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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후 Jul 26. 2024

내가 사랑한 여름





괜히 계절의 변화를 체감하기 시작한 어른이 된 이후로 


여름은 예전만 못한것 같습니다.



키가 훌쩍 자라고 보면 사계절이 다 지나 있던 초등학생 때나



피부가 커피콩 색깔이 될때까지 친구들과 뛰어놀았던 중학생



땀을 흘리면 학교 화장실에서 등목을 하면 그만이었던 고등학생 시절의 여름은



어른이 된 지금의 그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침대에 누워 모기장 너머로 바라보는 하늘은 늘 맑은데



집 밖에 나서면 왜이리 푹푹 찌고 축축 처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제주도에서 잠깐 보낸 여름은 푹푹 찌긴 했어도 



축축 처지고 흐물텅한 상한 토마토 같진 않았는데,



요즈음 서울의 여름이 괜히 우중충한건



지구 온난화 떄문인건지



우중충한 어른이 되었기 때문인건지



매일 아침 모기장에 붙어 '스피오스- 스피오스-' 하고 잠을 깨우는 매미자식 때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주의 여ㄹ




여름 사랑하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글을 여름의 초입에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봄도, 가을도, 겨울도 아닌 여름까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상한 토마토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달큰한 자두나 빤딱한 사과나 생생한 딸기는 



더욱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서울의 여름




여름을 좀 느껴봐야겠다 싶어서 서울 구경을 좀 다녀왔습니다



동대문을 막 걸어다니다가



말로만 듣던 세운상가나 평화시장도 직접 보고



마침 중복(中伏)이래서 닭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지도를 펼치니



마침 동대문 닭한마리거리가 있습니다.



사장님이 남몰래 꺼내준, 냉장고 가장 깊은 곳에 숨어있던 차갑게 얼은 맥주를 양볼에 갔다 댔더니



그제야 화장실에서 등목을 하던 여름이 찾아 왔습니다. 



급식 먹고 흙바닥에서 농구를 한참 하고 난 후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채 



친구들과 깔깔대던 그날의 여름입니다.









모기장에 붙은 매미도



다 물러터진 상한 토마토도



미처 다 개지 못한 우중충한 여름도



다 사랑할 줄 아는게 어른이라면



어른되기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어린이집이 끝나고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다니던 제게




"가만 있으면 안덥다! 가만 앉아있어!"


라고 외치던 할머니는




김치냉장고에서 설얼은 수박을 한통 꺼내


한 대접을 썰어 주던 할머니는



우중충한 여름을 사랑할 줄 아는 어른입니다.



어린시절의 내가 사랑한 또 다른 여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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