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하는 몸이 예뻐서...
수영지도자를 꿈꾸다.
나는 지금 작지 않은 규모의 어린이 수영장에서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고교시절의 꿈이 수영지도자였으니
어찌보면 꿈을 이룬 성공적인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수영지도자라는 흔치 않은 직업의 이야기가 궁금한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같은 꿈을 꾸는 미래의 수영지도자들이나 자녀들에게 수영을 가르치려는 학부모님들, 또는 이쪽업계에 대한 오해나 편견이 있었던 분들이 읽어보셨으면 한다. 또한 수영을 통해 어린친구들의 바른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기에 나름대로 정립한 교육철학과 방향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풀어보려한다.
이야기는 처음 수영지도자를 꿈꿨던 고교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운동을 좋아하던 나는 고교시절 내내 친구들과 뛰어다녔다. 학교는 공부하러 가는 곳이 아니었다. 그 곳엔 함께 운동할 친구들이 있고 농구 골대가 있고 축구골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는 곳이었다. 틈이 나면 책상에 앉아 있는 김에 공부도 하는 것이고 시험은 항상 평소실력으로 보는 것이 내 친구들 사이에선 의례적인 생활이었다.아침일찍 등교해서 첫 수업전까지 농구게임을 뛴다. 점심시간에 오롯히 농구만 하기위해서는 3교시가 끝난 후 도시락을 까먹어야 한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마음맞는 친구와 슬리퍼를 끌며 농구코트로 나간다. 슬리퍼를 신고 나가다 선생님께 걸리면 보기좋게 한 대 맞을 일이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운동화를 갈아 신을 시간도 아껴야 할 만큼 뛰는 것이 좋았다. 당시 우레탄으로 된 농구코트는 운동을 잘하거나 주먹을 쓸줄 아는 몇몇 아이들의 전유물이었다. 땀으로 흠뻑 젖을 때 까지 뛰고 5교시 바로전에 교실로 들어 간다. 종종 수업에 일찍 들어가지 못해서 몸둥이에 엉덩이를 내어주기도 했다. 맞으면서도 뭐가 그리 신이 났었는지
히죽거리다가 더 맞을 때도 있었다. 교실에 들어와 우리들의 플레이를 곱씹으며 수다를 떨었다. 2~3시간 더 지나면 청소시간 이었다. 나는 도서부라는 써클 활동을 했기 때문에 청소에서 열외될 수 있었다. 당연히 청소시간에도 뛰었다. 청소시간은 축구를 하는 시간이다. 농구와는 다르게 운동화를 챙겨나간다. 축구화따윈 필요 없다. 없어도 잘했으니깐! 30분이라는 청소시간을 알뜰하게 뛰고 또 땀에 흠뻑 젖은체 자율학습속으로 들어간다. 나와 운동을 즐기던 몇몇 친구들의 자리는 1분단이나 4분단 끝자리에 항상 4명이 모여 있었고 그 곳엔 선풍기가 있었다. 우리가 교복 상의를 벗어들고 땀을 흘리며 들어오면 의례히 주변 친구들은 선풍기를 켜주곤 했다. 공부가 될리 없다. 열이 오르면 죽어버릴 것 마냥 돌아가는 선풍기를 따라 고개를 돌리며 연신 부채질을 한다. 한 시간만 더 버티면 저녁시간이다. 저녁 도시락도 자율학습시간에 미리 까먹는다. 그리곤 종이 울리면 철봉과 평행봉이 있는 곳으로 어슬렁 어슬렁 걸어간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학생들 옆에서 철봉에 뛰어 올라 턱걸이 20개를 한방에 끝내고 내려온다. 힐끔힐끔 나를 보는 후배들의 존경스런 시선을 즐긴다. 친구와 수다를 떨면서 펌핑된 근육에 잠시 휴식을 주고는 다시 평행봉에 오른다. 앞 뒤로 흔들거리며 차오르기 할때마다 팔을 굽혔다 편다. 이 삼십개정도 하면서 가슴에 느껴지는 땅땅한 자극을 즐긴다. 그렇게 철봉과 평행봉을 몇 번 왔다 갔다하면 저녁시간도 끝이 보인다. 교실로 들어가는 걸음걸이가 올때랑은 다르다. 가슴과 등 근육이 잔뜩 화가 났기 때문에 양팔은 몸에서 자연스레 멀어지고 가슴이 도드라지게 나오니 걸음걸이가 뒤로 자빠질듯 위풍당당해진다. 뻐근한 근육통을 껌씹듯이 즐긴다. 남은 자율학습을 마치고 시원한 밤바람을 콧구멍에 넣으며 하교 한다. 그렇게 매일이 반복되던 고교시절이었다.
