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생의 장소들
옥탑방으로 올라가는 길은 철제 계단이었다. 너무 가팔랐고 술 마시고 오르면 위험하겠다 싶었다. 옥상에 올랐지만 기대했던 탁 트인 광경이 아니었다. 옥상보다 옆 건물이 더 높았다. 옥상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면 옆 건물 주민과 눈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옥탑방은 철제 건물이었다. 외관이 컨테이너 같았다.
문을 열자 고양이 한 마리가 빠르게 침대 밑으로 숨었다. 옥탑방을 소개해주시던 분은 놀란 내게 멋쩍어하며 고양이가 수줍음이 많다 했다. 방이 생각보다 넓었다. 8평이었는데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는 30만 원이었다. 옥탑방을 제외하면 같은 가격에는 반지하 방 밖에 없었다. 옥탑방 한가운데에는 30만 원짜리 빨간색 레트로 냉장고가 자리하고 있었다. 벽에는 칠하다 만 흰색 페인트 자국이 남아있었다.
부동산에서는 집주인아저씨를 근방에 건물 여러 채 가진 동네 큰 손이라고 소개했다. 집주인아저씨는 옥탑방 정도는 계약하든 말든 큰 관심이 없으신 듯했다. 페인트 칠을 내가 새로 할 테니 월세를 깎아달라고 했다. 그렇게 월세 27만 원에 계약했다. 옥탑방에서는 2년 반을 살았다.
페인트칠은 유튜브에서 본 것보다 어려웠다. 일주일을 꼬박 페인트칠에 투자했다. 가구는 이케아로 맞추고 싶었지만 돈을 아끼기 위해 마켓비 제품으로 구매했다. 나무 책상, 철제 책장, 장스탠드 조명을 구매했다. 형광등을 끄고 전구색 조명을 켜니 그럴듯했다. 내 페인트칠을 미심쩍어하던 집주인아저씨도 결과물을 보고 흡족해하셨다. 그동안 관심밖이었던 옥탑방에도 관심을 주기 시작하셨고, 한 번도 밀리지 않는 월세에 내가 예뻐 보였는지 삼겹살에 소주를 자주 사주셨다.
여름엔 더웠고, 겨울엔 추웠다. 철제 건물이니 당연했다. 여름엔 에어컨을, 겨울엔 보일러를 끄지 않고 지냈다. 친구들을 옥탑방에 초대하면 항상 가파른 계단에서 한번 놀라고, 철제로 된 옥탑방 외관에 다시 한 번 놀란 뒤, 문을 열고 들어오니 깔끔한 내부 모습엔 반전이라며 연신 감탄했다. 그들의 친구가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는 모습에 놀랐다가, 생각보다 쾌적한 내부에 내뱉은, 안도감 겸 탄식이었을 테다. 옥탑방에 입주한 뒤 한동안은 친구 초대하는 재미에 살았다.
옥탑방 2년 반은 취업 준비로 빠르게 흘렀다. 몇 번의 자기소개서, 면접이 지나가며 친구들이 놀러 오는 빈도가 줄었다. 취업을 했고, 직장은 옥탑방에서 멀었다. 직장 동기들을 옥탑방으로 초대했다. 처음 입주했던 때 그러했듯 직장 동기들도 똑같이 놀라고 감탄했다.
계속되는 야근에 택시비가 쌓여갔고 회사 근처로 이사 가는 게 더 저렴할 것 같았다. 취업했으니 옥탑방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한 몫했다. 옥탑방 집주인아저씨께 취업 기념 한우 세트를 선물로 드리며 방을 떠나겠다고 말씀드렸다. 아저씨와 동네 오래된 삼계탕 집에서 술을 마시며 이사 가고 나서도 꼭 놀러 오겠다 말씀드렸다. 직장 15분 거리 신축 오피스텔로 이사 갔다. 페인트 칠은 필요 없었고, 가구는 빌트인이었다. 보증금 1000에 월세 60이었다. 관리비는 10만 원이었다. 오피스텔에 이사 간 뒤 놀러 온 친구들은 옥탑방과 비교하며 내가 성공했다고 말했다.
1년 반 뒤 회사를 그만두었다. 대학원에 진학했다. 오피스텔과 대학원은 멀었다. 돈 아낄 겸 다시 학교 앞 원룸으로 이사 갔다. 원룸은 보증금 1000에 월세 50이었다. 관리비는 없었다. 원룸은 오피스텔의 절반 크기였다.
같은 시기에 아버지도 퇴직하셨다. 오랜 기간 다닌 회사의 갑작스러운 퇴직 통보에 아버지는 충격을 받으셨다. 당신 혼자 아파트를 나와 강원도 원룸에 들어가셨다. 굴착기운전기능사를 취득하겠다 하셨다. 60년대생 아버지는 30년을 한 회사에서 사무직으로만 일하셨다. 나의 원룸 이사를 마치고, 아버지의 이사를 도우러 갔다. 아버지의 원룸은 월세 30짜리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