 말을 꺼내고 말았다. 그러자 한나는 그런 소리 자주 듣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저 사람 분명 별로였다.” 한나는 웃음을 멈췄지만 장난끼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뭐가 별로 라는 거야?”

“위에 올라 갔다온 거 분명 별로일거야.”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저렇게 숨 헐떡이면서 좋다고 거짓말 치는 거 내 전문 이거 든”

“응?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오빤 왜 내 직업 안 물어 봐? 별로 티가 안나?” 그 질문에 나는 신기해 했다 지금 까지 나는 한나가 학생인줄로만 생각했으니까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학생아니었어?”

“아니야.” 한나의 얼굴엔 아직도 웃음기가 남아있었다.

“그럼 뭔데?”

“매춘부” 나는 한나의 말에 대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왜 대답이 없어? 매춘부라는 말 몰라? 창녀라고 몸 판다고”

“그걸 왜 지금 말해?” 나는 약간 화가 났다.

“먼저 말할 만큼 자랑스러운 직업은 아니잖아.”

“그러니까 그걸 지금...”

“오빠가 날 좋아하는 거 같아서 좋아하지 말라고” 마지막 대답을 듣고 나는 한나를 두고 일어섰다.


한참을 걸었을 때 한나는 뒤에서 날 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오히려 좋지 않아? 그냥 원하면 한 번 자볼수도 있는데? 아 더러워서 싫은가?”

나는 한나의 말에 더 이상 말을 섞을만한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다시 뒤를 돌았다. 한나는 계속해서 같이 걷자며 내 옆으로 따라 붙었다.

“난 오빠랑 자고 싶어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쭉 그랬어”

“장난하냐?”

“그럼 내가 진지해야해?”

“꺼져”


한나는 밤 11시가 넘도록 숙소로 돌아오지 않았다. 유럽의 초가을 저녁은 쌀쌀했고 햇살이 좋은 오후에 입고 갔던 옷으로 돌아 다니기엔 한나는 추울터였다. 더군다나 이태리는 상점들이 문을 일찍닫았고 지금 혼자서 들어가 있을만한 곳도 별로 없었다. 나는 슬슬 한나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피렌체 시내를 미친 듯이 혼자 돌아 다니던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근처 피자집으로 갔다. 한나는 거기서 피자한판을 포장한채로 덜덜 떨고있었다. 나는 그런 한나가 불쌍했고 바보같았다.

“뭐해 일어나.”

“배고파” 이 상황에서 그 소리가 나오는 한나가 짜증났다.

“그럼 숙소가서 그 피자 쳐먹으면 될거아냐”

“왜 짜증내? 오빠가 나 돈 주고 샀어? 오빠가 뭔데” 나는 화를 멈출수없었고 한나를 데리고 호텔로 들어왔다.


호텔 프론트에 엑스트라 베드를 요청하고 한나와 방으로 들어왔다.

“밖에 나가서 와인 마실래? 나 돈 많은데” 내가 한심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한나는 다시 눈길을 돌리더니 피자 포장을 까서 먹기 시작했다.

“그게 들어가냐?” 화가 섞인 질문을 던지자 마자 벨이 울렸다. 엑스트라 베드를 설치하려 올라온 것이다. 남녀 두명이서 자는데 엑스트라 베드를 설치하는 것이 신기한 듯 직원은 우리둘을 쳐다봤다.

“침대 뭐야” 한나는 우물거리며 날 쳐다봤다.

“공짜로 자준대도 싫단 놈은 오빠가 처음이네”

“열받게 하지 마라”

“오빠 근데 지금 내 직업 무시하는 거야 그런 행동”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맘 같아서는 다른 방을 하나 잡고 싶었다.

“정당한 노동력 그리고 그것에 상응하는 돈과 고객의 행복 대체 매춘이 뭐가 문제야?”

“그만 하면 안돼냐?”

“꼬실 생각은 없었는데 예쁜 걸 어떡해 그건 내 잘못이 아니잖아.” 한나는 여전히 피자를 먹고있었다. 나는 그런 한나의 팔을 잡았다. 그리곤 우물거리는 입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자 한나는 피자를 꾹 삼키더니 물을 마시곤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자신의 말을 다 들어줄거라는걸 아는 듯이

“아까 그 두오모 첨탑 구름도 못찌르더라? 진짜 의미 없어 신에게 닿기위해 만들어진게 첨탑인데 구름도 찌르지 못해” 그러면서 한나는 내 볼을 찔렀다.