운동을 좋아했지만 돈이 필요한 운동을 해본적은 없었다. 평범한 종목만 햇다. 누군가에게 배운적도 없다.
축구도, 농구도 함께하던 형들이나 친구들이 하는 것을 보고 혼자 따라하며 연습했을 뿐이다. 지금은 유투브도 있고 검색도 잘 되지만 그땐 그렇지 못했다. 축구교본, 농구교본 같은 책이나 찾아보는 것이 독학을 하는 유일 한 방법이었다. 나에게 남들보다 운동신경이 조금 더 있다는 것을 느끼게해준 시간들이었다.
어떤 연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졸업을 하면 한 번쯤 수영강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배우기만 하면 잘 할 수있을 것 같았다. 한 번도 실내수영장을 가본적도 없고 수영을 배운적도 없는 내가 야무진 상상을 했던 것이다.
아는 것이라고는 수영은 전신 운동이고 하늘을 날으는 듯한 느낌일 것이라는게 전부였다. 그리고 올림픽에 나온 수영선수들의 몸매가 다른 운동선수의 여느 몸 보다 매력적이라는 것도 이유에 포함되었다. 근육이 과하지 않아 투박하지 않고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느껴졌다. 수영을 많이 해서 늘씬하게 뻗은 나의 몸을 상상하기도 했었다.
특별한 연유가 없었듯이 수영지도자가 되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는 않았다. 매일 똑같이 운동장을 뛰어다닐 뿐 간절하진 않았다. 굳이 노력이라 한다면 그 다음에 무엇이 있을지도 모르고 무작정 대학을 향해 달렸던 고3의 노력들이었다. 내가 갈 수있는 4년제 대학은 그 동안 매일 운동으로 다져진 몸뚱이를 써야 갈 수 있던 체육과였고 합격한 것이다.
가만 보면 꿈이라고 하긴 억지스럽다. <20대에 한번 쯤은 해보고 싶다>라며 했던 일말의 의지 없는 상상이 결국 나의 삶을 지탱하는 업이 되었다. 큰 돈이 되는 직업은 아니지만 흑수저로 태어나 내 힘으로 밥벌어먹고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 큰 행운이라 생각된다. 더군다나 물에서 생명을 지킬 수 있는 기술을 지도하며 사회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자부심마저 생겼다.
수영지도자는 의사나 판.검사만큼 대단한 직업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운동을 해보고 지도를 해보니 아무나 하는 일도 아니다. 수영실력이 뒷받침되야 하는 것은 물론이며 해부학,운동생리학,운동역학,체육지도론 등의 지식을 겸비해야한다. 또한 본인이 수영을 잘하는 것과 타인을 가르친다는 것은 전혀 다르다. 상대가 쉽게 이해 할 수 있게끔 끊임 없이 연구 해야한다. 끊임 없이 한다는 것은 그 일을 사랑해야 가능한 일이며 그렇지 않으면 도태 돼 버린다. 특히 어린이를 대상으로 수영을 지도 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그들의 신체과 언어를 이해해야하고 사랑해야하며 기다려 주어야 한다. 스스로 도전 할 수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주고 그들이 성취감을 느꼈을 때 온몸으로 칭찬해주어야 한다. 자신하건데 나의 표정과 몸개그는 어지간 한 개그맨도 울고가게 할 자신이 있다. 단! 아이들 앞에서만 가능하다.
가감없이 전하는 어린이수영장의 이야기가 미래의 수영지도자는 물론
특히 자녀교육의 방향을 고민하는 학부모 독자에게 소소한 팁이 되길바라며 첫 장의 마침표를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