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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후 Aug 02. 2024

알베르 카뮈의 젊은 시절 - 알베르 카뮈 결혼 을 읽고

알베르 카뮈 정리하기 시리즈 . 1

올해 안에 꼭 해보고 싶은 알베르 카뮈 정리하기 시리즈의 첫 번째 글입니다.



누가 시켰다거나 협박해서 시작한 시리즈가 아니기 때문에



1년이 걸려 완성할 수도 있습니다.



방학 동안 컴활을 좀 미적미적하다 보면



이 시리즈를 먼저 마칠지도 모릅니다.



카뮈의 책을 읽고 남은 일련의 사유는



서평 카테고리가 아니라 글쓰기 카테고리에 남길 예정입니다.








우선 카뮈의 에세이집 <결혼>은 1936년에서 1937년 사이,



알베르 카뮈가 <이방인>으로 주목을 받기 이전 청년 카뮈의 사유가 담긴 책입니다.



그의 사상을 다 읽고 정리해 보고자 하는 목적에 더할 나위 없이 알맞은 출발입니다.



그가 24살-25살에 쓴 글이란 얘기인데



마찬가지로 25살을 지나는 중인 필자와는 얼마간의 차이가 있는지 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중해에 살면 원래 표현이 풍부해지는 건지



지중해 매미들은 좀 조용해서 집중을 잘 했던 건지



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결혼>은 티파사-제밀라-알제-이탈리아 의 순으로 



카뮈가 직접 보고 느꼈던 지중해의 풍경 묘사와 그의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방학 동안 날이 너무 더운 탓에 점심만 먹으면 잠이 몰려오는 탓에



"서울도 이젠 지중해처럼 더우니 나도 이젠 시에스타를 좀 가지겠다"



라고 주장하던 차에 아주 적절한 책 선정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티파사에서의 결혼






잠시 후 압생트 풀밭에 몸을 던져 그 향이 몸에 배게 할 때, 


나는 모든 편견에 맞서 진리를 실현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리라.


그 진리는 태양의 진리이고, 또한 내 죽음의 진리일 것이다.


어떤 의미로는 내가 지금 내거는 건 다름 아닌 내 삶이다.


뜨거운 돌의 맛이 나는 삶, 


바다의 숨결과 지금 울기 시작하는 매미들로 가득한 삶.


미풍은 상쾌하고 하늘은 푸르다.


나는 꾸밈없이 이 삶을 사랑하며, 이 삶에 대해 자유로이 이야기하고 싶다.




결혼 - 티파사에서의 결혼






첫 번째 장인 '티파사에서의 결혼'에서는



카뮈가 티파사에서 보고 느낀 자연이 생경하게 묘사되어 있다.



티파사의



압생트 풀밭, 태양, 폐허, 돌무더기, 파도, 하늘을 보고 만지며 



티파사의 아름다움을 예찬한다. 



"나는 온몸으로 살아가고, 온 마음으로 증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티파사에 살고, 증언하기. 예술 작품은 그 뒤에 올 것이다. 거기에 바로 자유가 있다."



죽음이나 고통이나 자살 같은 고민들은 아직 만나지 못한 것인지



티파사에 머무는 것의 즐거움만을 증언한다.



근데 '지금 울기 시작하는 매미들로 가득한 삶'이라니



카뮈는 매미도 사랑할 줄 아는 진짜 어른이었다.



아니면 매미가 붙을 모기장이 집에 없었거나.








스피오스-











제밀라의 바람






정신 그 자체의 부정이라는 진리의 탄생을 위해, 정신이 사멸하는 곳들이 있다.




결혼 - 제밀라의 바람 






생생한 풀과 벌레가 자라고 뜨거운 태양과 소금기 가득한 바람이 불던 티파사와는 달리



카뮈에게 제밀라는 정신이 사멸하는 공간이다. 



태양과 바람은 있지만, 무거운 침묵이 가득한 공간이다. 



그는 이곳에서 죽음에 대한 사유를 시작한다.









젊은 시절의 그는 제밀라에서 죽음에 대한 태도를 나타내기도 한다.



"나도 이 세계 앞에서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다.


명징한 의식을 끝까지 간직하여, 넘쳐나는 내 모든 질투와 공포와 함께 나의 최후를 지켜보고 싶다.


세계와 멀어지는 한, 영원한 하늘을 응시하는 대신 살아있는 사람들의 운명에 집착하는 한,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게 된다.


자각하는 죽음을 창조하기, 그것이야말로 세계와 우리의 거리를 좁히고,


영원히 잃어버린 세계의 달뜬 모습을 인식한 채로 기쁨 없이 끝맺음하는 길일 것이다."



카뮈가 죽음에 대해 가진 생각은 꾸준한 듯하다.



그에게 죽음은 두렵다거나, 피할 수 있다거나, 피하고 싶다거나 하는 대상이 아니다.



그는 인생의 확실한 죽음을 자각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세계를 온전히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심지어는 질병에 관해서 이렇게 말한다.



"그 점에서 질병보다 비열한 건 없다. 


질병은 죽음을 치료하는 약이다.


그것은 죽음을 준비한다.


질병은 첫 단계가 자기 연민인 죽음 실습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온전한 죽음에 대한 확신을 물리치려는 필사적 노력을 하도록 인간의 등을 떠민다.