“구름같이 하얗다 오빠”


한나는 내게 인도로 떠날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한국으로 한나는 인도로 갔다.

나는 한나를 만난 게 그냥 꿈이라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빌어먹을 하늘을 쳐다보게 되는날 빼면 그랬다. 볼을 찌르던 한나를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다. 장난기 어린 눈으로 날 보던 한나가 그리웠다. 학교엔 완전해 보이는 사람들만 가득했다. 불안함 같은 건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한나가 더 그리웠는지 모른다. 구조가 어긋난 건물처럼 자꾸 신경 쓰이는 오차 그게 한나였다. 구름이 지나다니는 하늘을 접을 수 없었다. 그럴 때면 눈을 감았다. 그러면 눈을감은 한나의 내면이 궁금해졌다. 그렇게 나는 눈을 감을때마다 한나를 상상했다. 지금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인도일까? 인도라면 대체 어느도시에 있을까? 내가 아는 인도의 도시는 델리밖에 없는데 음식은 잘 맞을까? 아니 이럴거면 인도에 가볼까?


친구는 옆 학교의 여자애를 만나보라는 권유를 했다. 나는 유럽 여행 내내 예쁜 여자와 우연히 다니게 되었다며 친구 놈에게 연락을 꾸준히 했는데 물론 친구는 매춘부였다 라는 사실은 몰랐다. 그래서 내가 한국에 돌아 와서도 혼자서 외롭게 지내는 것이 불쌍했는지 소개팅을 주선했다. 옆학교의 한의학과에 다니는 여학생이었다. 그냥 겉보기에 나랑 어울렸고 딱히 결혼을 생각할 나이는 아니었지만 부모님이 아주 맘에 들어할 것 같은 그런 여자였다. 그러나 맘에 들지 않았다. 한나의 불완전함이 그리워서가 아니라 한나 만큼 예쁘지 않았다. 그래서 그만큼 설레지 않았고 한나 이후에 처음 만난 이성이어서 괜히 더 크게 한나와 비교가 되었다. 그저 한나에 대한 그리움만 확인한 채로 데이트를 마쳤다. 나는 그것이 신기하면서 화가 났다. 너무 찰나의 순간을 알고 지낸 사이였다. 그리고 그때 느낀 것은 나는 한나의 성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23살의 한나 그것이 내가 아는 전부다.


나는 공부를 하고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한나를 내가 사는 세상으로 데려올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매춘부라는 직업을 가졌지만 그것을 과거로 묻어 버리면 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이미 그리움에 취해서 모든 것을 바로 보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었다. 그리고 무서워 지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지우지 않은 한나의 카톡을 바라보았는데 한나가 그저 날 잊고 답장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다시 연락을 하기엔 끝이 나쁜 사이였다.


며칠을 고민한 결과 나는 어디냐는 문자를 하나 보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도록 한나는 내게 답장을 하지 않았다. 기다리는 시간 내내 애가 탄 것이 화가 나서 다시 문자를 보냈다.

“한국에 오면 서로 잘못 한 것 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나는 그것을 마지막으로 보내고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은 마음에 며칠간 메신저 알람을 꺼놓고 누구의 연락도 받지 않았다. 한나는 이미 내 모든 것을 흔들어 놓을 만큼 내 신경을 거슬리게 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영원히 한나를 만나지 못한다면 나는 대체 이 그리움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레포트를 쓰고 친구대신에 강의를 들어 주기도 했다. 여전히 폰을 몇 번 들여다봤지만 답은 오지 않았다. “나쁜 년” 나도 모르게 텅 빈 강의실에서 욕이 튀어 나왔다. 그 순간 답장이 왔다. “배고파” 너무 기뻐 웃음이 나왔고 그 답장이 너무 한나 같아서 좋았다.

나는 재빨리 답장을 보냈다. “아직도 배고파? 넌 뭐가 그렇게 배고파?”

“델리로 와 나랑 놀자” 한나의 답장에 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델리에 도착한 나는 한나가 머무는 숙소로 갔다. 한나는 6인실 숙소에 머물고있었고 숙소의 가격은 3000원이었다. 나는 싼 가격에 놀랐고 그것과 더불어 더 후진 시설에 놀랐다. 나는 한나가 숙소로 돌아 오기를 기다리며 침대에 누워 언제 오냐는 문자를 보냈다. 바로 옆 침대 위에 한나의 배낭이 있었다. 빨간 인형이 달려있는 그 배낭이.


