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카 솔닛의 책 ≪멀고도 가까운≫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외로움을 느꼈다. 암으로 투병하던 그녀에게 주변에서 사랑과 보살핌을 준 이들이 나에게는 부재하기에, 비교가 되는 나의 빈곤함에 외로움을 느낀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인지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았다.
아니다. 나는 리베카 솔닛이 받은 사랑과 보살핌을, 그만큼의 양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아니, 그렇게 살기를 과감히 내려놓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연대는 많은 인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답게 살지 못할 성정이기에, 나에게 맞는 관계가 얼마만큼의 크기여야 하는지 알만한 시기에 도달해 있다.
많지 않아도 된다.
한두 사람만 있어도, 그들의 사랑과 보살핌에도 나는 안식을 얻을 수 있다. 깨닫고 나니 자라났던 외로움과 질투가 이내 사라진다. 나의 것이 아닌 것들에 외로움과 질투는 자라날 자리가 없다.
<나에 대하여>
나는 감정이입이 많은 사람이고, 공감이 자연스러운 사람이다. 불필요한 많은 공감이 불쑥 찾아올 때도 있고, 생각도 많다 보니 때때로 그만큼의 많은 에너지 소비로 이어지곤 했다.
결과적으로 그런 질서 없이 엉켜있는 듯한 관계와 연결은 오히려 제대로 서로를 인식하는데 방해가 되었다. 때로는 진심과 감정을 왜곡시키는, 파국으로 닿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을 경험해 보기도 했다.
더구나 나의 감정이 뒷전이 되는 일이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나는 좋아하는 사람, 한두 사람만 있으면 충분히 애정하고 보살피며 살 수 있다.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
<친구에 대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친구에 대해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1. 유용한 친구
서로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같은 목적을 추구하는 관계지만 목적과 실리가 부합하지 않으면 쉽게 깨진다.
2. 즐거움을 추구하는 친구
함께하면 즐겁고 재미있는 관계, 2,30대에 주를 이룬다. 시간이 지나 서로의 관심사나 취미가 바뀌면 또는 각자의 상황이 어려워져 즐거움을 추구할 여력이 없으면 금방 식는 관계다.
3. '선'을 추구하는 친구
유용한 친구와 즐거움을 추구하는 관계와는 깊이가 다른 우정을 말한다. 가장 높은 가치의 우정이고 인간이 추구해야 할 우정으로 꼽는다. 서로의 선한 의지, 행복을 추구하는 마음을 공유하는 친구이며 단단한 관계를 말한다.
<이윤영, «불안 대신 인문학을 선택했습니다» 참고>
나의 지난 우정과 연대는 어땠는가, 목표를 향해 함께 달리던 사람들은 친구가 아닌 동료였음을 이제는 받아들였다. 그리고 지금은 멀리에서 그들 각자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친구와 동료는 엄연히 다르다. 친구의 조건은 물리적, 정서적 가까움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거리와 시간이 충분하다고 해도 함께 무엇을 공유했는지 또한 관계를 결정짓는데 중요하다.
현재 나에게는 소수의 동료가 있고 한 명의 친구가 있다.
친구는 동료와 다른 감정을 나눈다. 삶에 대해 서로가 비슷한 시선을 가지고 있고, 존중이 담긴 생각을 나눌 지혜의 깊이가 얕지도, 깊지도 않게 비슷하다. 인생에서 중요한 순위가 무엇인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공감을 나눌 수도 있다. 그러니 내게 친구는 꽤나 소중할 수밖에 없다.
도취될 수 있는 즐거움이 우선순위였던 시기가 있었다. 누군가와 삶에 유용함에 관해서만 생각을 나누던 시기도 있었다. 삶은 발전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기대하던 행복이라고 믿던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우선순위가 저 멀리 뒤로 물러나 있다. 그리고 이전에 비해 나와 관계에 관하여 깊이 볼 수 있게 되었다.
소중한 사람에게 함부로 나의 생각을 관철시키거나 고집하지 않고 가깝다는 이유로 장난으로 포장된 무례한 언행 또한 얼마나 배려심이 없는 태도였는지 반성도 오래 했다. 지난 관계에 대한 미안함과 후회는 남아있는 새로운 관계에 대해 성숙한 걸음으로 나아가게 한다.
무지하고 불안했던 시기에서 벗어나 내가 건강하고 행복한 관계를 이어가길 바란다. 누가 얼마나 많은가는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