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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Apr 19. 2020

코로나 때문에 술을 끊었습니다

강제 금주를 실천하는 일상

술을 끊었더니 나에게 생긴 변화






 쉽게 일반화를 할 수는 없지만 공기업과 사기업의 회식을 모두를 겪어본 결과 공기업보다는 사기업이 훨씬 회식 자리가 많았다. 공기업에 다닐 때는 주로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회식을 하였고 퇴근 이후에 하는 회식은 거의 피하는 추세였다. 공식적인 회식은 너무 안 한다 싶을 정도로 없었다. 처음엔 이해가 안 되었으나 그런 문화를 가진 기업에서 일을 하다 보니 조금은 당연한 분위기라고 여겨졌고 그게 마음에 들었다. 점심시간에 맛있는 식사로 회식을 대체하니 퇴근 후에는 나의 자유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고, 술을 먹지 않다 보니 다음 날 숙취에 대한 걱정도 없었다. 어쩌다 분기별로 하는 회식조차 선택 사항이었으며 우리 부서에는 술을 안 드시는 상사분들이 더 많았기에 회식자리는 나에게나 내 간에게나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사기업에 입사를 한 후,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기업이구나를 뼈저리게 느꼈다. 송년회와 환영회. 팀 회식과 부서 회식. 그리고 그냥 이유 없는 게릴라 저녁 회식들. 하루아침에 내 일상은 회식들로 넘쳐나게 되었다. 첫 한 달은 회식 문화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는 날들을 보냈다. 정말로 건배사들이 실존한다는 걸 확인했고, 소규모의 회식과 중요 임원분이 오는 자리까지 다양한 모임들이 쉴 새 없이 예정되어 있었다.

 '오늘 퇴근하고 뭐하지?' 열심히 내 일과를 계획해도 점심시간에 오늘 회식 예정이라는 한 마디에 나는 서둘러 그 날의 스케줄을 취소해야 했다. 회식은 막내인 나에겐 당연히 필수로 참석하는 자리였다. 기업에 입사를 했으니 새로운 기업의 음주 문화를 또 받아들여야 했다. 한 때 술을 정말 많이도 마셨고, 대학교 3학년이던 작년 초까지도 부어라 마셔댔던 나였어도 어째 공기업의 회식문화에 익숙해진 나에게는 많아진 술자리가 부담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술을 한 때 좋아했었던 건 사실이다. 특히 외국에 살 때는 파티들을 좋아했고 비어퐁을 수 백번쯤 하던 때가 있었다. 3주간 매일매일 술을 마시기도 했다. 취할 때까지 비어퐁을 하다가 새벽 3시에 집에 들어오는 게 일상이었다. 한국에서도 그랬다. 친구들을 만나면 또 기분이 좋아져서 술을 잘 들이켰다. 학교를 다닐 때나, 회사를 다닐 때나 친구들과 만나서 술을 마시는 건 분명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방법 중 하나였다. 나는 사람과 어울리며 먹는 술이 좋았다. 각 잡고 술만 마시는 모임은 나와 잘 맞지 않았지만 포차나 파티에서 마시는 맥주나 칵테일을 좋아했다. 역시 사람들을 좋아하고, 술을 미워하지 않는 나는 분위기에 휩쓸려 음주를 하는 날이 잦았다. 물론 이때의 음주는 내 자발적인 선택이었다. 평일의 업무 스트레스는 회식보다 친구와 단둘이 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푸는 게 더 나았다. 그래서 적어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시내 근처 펍에 갔고, 아니면 집에서 홀짝홀짝 술을 마시기도 했다. 그렇게 회식을 안 하는 날에도 여전히 술은 나와 함께 했다. 여기에 비공식적인 회식까지 더 하면 내 일주일은 술 약속들로 가득찼다. 애플와치는 매일 밤마다 경고음을 울려댔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술을 잘 마시는 편도 아니었다.


 인도는 하루아침에 봉쇄가 되었다. 일요일 밤에 일찍 자려던 도중 갑자기 다음 주부터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강력한 락다운 조치가 내려져 펍과 레스토랑을 포함한 모든 시설들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게 된 것이다. 술을 살 수 있는 가게와 마트까지도 전부 문을 닫았다. 마트는 2주 만에 열었으나 차량은 통제되었고, 당연히 자차가 없는 나는 나갈 수도 없었다. 평소에 자주 가는 펍에서 음주를 즐기던 나는 저절로 술이 끊겼다. 술을 끊었다. 원하진 않았지만, 갑자기 말이다.