낡은 건물을 울리는 걸음 소리에 귀에 끼려던 이어폰을 뺐다. 철제로 된 경첩이 녹슬어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와 함께 한나가 들어 왔다. 그리고 뒤따라서 머리가 긴 여자도 함께 들어 왔다.


한나는 델리는 별로라고 말했다. 나는 어차피 상관없으니 네가 가는 곳에 따라가겠다고 대답했다. 긴머리 여자의 이름은 서현이었다. 서현은 내일 다른 도시로 떠난다고 말했다. 서현이 가는 도시의 이름은 “레” 였는데 육로가 끊겨 비행기를 타고 올라가야해서 내일 새벽에 공항으로 출발해야한다고 말했다. 나는 의무적인 인사처럼 한마디를 던졌다.

“오늘 만났는데 아쉽네요.”

“어차피 오늘 한나랑 헤어지는 날이라서 아쉬워서 술 한 잔 하려는 같이 하시죠?”

“물론이죠.”

서현은 나랑 동갑이었고 알고 보니 같은 학교 학생이었고 인도엔 교환학생으로 와있는 거라고 했다. 나와 서현은 학교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고 한나는 어느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잠시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고 오겠다고 했고 서현은 같이 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그 옆에서 서현은 쭈그려 앉아 가만히 있었다. 나는 당연히 서현이 담배를 피려는 줄 알고 담배를 한 개비 권했으나 서현은 비흡연자라고 말하며 웃었다.

“담배 안피는데 왜 나왔어요?”

“그냥요 속이 답답하고 쟤랑 같이 있는게 짜증나서요. 그리고 담배냄새 좋아해요.”

“한나요?”

“네 저기에 한나 말고 누가있어요?”

“당연한걸 물었네요.”

“별로인건 맞아요.” 나 조차도 그녀가 왜 한나랑 같이 있는게 짜증나는지 이해할수있을거 같았다. 보고싶어서 그 먼 길을 날아 왔음에도.

“자꾸 특별한 척을 해요 어딘가 독특한 척 나사빠진 척”

“눈 감는 거요?”

“아시네요? 자는 게 아니고 그냥 눈 감고 있는 거”

그건 내가 한나에 관해서 알고 있는 것 중 몇 개 안되는 거였다.

“들어가요”

한나는 눈을 뜨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트들 이다.”

한나는 내일 서현이 떠나는 레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레에 진짜 가고 싶었어. 왜냐 높잖아.” 서현은 지겹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취했냐? 또 얘기하게?”

“응 취했고 그리고 구름이 오빠가 왔잖아.”

“뭐라고 구름이 오빠?” 서현은 놀란 듯이 날 쳐다봤다.

“응 내 첫사랑 구름이 오빠” 한나는 날 가르키며 웃었다.

“취했네 들어가자.”

“뭔소리야 이미 사둔 맥주가 이렇게 많은데!” 한나는 소리쳤다. 인도에서는 식당에서 술을 못 마시기 때문에 우리는 숙소 옥상에서 마시고있었다.

“그래서 대체 네가 레에 안 가는 이유가 뭐야?” 서현은 다 마신 맥주캔을 찌그러 뜨리며 물었다. 그 손 끝에 뭔지 모를 분노가 느껴졌다.

“언니가 뭘 알겠어.” 한나는 눈을 감고 말했다.


나는 술취한 한나를 침대에 눕혔다. 한나는 계속해서 키스 해줘야 잘거라며 소리를 질렀고 그런 한나를 안아서 토닥거리며 재웠다. 많이 취했는지 금새 잠에 들었다.

그 후 나는 다시 옥상으로 올라가 얼굴이 붉어진 서현을 바라봤다. 술 때문에 붉어진 느낌은 아니었다. 나는 그녀가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는걸 알수있었다.

“왜 같이 다닌 거에요?” 나는 진지하게 물었다.

나의 물음에 서현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처음엔 자기도 한나가 무척이나 맘에 들었다고 말했다. 이전 여행지에서 만났던 내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대화가 잘 통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점차 서현이 말을 할 때 마다 한나는 눈을 감았다고 했다. 그냥 어차피 내일이면 헤어질 사이라서 오늘 새로운 사람도 오니까 좋게 끝내려고 했는데 이 사단이 났다고 말했다.

나는 그렇게 서현이 갈때까지 함께 술잔을 들고 이야기를 나눴다.