하지만 제밀라는.....


이제 나는 인간이 이따금씩 집착하는 진정하고 유일한 문명의 발달은 바로 자각하는 죽음을 창조하는 것임을 직감한다."



이제껏 경험했던 죽음으로 미루어 보아,



카뮈의 말은 정말 일리가 있다.



사람은 보통 죽기 전에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린다.



신은(인간에게 질병을 부여하는 존재라면 무엇이든)



인간의 평균수명에 달한 사람들에게 각종 질병을 던져준다.



처음엔 염증이니, 고혈압이니, 당뇨 같은 누구나 앓는 질병으로 



한 인간이 죽음에 가까워졌음을 알리더니



암이니 합병증이니 하는 무거운 질병들을 더해주더라.



이때부턴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기 힘들어진다.


적어도 내겐 그렇게 보였다.



처음엔 월에 한두 번 병원에 가 의사를 만나 이 병이 나아질 수 있음을 희망한다.



결국 나아지지 못한 질병은 인간을 허여멀건한 병실로 옮겨 놓더니



마지막 몇 년은 자연이니, 주변 사람들이니 하는 즐거움도 느끼지 못하게 한다.



그렇게 질병은 비열하게 찾아오고, 



죽음을 준비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한다.



자연을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인간다움이라면,



질병은 삶의 마지막을 인간 답지 못하게 하는 비열한 자식이다.



옆집 모기장에 붙어 쫓아낼 수도 없게 울어대는 매미 자식처럼 말이다.





카뮈는 이에 명징한 의식을 끝까지 간직해서 자신의 최후를 지켜보고 싶다고 말한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카뮈가 자신의 죽음을 명징한 의식으로 맞이했을지,



비열한 질병에 고통받지 않은 죽음은



그가 원하는 '자각하는 죽음'이었을지,



카뮈의 책을 마저 다 읽으면 알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 아니겠지.






3장에서 등장하는 알제는,



젊음이 가득한 도시로 표현된다.



저녁이 되면 어디서든 음악이 흘러나오고,



젊은이들은 춤을 춘다. 



또 젊음을 잃은 자들에겐



갈 곳 없는 곳으로 표현된다. 



"이 지역 사람들은 젊은 시절 내내 그들의 아름다움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간다.


이후엔 내리막과 망각이다."










결국 이 삶에서 나를 부정하는 것은,


무엇보다 나를 죽이는 것이다.


삶을 고양시키는 모든 것은 동시에 부조리도 증대시킨다.


알제의 여름 속에서 나는 고통보다 더 비극적인 단 한 가지가 있고,


그것은 바로 행복한 사람의 삶이라는 것을 깨우친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더 위대한 삶의 길일 수도 있다. 기만하지 않도록 이끌어 주니 말이다.




결혼 - 알제의 여름






카뮈가 쓴 아마 가장 초기의 에세이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그의 글에서 부조리가 등장하는 가장 첫 번째 대목일 것이다.



이 단서들을 잘 굴려서 <시지프 신화>까지 가야만 한다. 



<이방인> 이전의 카뮈에게 부조리란



삶을 고양시키는 모든 것이다.



그에게 삶을 고양시키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결국 이 삶에서 나를 부정하는 것은, 무엇보다 나를 죽이는 것이다."


라는 대목은



<시지프 신화>에서도 카뮈가 주창하던 말이 아닌가?



신이 내린 형벌에 대항해 그저 바위를 산 위로 굴리던 시지프는



카뮈가 생각하는 인간의 이상향이다.






<결혼>의 마지막 장인 사막에선



이탈리아와 이탈리아의 예술을 보고 느낀 카뮈의 사유가 담겨 있다.







한 존재와 삶 사이의 단순한 일치가 행복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을 행복이라 부른단 말인가?


또한 장수하고 싶은 욕망과 죽을 운명에 대한 이중의 자각이 아니라면 


대체 어떤 조화가 더 온당하게 인간과 삶을 이어줄 수 있단 말인가?




결혼 - 사막







이제 이 이야기의 핵심은 어떤 사막에 대한 지도를 그려보려는 시도임이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이 오묘한 사막은 절대 갈증을 속이지 않고


그곳에서 살아갈 능력이 있는 이들에게만 감지된다.


그제야,


오직 그제야 비로소 이 사막엔 행복의 청량한 물이 넘쳐나게 될 것이다.




결혼 - 사막






사막에 대한 지도를 그려보려는 시도라는 건



삶에 대한 지도를 그려본다는 얘기인 것 같다.



갈증을 속이지 않는다는 건



눈앞에 놓인 세계의 부조리를 회피하지 않는다는 뜻인 것 같다.



후에 40살이 되어서 마무리 지었던 그의 철학을



24살부터 꾸준하게 사유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부조리를 인식하고, 부조리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것이 삶이라고



꾸준하게 이야기하는 카뮈이다.





24살 때 쓴 글이어서 그런지



<시지프 신화>보다 백배는 쉽게 읽힙니다. 



추리 소설 읽는 느낌으로,



카뮈의 마지막까지 다 읽어내 보려고 합니다!



컴활 좀 하다가 다시 오겠습니다!



(컴활의 존재를 자꾸 부정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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