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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니펌프 Jun 26. 2020

소중한 마음을 안아주세요~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너의 감정이 휘둘리면 안 된다.

어려웠던 시기에 다시 일어나겠다며 신중하고도 간절하게 입사한 곳에서 지금 나는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나를 믿고 팀장으로 진급시키고 무엇보다 삶에 지쳐서 내 주위를 둘러보지 못했던 내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신 선배님의 이야기를 해보려한다.  

    

아들을 처가에 맡기고 홀로 지내던 나는 온갖 수식어로도 표현 하지 못할 그냥 거지였다.

인천에 올라온 후 무보증에 월25만원 하던 반지하에서 3개월 동안 매일 소주를 3병씩 마시고 잠이 들었고 

늘어진 몸으로 겨우 출근을 하는 반복된 생활을 했다.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감 잡을 수 없이 막막했다.

이곳에 정착을 해야 하는지, 연고도 없는 시골 어느 곳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 

와이프와는 합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이렇게 돈 한 푼 없이 다시 시작하면 또 비수 같은 말을 뱉어 낼 텐데 

그땐 어떻게 할지.... 혼란스러웠고 추웠고 외로웠고 힘들었다. 

누구에게나 뜨는 2월의 태양이 내가 머물던 반지하만은 지나쳐가는 듯 했다. 

그렇게 3개월이라는 시간의 시체를 거두고 결정했다. 

‘당분간은 인천에서 자리를 잡아보자!’

내가 제일 잘하는 일로 탄탄한 회사를 알아보고 이직을 결정했다. 돈도 더 벌어야하니 직급도 있어야했다. 

눈에 띄는 회사 한곳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넣었다. 그때 나이가 36살이었고 처가에 맡긴 아들이 막 5살이 되던 겨울의 끄트머리에 있었다. 다시 시작하기 늦은 나이지만 일어서야만 했다. 나이가 많으니 쉽게 뽑아주지 않을 것이었다. 해서 이력서도 더 꼼꼼하게 작성했고 자기소개서는 아예 동영상을 만들어서 제출했다. 


자기소개를 동영상으로 제작한 전례 없는 일로 면접관의 마음을 잡아 합격했고 직급을 달지는 못했지만 능력에 따라 추후 진급의 가능성이 있음을 믿고 새로 시작했다. 

그렇게 만난 선배님과 나는 매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와이프와 별거중이고 빨리 자리 잡아서 다시 합치려한다는 이야기나 양산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힘들었던 이야기들이 주된 화제였다. 그 시절 나는 주위를 둘러볼 여유 따위는 없었다. 오로지 빨리 성과를 내서 진급을 해야 했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빨리 돈을 더 벌어야했다. 돈이 없으면 와이프에게 어떤 대접을 받는지 비참한 기억이 머릿속을 꼬집었다. 그런 옹졸하고도 다급한 마음으로 살아가던 시간이었다.  

    

몇 개월의 시간이 흐르고 우리가족은 작은 보금자리를 잡고 함께 살게 되었다. 

숨을 좀 돌리고 힘들 때 급하게 장만한 중고차를 바꿔야 할 때가 와서 팔려는데 도대체 시세가 너무 터무니 없었고 알고 보니 사고차였던 이력이 있어서 값도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되었다.

신용이 좋지 않아서 사체로 200을 대출받아 마련한 차라 내겐 시세가 너무 낮으면 안 되던 차라 딜러에게 속았다는 생각에 씩씩거리며 출근을 했다. 그런 나를 보더니 선배님이 나를 불렀다. 

“담배나 한 대 태우자?!” 

담배에 불을 붙여주며 무슨 일인지 물어서 간단히 이야기를 전했다. 

한 참을 듣던 선배님이 말씀하셨다. 

“너도 그땐 싼 가격에 괜찮다고 판단해서 산거 아니니? “

“네 그건 맞지만.... ”

“세상은 너랑 상관없이 계속 흘러간다. 그럴 때 마다 니가 마음상해하고 그러면 너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래? 

그때마다 화내고 마음 아파하고 그럴래?”

“....”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너의 감정이 휘둘리면 안돼~”

나는 이 말을 들을 때 머릿속에 자일리톨 껌이 꼬물거리며 씹히고 있는 듯 했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나의 감정이 휘둘리면 안 된다... > 

그날 들은 말은 한참동안 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나는 그 말을 받아들이고 그렇게 생활하려 노력했다. 

차 값을 더 받고 못 받고 하는 해결책보다 내게 더 필요한 말이었다. 

삶에 찌들어 옹졸해지고 여유가 없던 치졸한 남자가 수컷으로 변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별일 없이 넘어가리라 믿었던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국가 재난 상태까지 왔다. 

문을 닫는 업장들이 늘어나고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의 매출도 급여를 받기 미안할 정도로 떨어졌다. 

당연히 씀씀이도 줄었고 연초에 계획해놓은 모든 것들을 미뤄야만 했다. 하지만 옛날처럼 

우울해하거나 화가 나거나 감정이 동요되진 않는다. 나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에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며 담담히 시간을 보내고 있다. 틈틈이 아들과 자전거 라이딩도 하고 

비싸지 않은 캠핑장에 가서 모닥불을 바라보며 <불멍>이라는 것도 한다. 

일상의 소소한 시간을 놓치지 않는 방법을 알아가는 것 같아서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페러다임을 어느 개인 하나가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는 그저 현실에 충실하며 소중한 나의 감정을 잘 안아주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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