한나는 숙취에 괴로워 하는 나를 깨웠다. 이미 두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한나는 물티슈로 내 얼굴을 닦아 주기 시작했다. 나는 겨우 눈을 떴고 한나는 내 가방을 뒤지더니 치약과 칫솔을꺼내 내 침대에 던졌다. “방에 우리밖에 없어 키스하자”

나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가이드 북을 보고 있었다. 델리는 나름대로 볼게 많았다. 나는 한나에게 분수를 보러 가자고 말했다. 그러자 한나는 키스를 해주면 가겠다고 말했다. 나는 왜 이렇게 키스에 집착하냐고 물었고 한나는 꼭 묻고싶은 질문이 있다고 했다.


“무슨 생각해?” 한나는 붙어있던 입술을 떼고 물었다.

“글세?” 나는 몸을 살짝 뒤로 빼며 대답했다.

한나는 허리를 숙여 다시 한 번 내게 입맞춤을 했다.

한나는 발기된 성기를 만지더니 다시 진하게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곤 다시 물었다.

“섹스하고 싶다는 생각을 제외하고 무슨생각해?”

“그 생각 말고는 없다면” 내가 말했다.

“그럼 생각이 없는거네”

“넌 무슨 생각을 하는데?”

한나는 다시 입술을 붙였다 떼고는 눈을 감았다. 그러곤 작게 말했다.

“오빠가 좋아”


“세상의 끝으로 밀려난 기분이 들면 난 눈을 감아 그럼 내가 대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게 돼”

“그래서 자꾸 눈을 감는 거니?”

“응 세상의 끝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려고”

한나와 나는 바라나시로 가기위해 기차를 탔다. 나는 내심 타지마할도 보러 가보고 싶었으나 한순간도 한나와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한나의 뒷모습을 볼 때 마다 언제나 한나와 나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고 언제든지 한나와 나의 시공간이 엇갈리면 난 한나를 영영 볼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한나와 나는 비싸지만 2AC좌석을 끊었다. 처음 경험해본 인도의 기차는 신선했다. 워낙 큰 땅덩어리 덕분에 누워서 가는 기차였다. 한나는 굳이 2층인 내 좌석으로 올라와 내 옆에 누웠다. 나는 커튼을 치고 내 품안에 누운 한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나는 내게 또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물었다. “넌 참 예쁘다.” 한나는 알고 있다는 듯이 웃었다.


“오빠는 내게 예쁘다고 말했다. 나는 오빠를 어느 순간부터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면 안 되는 사람인걸 알면서도 좋았다. 끌림이라는 것은 내 멋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나와 오빠가 걷는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언어로 말을 하고 비슷한 음식을 먹고 지겨운 거리를 걸을 때에도 오빠는 나를 예뻐할 수 있을까. 커튼 너머로 들리는 알 수 없는 말들에 오빠는 취한 것이 아닐까?”


바라나시에 도착한 한나는 자신이 계속 연락해 왔다는 인도 남자의 집으로 나를 끌고갔다. 계속해서 호텔을 잡자는 나의 의견에도 한나는 고집을 부렸다. 그런 한나의 모습에 내심 화가 났다. 만일 내가 오지 않았으면 그 남자와 단 둘이서 집에 있는 것일텐데 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었길래 이렇게 용감한 건지 짜증이 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뿐 인상이 아주 좋은 살찐 인도 아저씨가 우리 둘을 맞았다. 남자인 나에게도 너무나 살갑게 인사해 주었다.

나와 한나는 남자에게 나마스테라고 인사했으나 남자는 인사를 받지않고 다시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해 주었다. 그러면서 말을 덧붙였다. 당신들 속에는 신이 존재하지 않아요. 나마스테는 내 안의 신이 당신 안의 신께 인사할 때 쓰는 말이죠. 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신들의 나라 인도에 온 것이 처음으로 실감났다.

그리고 남자의 집에는 남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남자의 부인과 어린 딸 그리고 노모가 있었다. 부인은 이미 나와 한나를 위한 음식을 준비 하느라 혈안이었다. 그리고 어린 딸은 마당에 풀어논 새끼 강아지들에게 밥을 주고 있었다. 한나는 이들은 브라만이라고 설명했다. 인도에서 가장 계급이 높은 집안 사람들 이었다. 그래도 교과서에서 배운 인도의 신분제도 속의 위엄에 비하면 나는 약간 초라하다는 생각을 했으나 일반 인도인들의 삶은 처참 그 자체였기에 그들의 삶은 아주 견고하고 화목한 집안이었다.