 원래도 술을 잘 마시지 못하던 나는 아침에 일어나는 게 고역이었다. 게다가 나는 잠도 많았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 보면 아침에는 숙취의 흔적이 가득한 얼굴을 애써 화장으로 가린 후 피곤한 몸뚱아리를 이끌고 집을 나서야 했다. 당연히 회사에 출근을 해서도 정신없는 오전을 보냈다. 술 마신 다음 날이 주말이라면 오후 2-3시에 일어나 하루를 날려버리기 일쑤였다. 술을 못 했어도, 술이 없는 일상이란 없었다. 감히 상상을 해 본 적도 없다. 술이란 어른들이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피곤과 숙취 정도는 감내할 수 있어야 했다. 춤추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절대 놓을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술을 끊었다. 동시에 내 식단의 8할을 차지하던 외식과 배달도 끊겼다.

 집에 있는 거라곤 쌀, 계란, 냉동 해산물이나 아파트 단지 내에서 산 야채밖에 없었다. 나는 그렇게 요리를 시작했다. 술을 마시지 않으니 식생활의 변화가 생겼다. 원래는 늦은 저녁에 피자를 먹으며 맥주를 마시는 게 습관이었다. 그리고 나는 밥보다 안주를 더 잘 만드는 사람이었다. 치킨을 시켜도 맥주를 마셔야 했고, 집에 오렌지 주스를 사다가 칵테일을 만들어 먹는 것을 좋아했다. 이제는 그럴 일이 없었다. 회사를 다니지 않으니 퇴근 후에 배달을 시키거나 외식을 하는 일도 없었다. 하루 세 끼 모두를 집에서 해결해야 했다.


 세상에, 내가 인도까지 와서 삼시 세 끼를 찍다니. 처음에는 마트에 갈 수 없는 형편이라 음식 조달이 문제였지만, 아파트에 있는 야채가게만은 꾸준히 열었기 때문에 강제 채식을 시작하게 되었다. 야채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한 채식이었다. 라따뚜이를 해 먹고, 된장찌개를 끓였다. 매일 쌀밥을 지었고 야채를 듬뿍 넣은 볶음밥과 또 토마토를 넣은 건강한 아침식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름 정성을 들인 요리를 해서 건강한 끼니를 챙겨 먹는다는 뿌듯함이 생겼다. 그런대로 맛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자 저절로 건강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즉 술을 마실 때에는 건강 같은 건 고려하지 않아야 마음이 편했기 때문에 과식을 하건 야식을 먹건 죄책감이 없었다. 술 배가 나오는 것도 인정해야 했다. 술의 안주는 당연히 밀가루가 들어가는 인스턴트 푸드나 튀김류였다. 하지만 매일 24시간 집에만 있는 생활을 하다 보니 내 욕구와 요구에 맞춘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이젠 더 이상 밤에 맥주 한 잔 하면서 과자를 먹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참에 술배를 없애야겠다. 채식 위주 식단에, 매일 복근 운동을 실천했다. 오후 8시 이후로는 음식을 먹지 않았고 음주 대신 건강식을 해 먹다 보니 내 몸은 저절로 가벼워졌다. 오랜 숙적이던 뱃살도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 놀랍게도 나는 잠이 많은, 아주 많은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아침형 인간이 되려는 노력은 이상할만큼 항상 실패했었다. 아침형 인간이라는 책까지 읽었지만 생활 습관을 바꾼다는 건 쉽지 않았다. 요즘 시대에 어떻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가. 따지자면 나는 새벽형 인간으로 오랜 시간을 보내왔다. 공부도 늦은 시간에 해야 집중이 잘 되었고 늦게까지 친구들을 만나거나 연락을 해왔었다. 게다가 내가 해야 하는 일들과 취미 생활을 다 하고 나면 늦은 밤이 되는 건 일상이었다. 생활 패턴이 망가졌을 때는 새벽 5시나 6시에 잠에 들기도 했다. 자기 전까지 핸드폰을 붙잡고 있었고 새벽에 날 깨우는 것도 그 핸드폰이었다.

