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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Future Writers

by RB Apr 27. 2023

주택살이의 힘듦

송홧가루의 습격

성질 급한 내가 코로나 지원금을 받자마자 한 일은 아직 4살인 아이를 데려다가 자전거를 사주는 것이었다.

어차피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부딪히며 놀긴 글렀으니 코로나 기간 동안 야외에서 마스크를 쓰고 자전거나 연습시키겠다는 나름의 포부.


하지만 아주 작은 문제가 있었는데,

첫째는 엄마도 자전거를 못 탄지 오래라는 것이고, (아빠는 인내심이 없으며)

둘째는 아들은 4살까지 미끄럼틀도 혼자 안타는 아이였다는 점이다.


결국 다리도 잘 안 닿는 상태로 미리 사둔 고급 자전거는 3년간 우리 집 현관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손길이 닿기만을 기다리며 대기 중이다.

아들이 7살이 되도록 킥보드도, 자전거도 안 타서 속이 는데, 이제는 송홧가루까지 수시로 덤비니 내가 봐도 버려진 물건 같다.

얼마 전엔 태권도 가는 길에 이제 자전거를 타고 가자니까 아들이 '저건 너무 더러워. 쓰레기야.'라고 말하고 쌩 가버렸다.

네가 탄다고만 하면 엄마가 다 닦아주려고 했단 말이다!!

제국의 역습보다 무서운 송홧가루의 역습

봄만 되면 송홧가루가 기승이다.

그렇게 청소를 좋아한다고 글을 써놓고 현관이 저게 뭔가 싶어도 정말이지 딱 하루 만에 저만치나 샛노랗게 변한다.

마치 남자들의 군대 스토리 2호, 최전방에서 눈이 내리는데 눈을 쓸고 있는 기분이랄까?

(1호는 멧돼지랑 1:1로 싸운 이야기다.)


가벼운 먼지상태로 날아다니는 게 아니라 살짝 끈적이며 붙어있어서 먼지떨이개로는 택도 없고, 물티슈는 한 박스를 들여야 할 참이며, 다 끌어내다가 고압호스로 밀어버리는 게 최고지만 매번 그러기는 힘들다.

게다가 물에 닿으면 말리는 동안 다시 그 위로 송홧가루가 노란 띠무늬를 하고 뒤덮는다.


주택에 살면서 예상치 못한 힘든 일들이 많았다.

그래도 아이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가깝고, 층간소음 가해자가 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만족하며 살았는데, 송홧가루는 진짜 좀 너무하다.

결국 쿠팡에서 오토바이 덮개를 사다가 오전에 덮어놨는데, 오후에 나가보니 벌써 천이 노랗다.


하... 아무래도 창고에 쌓아 둔 정원용 흙을 내다 버리고서라도 자전거와 킥보드를 안에 넣어놔야 할 것 같다.

눈에서 안 보이면 아들은 더 안 타겠지... 으허엉...


남편한테 시키면 내년 봄에나 해줄 테니 오늘 다 내가 해치워버려야다.

남편의 긴장된 말줄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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