남자의 부인은 한나와 내가 있는 방에 인도식 음식을 차려 주었다. 짜파티와 시금치로 만든 인도식 커리 그리고 렌틸콩을 이용한 스프 거기에 감자와 쪽파볶음 까지 고기는 없었지만 정말 맛있게 먹은 인도의 채식 요리였다. 부인은 완전한 비건 베지테리언은 아니었지만 처음 대접하는 만큼 진정한 인도의 음식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고 내일 저녁엔 탄두리 치킨을 대접할 것이니 기대하라는 말도 해주었다. 나는 그런 극진한 대접에 감사해서 처음 남자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것을 마음속으로 심히 불편하고 죄송히 여겼다.

삼일 정도의 시간이 그냥 흘러버렸고 남자의 집을 떠나 우리 둘은 홀린 듯 밤하늘 아래 루프탑에 앉아 있었다. 테이블엔 한식당에서 포장해 온 양념 치킨이 있었다. 염지가 되어있지 않아 뻑뻑했다. 나는 한나에게 물었다. “왜 요즘은 뜬금없이 눈 감는 거 안하냐?”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곤 작은 입술로 말을 뱉었다. “ 까먹고 있었어, 오빠의 존재를” “매일 옆에 있었는데 심지어 같이 자기도 했는데?” 나는 착즙기에 밀어 넣은 채소처럼 온몸에 수분이 빠져버리고 형태를 잃어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한나는 나의 벙찐 표정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 나랑 사귈래?” 나는 더 어이없다는 말투로 반문했다. “ 아깐 내 존재를 까먹었다며, 그리고 너 너무 많이 먹어서 돈 많이 들어서 싫어.” 둘 사이에 약간의 적막이 흘렀다. 숙소 아래층에서 개가 짖었다. 옥상 벽을 타고 원숭이들이 지붕을 뛰어 다녔다. “ 정말 그 이유야?” 나는 답했다. “ 응” 우리의 마지막 대화였다.


다음날 아침 한나는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한나를 찾아 헤맸다. 계속해서 전화를 하기도 해보고 하염없이 바라나시 시내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났고 매일 같이 붙어 다니던 우리를 봐왔던 여행자들이 내게 한나의 안부를 물었다. 여자친구는 어디에 있느냐고 또는 그 예쁘고 피부가 하얀 언니는 어디로 갔느냐고.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냥 나는 한나를 잃어버리고야 말았다. 언제나 그런 일이 생길 것 이라고 예상을 했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알 수 없는 상실감에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반년이 흘렀고 나는 다시 한나의 문자를 받고 인도로 떠났다. “날 잊고 싶으면 띤구의 집으로 와”


나는 마지막으로 한나를 찾기 위해 친절했던 남자의 집으로 갔다. 한나는 거기에 있었다. 한나는 피폐하다 못해 더러운 몰골로 계속해서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는 멀리서도 날카로워 보이는 손톱으로 온몸을 박박 긁었다. 나는 그런 한나의 모습을 뒤로한 채 남자에게 인사를 건내고 인도를 떠났다. 비행기가 인도의 하늘을 벗어날때까지 나는 한나의 말대로 눈을 감았다. “ 눈을 감으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게 된다.” 나는 내가 한나와 같은 인도의 하늘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잊고 싶었다. 그녀의 방법으로 말이다.


띤구 아저씨는 오빠가 날 보고 그냥 뒤돌아 떠났다고 했다. 나는 그것을 원했다. 오빠가 그렇게 뒤돌아 갔기에 나는 이제 맘 놓고 떠날수가 있었다. 띤구는 여전히 나에게 나마스테 라고 인사하지 않는다. 내 속엔 음식물만이 가득하다. 수많은 궁금증들을 해결해줄 신은 내 안에 없었다. 아무리 먹어도 배가 고프다. 나는 그 배고픔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그녀는 몸을 마구 긁었습니다. 가녀린 살결에 생채기가 생기고 피가 흐르고 결국엔 갈색의 딱지가 덮혀 왔죠. 결국 그녀의 온몸은 갈색으로 변했습니다. 마치 장작처럼 말이죠. 나는 그것을 화장터에 팔았습니다. 그걸 산 젊은 남자는 그녀를 전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 했습니다. 그저 노모를 화장시킬 장작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녀는 사라졌습니다. 연기가 되어서 하늘로 날아갔습니다. 그녀는 지금쯤 신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듯합니다. 그녀의 공허한 마음속에 어린 신이 들어오기를 간절히 빌어 봅니다. 나는 그녀를 언젠가 만난다면 반갑게 인사하고 싶습니다. “나마스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