 살면서 내가 아침형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런 인간과 연이 없는 것 같았다. 음주를 하면 새벽에 집에 오거나 아주 늦게 잠에 드는 게 기본이었고 그런 내가 이른 시각에 일어날 수 없지 않은가. 평일을 열심히 달려 찾아온 주말에는 항상 오후나 되어야 일어났고, 약속이 없는 날이면 오전에 일어날 이유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순전히 내 알람 덕이었으며 그마저도 기쁘거나 개운한 마음으로 일어난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술을 마시지 않으니 아침에 해가 뜨면 저절로 눈이 떠졌다. 평소대로라면 새벽에 잠이 들어 오후 12시쯤이나 되어야 일어나는 내가, 이제는 알람 없이도 오전 7시에서 9시 사이에 일어나게 되었다. 취침 시간과도 상관없이 말이다. 더군다나 아침이 개운해졌다. 더 이상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개운한 아침은 기분 좋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짜증스러운 감정이 없어지니 잠에 드는 것이 편안해지고 좋아지게 되었다. 내일도 똑같이 방학 같은 하루일 거라는 안도 덕분에 그런지 부담 없이 잠에 들 수 있었고 나를 괴롭히던 수면 장애마저 잠적을 감췄다.


 아침에 일어나는 효과는 정말로 컸다. 하루가 아주 길어졌다. 더불어 할 수 있는 게 많아졌다. 평소에도 욕심 많고 하고 싶은 게 많은 나는 하루에도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회사를 다닐 때는 못 하던 공부들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최근에 시작한 프랑스어 강의들을 들었고, 넷플릭스로 추천받은 드라마나 영화를 실컷 볼 수 있었다.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끼를 건강하게 만들어 먹고, 운동을 하고, 기타를 치고, 가져온 책을 읽고, 전공 공부를 해도 시간이 남았다. 술을 먹는데에 들어가는 불필요한 시간을 줄이니 자연스레 나에 대해 고민하고 치열하게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일명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더 구체적인 공부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천해나가며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도전을 하며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들이 무엇인지, 어떤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조금씩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오후 3시께나 일어나 숙취와 함께 늦은 점심으로 라면을 먹고, 유튜브를 보다가 시간의 흐름을 안타까워하며 다시 잠에 드는 비생산적인 하루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하루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니, 당연히 삶의 질과 행복도가 높아졌다.

 

 4월이 시작하고 나서는 아침형 인간을 벗어났다.  


 나는 이제 오전 5시에 기상한다. 갑자기 순식간에 새벽형 인간이 되다니, 나도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이제 오전 5시에 기상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오전 5시까지 마시던 술을 끊었기 때문이다. 술을 끊고 나는 집에서 요가를 시작했다.

 오전 5시에 일어나서 요가 수업을 듣는다. 수능 공부를 하면서도 오전 5시에는 일어나 본 적이 없었다. 재수를 할 때도 학원 시간을 맞춰서 가기 위해 최대한 늦게 날 깨우고 최대한 빨리 준비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요가 선생님을 하려고 새벽 5시에 일어난다고? 술을 마시던 나에겐 역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본래 몸이 아주 뻣뻣한 사람이다. 그런 내가 요가 강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학원에 등록을 했고 이제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는 기염을 토한다. 정말이지 나도 이런 변화가 믿기지 않는다. 요가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지만, 이는 내가 더 수련을 하여 나중에 작성하도록 하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요가 또한 나를 바꾸었다. 이제 나는 요가와 명상으로 새벽을 맞이한다. 매일 2시간의 수련 동안 어두운 하늘이 점점 밝아오는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감사함을 느낀다. 두 시간의 요가 수련을 끝내고 나도 여전히 오전 7시다.

 

 집에 술이 없어서 술을 끊은 것이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기 이전 맥주를 10병 비축해 놓았고, 집에는 칵테일을 만들어먹을 보드카와 와인도 있다. 안주를 만들 수 있는 음식도 충분하다.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니 술자리가 없어졌고 혼자서 술을 마실 이유도 없으니 술을 끊게 된 것이다. 반강제로 금주를 하게 되었지만, 나는 언제든 술을 마실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다. 그러나 락다운 동안 한 번도 그 유혹에 넘어간 적이 없다. 나는 내가 술을 마시지 않은 이후로 얼마나 다른 사람이 되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더 부지런해질 수 있고, 더 건강해질 수 있다면 나는 앞으로도 금주를 선택할 것만 같다. 나는 더 이상 내 하루에 대해 불평불만하지 않는다. 더 이상 어제의 실수를 후회하지 않고, 다른 누군가에게 미안해할 일도 없다. 내일은 과연 어떤 일을 해낼 수 있을지, 얼마나 또 즐겁고 뿌듯한 시간을 보낼지 그러한 기대들로 가득 찬 오늘을 보낸다. 한 달 간의 금주를 통해 나는 내 안의 잠재력을 확인했고 건강한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코로나로 인한 길고 지루했던 시간이 가져다준 긍정적인 변화다. 시작은 코로나로 인한 반강제적 금주였지만 나를 참 많이도 변화시킨 것을 알기에 그 효과와 나의 변화를 널리 알리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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