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 중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레이가 죽었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입을 떼며 처음 꺼낸 말은 아들의 안부였다. 그리고 전화를 바꿔 아들과 통화했다. 아들의 목소리가 슬픔에 젖어있었다. 말을 하면서도 훌쩍이는 것을 보아 아직 눈물이 그치지 않은 것 같았다. 아내는 분명 레이를 제대로 케어해주지 못한 부분을 지적했을 것이다. 나까지 아픔을 더 해주기는 싫었다.
<많이 슬프지? 아빠가 조금 있으면 퇴근하니깐 같이 묻어주러 가자. 마음 좀 추스르고 있어>
아들은 작고 짧게 대답했다. 아마도 본인에 대한 죄책감과 여태껏 레이를 잘 돌봐주라고 종용한 아빠에게 면목이 없어서일 것이다.
레이는 아들이 키우던 도마뱀이다. 재작년 여름인가 자세히 기억은 나지는 않지만 칭찬해 줄 일이 있어서 큰맘 먹고 선물해 준 반려동물이었다. 도마뱀을 키우는 사람을 TV에서만 보았지 우리 집에서 키우게 될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못했다. 아들은 레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는 애지중지했다. 시끄러우면 안 된다며 거실에서 음악도 듣지 못하게 했다. 어리지만 책임감이 있는 녀석이라 굳이 내가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났다.
아들은 방학을 맞아 시골 할머니 댁에 내려갔고 레이에게 밥을 주는 것은 나의 몫이 되었다. 밥을 주려 사육장 문을 여니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두 눈이 많이 부어 있었고 눈도 뜨지 못했다. 인터넷을 통해 빨리 상황을 알아봤고 아들과 통화도 했다.
확인 결과 탈피할 때 종종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데 도와주지 못해서 눈가에 탈피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도마뱀을 손으로 만졌다. 꼬리를 떼버리고 도망이라도 갈까 봐서 호흡까지 조절하며 조심스레 들고는 눈 안에 있는 탈피 찌꺼기를 꺼냈다. 도대체 이만한 게 어떻게 눈 안에 들어가 있었는지 모를 만큼 커다란 이물질이 나왔다. 양쪽 눈에서 찌꺼기를 제거하고 안약을 넣어주었지만 레이는 눈을 뜨지 못했다.
식사통에 웜 몇 마리를 넣어두면 알아서 먹던 놈인데 눈이 보이지 않으니 일일이 먹여줘야 했다.
시골에서 올라온 아들은 눈을 뜨지 못해 더듬거리는 레이를 보며 훌쩍였다.
더 늦기 전에 전문가에게 입양을 보내야 하는지 고민도 많이 했다. 레이를 위해서라면 그 방법이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른 선택을 했다. 아들에게 반려동물의 죽음이라는 큰 슬픔이 찾아올 수 있는 상황을 직감했지만 피하지 않았다. 반려동물이 병들어 보살피기 힘들다고 버리거나 입양을 보내며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가르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점점 식성을 잃어가는 레이의 입에 웜 하나를 넣어주려면 10~20십분씩 실랑이해야 했다. 아들이 지쳐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오늘 안 먹으면 내일 다시 주라고 하며 케어를 멈추지 않도록 했다.
먹이를 바꿔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해서 귀뚜라미도 사서 먹여보았다. 처음 며칠은 힘들게라도 먹더니 또다시 먹는 것을 거부했다. 작은 개체가 없어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고 작은 귀뚜라미를 주문하기로 의견을 모으던 어느 날 레이는 끝내 버티지 못하고 아들 곁을 떠난 것이다.
퇴근을 하고 집에 와서 축 처진 레이를 조심스럽게 감싸고 모종삽을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아침부터 이어지는 비가 부슬거리며 멈추지 않았다.
<묻어줄 곳은 생각해 봤니?>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려 노력했다. 안 그래도 슬픈 아들의 마음에 내 목소리마저 슬픔을 더해주긴 싫었다.
<요기 앞에 공원, 아빠랑 가던 곳>
아들은 주말에 종종 산책을 가던 작은 뒷산을 생각 했다. 우리는 각자 우산을 들고 그곳을 향해 걸었다.
걸으며 말했다.
<아들! 아들이 많이 슬플 거 같아서 아빠가 짧게 이야기할게. 혼내려는 건 아니야. > 나는 레이가 더 아프기 전에 입양을 보내려 고민했었지만 그것이 옳지 않은 행동이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슬프지만 이렇게 땅에 묻어주는 것이 책임을 다하는 것임을 아들이 알아주길 바란다고 했다.
동산의 중턱쯤 해가 잘 들어올 만한 곳을 찾았다. 그중 큰 나무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가 어때?>
<괜찮은 거 같아>
아들의 목소리는 작게 맴돌았다.
손바닥만 한 구덩이를 파는 것만 도와주고 물러서 우산을 받쳐주었다. 아들은 레이를 푹 파인 땅속에 조심스레 뉘었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무언가 찾더니 레이 옆에 가지런히 놓았다. 네모나게 접은 하얀 편지였다.
아들의 미안함과 슬픔이 담긴 편지가 레이 옆에 놓이자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했다.
편지와 함께 흙을 덮으며 다른 세상으로 떠나는 문을 닫았다.
하루가 지나자 아들은 못 해준 것이 있다며 레이를 묻은 곳으로 한 번만 같이 가자고 했다. 아들은 다이소에서 1000원짜리 꽃을 사서 레이의 무덤 옆에 심어주고는 긴 호흡을 내쉬었다. 이제 정말 이별을 하는 것 같았다.
아이를 너무 믿어서 신경 쓰지 못한 어른의 무책임과 생명의 무게를 모르고 부족한 정성으로 일관했던 11살 소년은 작은 생명의 죽음 앞에서 많은 것을 반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