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여름나
한 가지 고백할 것이 있다면
장마가 끝나면 가을이 오는 줄 알았습니다.
사계절 내내 더위를 타는 덕에
계절의 변화는 잘 모르고 지낸 탓입니다.
중복(中伏)이라고 뻘뻘 땀을 흘리며 닭을 먹었던 게 억울해집니다.
일 년 중 가장 더운 날을 지냈으니
이젠 마저 시원해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렇게 뜨겁다가
언제 다 식히고
선선한 가을이 되려는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불은 뜨겁고, 에어컨은 시원하고, 닭은 뜨겁고, 소맥은 차갑습니다.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면 건강해진다는 목욕탕 아저씨들의 말은 사실인 걸까요?
운동을 갔다가 또 땀에 흠뻑 젖은 채 집에 왔는데
방바닥은 얼음장 같고 상엔 물회가 한상 차림입니다.
에어컨 앞에 앉아
물회에 밥을 말아
군만두 잔뜩 구워
엄마 아빠랑 소주 한잔했습니다.
이열치열은 거짓말입니다.
땀 흘리고 먹는 뜨거운 닭 한 마리보다
에어컨 앞에 앉아 먹는 물회가 더위잡는덴 선숩니다.
땀은 어차피 매일 흘리는데, 음식까지 뜨거울 필요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이한 치열합시다.
혹시 이 장면을 아시는지요?
한 10년 전부터 이 장면을 보곤 물회를 먹을 줄 아는 어른이 되면 꼭 흑미밥을 말아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에어컨을 빵빵 틀어놓고
물회에 밥을 말아 먹으니까
좀 어른이 된 것 같고 신났습니다.
항공 샷은 광각으로, 좀 정수리로 해서 찍기..
7km 뛰고 난 후. 포징 할 힘은 있는 걸 보니 3km는 더 뛰었어야지 싶습니다.
절대 도망가지 않는 고양이
여름이 좋은 이유를 한 가지 꼽자면,
땀을 흘리는 게 자연스러운 날씨라는 것입니다.
또 운동을 하고 나면
땀이 왕창 나는데
그럼 내일은 땀이 좀 덜 날 것 같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밤마다 뛰고 있습니다.
그리고 좀 시원해졌나 싶어서 서울 구경을 다시 다녀왔는데
갈 곳 없을 땐
서울 시립미술관 만한 곳이 없습니다.
입장료는 무료인데, 한 번에 여러 전시를 할 때가 많아
학교 끝나고 집 가기 싫을 땐 이곳만 한 곳이 없습니다.
무언가 예술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완성되기 이전의 배경과 완성된 이후의 해설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저 정도 작품 해설이 적히려면 얼마나 오랜 기간 노력해야 할지 궁금합니다.
아마 지금 제 수필은 한 줄 적히기도 힘든 정도 일 겁니다.
('매미를 싫어하는 작가의 본심이 담겼다.' 같은..)
전부 서울 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의 모서리입니다.
'처마'라고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으나
처마와 파란 하늘을 보면 늘 사진을 찍습니다.
아파트와 겹쳐진 모습도 늘 찍습니다.
인간의 건축과 자연이 만나는 경계선... 같은 거창한 의미가 담긴 건 아니고
건물 전체보단 처마에 걸친 구름이 더 아름답다는 생각입니다.
눈에 보이면 냅다 가서 찍습니다.
날씨가 우중충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푸르렀네요
Next level을 추는 중인 건지?
그리고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나오면 바로 보이는 청송옥에서
장터국밥 한 그릇 했습니다.
11000원에 소면, 공기밥, 국밥이 나오는데
반주하면 아주 그만입니다.
진짜 술 잘 안 먹는데
저 분위기에, 국밥에, 옆자리 앉은 회사원 형님들의 모습을 보면
소주를 안 먹을 수는 없습니다..
서울 시립미술관 갔으면 청송옥도 한번 가봅시다.
근데 이열치열해버렸네요.
나도 모르게 자꾸 뜨거운 음식을 찾는 게
한국 사람 맞나 봅니다.
광화문에 갔는데
아기들이 맨발로 막 뛰어다니길래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건가 했는데
물놀이하는 날이었습니다.
키만 한 40cm 작았으면 함께 물장구치는 건데..
그리고 광화문 교보문고 가서 책 두 권 샀습니다.
8월에 읽을 책 들인데
<시지프 신화>는 책을 펼치면 곧장 잠이 오는 바람에
<결혼, 여름>은 좀 쉬워 보이는 덕에
골랐습니다.
또 여름을 엄청 타는 중인데, 제목에 여름이 들어갔으니 그냥 지나칠 순 없습니다.
이번 방학 때 여러 가지 목표가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되는 목표는
카뮈의 사상을 스스로 좀 정리해 보는 것입니다.
<이방인>이랑 <시지프 신화>를 읽고 썼던 글에서 더 발전된 글을 꼭 쓰고 싶은데,
<시지프 신화>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최근 읽은 책 중에 가장 독서를 지속하기 힘든 책입니다.
그래서 좀 쉬워 보이는 <결혼, 여름>을 읽고 <시지프 신화>로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뽀송뽀송한 여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