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머리를 기르는 이유

by nAmsoNg

어릴 때 아버지가 자주 하시던 말이 기억난다.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는 언젠가 제대하면 머리를 길러서 묶을 것이라며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처럼 이야기하셨다. 그러면 엄마는 손사래를 치며 그렇게 하면 집을 나가겠다는 애교스러운 협박을 하시곤 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보수적인 남자아이였다. 짧은 머리는 남자의 상징이었고 (그 시절 아버지가 우상이었으니 군인인 아버지의 스포츠머리가 가장 멋있어 보였다.) 여자가 운전하는 차에 탄 남자들을 한동안 멸시하기까지 했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는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세상은 초고속으로 변해갔다. 1년 만에 덩치 큰 건물들이 들어서고 냉장고 같던 핸드폰은 군 제대 후엔 사진까지 찍을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단 26개월 만에 세상은 이미 다른 세상으로의 변화를 마친 듯했다.

그리고 지금, 핸드폰 하나로 은행일은 물론이고 집에서 배달음식까지 시켜 먹고 있다. 이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니 네모나던 나의 생각도 조금씩 말랑해지기 시작했다. (훗! 그래봐야 여자들 눈엔 아직도 조선시대에 사는 남자일 뿐이지만 말이다. )

어른이 되어 아버지를 이해했는지 조각 같은 배우들이 머리를 쓸어넘기는 모습에 현혹이 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회가 되면 나도 머리를 길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싹트고 있었다.

원빈, 안정환, 김남길, 그들의 긴 머리는 남자들 마저 눈 호강을 시킬 만큼 매력적이다. 다시 태어나면 뭐든 해 낼 것 같지만 그들의 빼어난 외모는 넘어설 수 없는 벽이다. 이번 생을 떠나 다음 생에도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인정하면 오히려 상처가 덜하다.

김태원, 김종서, 이외수, 류시화 등등 뮤지션이나 문학계에서 장발로 대표되는 분들도 있다. 그분들은 배우들이 주는 눈 호강과는 거리가 멀지만 다른 매력이 있다.

나는 그 매력을 <자유>라고 해석한다.

머리를 기르고 싶었던 아버지의 로망은 아마도 자유에 대한 갈망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 우리 남매를 낳으시고는 친구들 만나서 놀기도 바쁜 나이에 가장의 무게를 짊어져야 했다. 아버지의 긴 머리는 현실의 무게와 울타리를 잠시 떠날 수 있는 상상의 세계라고 표현하면 가장 비슷할 것이다.


<자유>

삶을 살아가며 필연적으로 소속되고 그로 인한 책임과 의무로 스스로를 가둬야 할 수밖에 없는 인생살이에 이놈의 자유는 끝내 잡히지 않는 파랑새와 같다. 직장, 결혼, 육아 어느 하나 자유를 끌어안으며 공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결국 자식들 다 키우고 은퇴해서 자연인이 되지 않는 이상 우리가 바라보는 자유는 언제나 손에 닿지 않는 먼발치에서 존재할 것이다. 그 자유를 조금 당겨 쓰는 방법으로 남자들은 머리를 기른다고 생각한다. 매번 단정하게 다듬어야 하는 속박에서 벗어난 머리칼은 곧 자유를 의미한다.

자유는 곧 <나>다.

나를 정확히 찾아볼 수 있는 힘이다. 굴레들에 뒤엉켜 알짜배기로 보이지 않은 <나>는 <나>라고 설명할 수 없다. 머리를 기른다는 것은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가 필요하다는 반증이며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다.

<나>에 대한 사랑에 갈증을 느끼니 더 알고 싶은 욕구가 생기고 우리들로 하여금 자유를 갈구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상징적인 의미로 우린 머리끝에서 자유를 기르고 싶은 욕망에 빠진다.

이 진지하고 심오한 개똥철학을 피를 토하며 이야기 한들 세상에 길들여진 이들에게는 (특히 와이프들)에게는 지랄하고 자빠질 소리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남자에겐 더욱 자유가 필요한 악순환이 반복된다.


어느 한가한 일요일 낮이었다. 산속에 들어가 오두막 짓고 하루 종일 책 읽고 글 쓰며 살면 좋겠다는, 누가 들어도 상상 속의 바램을 아주 살짝 꺼냈다는 이유로 나는 와이프에게 무책임한 가장이라는 비난을 받았고 대판 싸운 적이 있다. 상상도 바램도 꿈도 허락되지 않은 공간에서 자유에 대한 욕망은 이렇게 악순환 된다. 움직일수록 거대해지는 눈덩이처럼 말이다.


이제는 기르고 싶어도 예전 같지 않은 머리숱 때문에 망설여진다. 나의 자유도 머리숱만큼이나 사라져 간다고 생각하니 처량하기 그지없다. 머리숱이 많을 땐 자유의 소중함을 몰랐다. 이제라도 길러보려 상상하니 초라하게 묶인 머리칼이 자유를 찾기도 전에 바람에 쓰러져 죽어버릴 것 같다.


이 정도 나이면 상징적 자유를 포기하고 진정한 자유를 찾는 것이 더 빠를 수도 있겠다. 무인도 하나 사서 깨벗고 다니고 싶다는 친구의 섬에 놀러나 가볼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1살이 마주한 반려동물의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