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에서 우리의 기억이 다르다면

멈춰서서 상대와의 거리를 뒤돌아 봐야 할 때

by nAmsoNg


코로나로 여러 명이 모이는 자리가 어려운 요즘이다. 누구나 불편한 시간이겠지만 애주가들에게는 유난히 고통스러운 시간일 것이다. 그들은 잔을 기울이며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취기 속에 생기는 추억들이 양분이 되어 삶에 꽃을 피운다. 코로나가 그들의 발목을 잡았으니 꽃피워야 할 애주가들의 삶이 썩 퍽퍽할 것이다.

하지만 <남송>이라는 애주가에겐 대수롭지 않은 시간이다. 직장에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지만 나는 외적으로 그다지 활동적이지 않는 일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전에도 바깥 모임은 거의 없었고 친구나 동창들과 하는 계모임도 없었다. 30년 지기 친구도 1년에 한 번 만날 정도니 집돌이 같은 일상의 연속이다.

그러다 얼마 전 같은 업종의 선배 두 분과 간단한 술자리가 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하는 술집도 찾기 어려운 데다가 시기적으로도 바깥에서 마시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결국 선배의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했다. 치킨과 야식을 배달시켜서 조촐한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1년 만에 어렵게 모인 자리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는 그냥 넘기기엔 참으로 거슬리는 이야기를 들었다. A형 성격이라 남들이 무심히 던진 말을 가슴 깊이 새기는 경향이긴 하지만 스스로에게 지나칠 수 없는 이야기였다.

< 너는 많이 마시면 실수가 있어~ >

옆에 선배가 맞장구를 쳤다.

< 한 얘기 또 하고 한 얘기 또 하고~ 하하하 >

선배들 앞이라 그 정도는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며 웃으며 넘어갔지만 뼈에 맞은 듯 무거운 말들이었다.

한 달 정도 지난 일인데 오늘 또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A형 앞에서 말을 잘못하면 이렇게 오래간다. ^^ )

<내가 술을 마시면 실수가 있다고? >

인정할 수 없었다. 지금껏 밖에서 함께 술을 마신 지인들에게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다.

일단 그 선배들과는 술을 많이 마실 일이 없었다. 대부분 퇴근 후 늦은 시간에 잠시 마시고 헤어졌기 때문이다. 속된 말로 찐하게 술을 마신적이 없는 관계였다. 그리고 사실상 술 한잔하면 그동안 나누지 못한 이야기가 고개를 드니 말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지사고 이야기를 할 때 상대가 지루해 하는지 살펴 가며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는 것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가장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던 예전의 기억을 떠올려보니 그 선배도 본인의 주장을 뱉으며 열띤 논쟁으로 채우던 새벽이었다. 혼자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나의 주정을 일방적으로 받아주던 시간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선배들 앞에서 나의 의견을 뾰쪽하게 내세우는 성격이 아니다 보니 내가 그냥 그런 놈으로 평가됐을 생각을 하니 억울했다.


개개인의 기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눈이 많으면 많을수록 술자리의 모습은 다양한 기억으로 왜곡되곤 한다. 술을 마신 당사자는 반듯하게 행동했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인정해야 할 부분이다.

나의 억울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비겁한 변명의 여지로 남을 것이라는 생각에 지금껏 나는 대부분의 누명을

해명하지 않고 살았다. 술을 떠나 모든 일에 적용된 나만의 삶의 방식이었다.

그들이 나를 그렇게 봤으면 그게 맞는 것이고 객관적이고 윤리적이며 사회적 통념상 내게 잘못이 없다는 스스로의 판단이 서면 나는 결정했다. 나를 정확하게 보지 못하는 그 사람과의 인연은 거기 까지고 그 끈을 단칼에 또는 점점 끊어가는 것이다. 진부한 해명의 시간을 쓰느니 인연의 끈을 자르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나의 인맥이 넓지 않은 가장 큰 이유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타인의 눈에는 내가 그렇게 보였다는 것이다.

갑자기 술자리가 싫어졌다. 남들과 다른 기억의 퍼즐을 나누면서까지 술을 마시고 싶은 생각은 없다.

형식상의 술자리로 간단히만 마시고 내일의 스케줄을 핑계 삼아 일찍 일어서는 것이 옳은 처신이라는 결론까지 도달했다. 그것은 매우 삭막하고 업무적인 관계라 아직 결정을 한 것은 아니지만 개운하지 않은 것 만은 사실이다.

술을 마시며 단 한 번도 실수가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나도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창피한 실수들이 몇 가지 있다. 하지만 주량이 약하지 않은 관계로 실수할 만큼 폭주를 하는 일은 일 년에 한두 번 될까 말 까이고

그렇다고 폭주 때마다 실수를 하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격식을 차려야 하는 관계에서는 무리해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 술자리 중간중간 화장실에 가며 나의 발걸음을 확인하고 거울을 보며 눈빛과 얼굴 표정 옷매무새를 만지며 실수가 없으려 노력한다. 나누던 이야기가 결론 없이 길어지는 것 같으면 마무리 지으려 한다.

나의 이런 노력이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서로가 술을 대하면서 자연스럽게 부드러워지고 진솔해지는 정도마저 주정이고 실수라고 인식하는 자리에서는 술을 마시기 싫다. 술자리였으므로 내 실수의 여지를 전혀 배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정황이 맞지 않으니 억울하긴 하다. 어쩌면 그 선배들과 다소 멀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나를 모두 보여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고 그럴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상대가 나와 얼마만큼의 거리를 허락할지 아는 것도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문제고 그것도 정확하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그 거리의 잣대를 세우는 것부터가 이미 가까워 질 수 없는 관계 일지 모른다.

나는 이런 복잡한 관계들을 병적으로 싫어한다. 내 주위에 상식이 비슷한 몇몇의 사람만 있다면 전혀 아쉽지 않다는 생각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도 중요하지만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나를 속이고 내 마음이 불편해지는 관계라면 유지할 필요성을 갖지 않는다.


나의 진심이 술 때문에 실수로 변모된 속상한 경험이었고, 앞으로 내가 타인과 술을 대할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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