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출산·초고자살 사회에서 살기에
대한민국은 초저출산·초고자살 사회이다. 2023년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0.72명을 기록하며 기염을 토했다. 2023년 자살률도 인구 10만 명당 23.7명이라는 놀라운 수치를 기록했다. 2023년 OECD 국가의 평균 합계 출산율은 1.4명이고, 자살률은 10.7명이었다. 각각 우리나라와 2배 정도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객관적 수치가 이러한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내 주변엔 없는데?", "인스타그램 보면 다들 엄청 행복한데?"라는 식의 허무맹랑한 주관성을 표함으로써 애써 무시하고 넘어간다. 제아무리 세상이 긍정적 사고를 강요한다지만 이것은 결코 긍정적 관점을 지닌 게 아닌, 망상으로 현실을 대치하는 기만적 태도일 뿐이다.
그렇다고 하여 부정적인 사고로 세상을 비난하며 살라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면 그러한 '긍정성'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나 또한 이를 찾아내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발품 팔아가며 기웃거린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제대로 된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남들이 만들어 낸 것은 그들만의 답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삶과 가치관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의존해서는 답을 찾아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초기엔 망치부인(레전드경선샘)이라는 분의 방송을 들으며 많은 자극을 받았다. 경선샘께서는 사회의 엘리트층이라는, 학벌을 위시한 능력주의로 으스대는 자들이 기실 얼마나 한심한 존재들인지를 제대로 까발려 주셨다.
과거에 난 학창시절부터 문제풀이에 전념하고 그것만 잘 해내면 미래가 창창할 것이라는 기대로 살았으나, 막상 SKY라고 부르는 대학에 들어오니 여기서 공부하는 이들이 그리 대단한 존재가 아니고 오히려 지극히 오만하고 세상을 헤쳐먹으려는 욕망만 그득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외고 출신이니 뭐니 하며 우쭐대는 자들이 그렇지 못한 학우들에게 자신들의 잠재력을 그 같은 프레임 속에 가둬 발현하지 못하토록 하려는 '오징어 게임'적 연출을 도모하는 한심한 이들이라는 사실을 이해했다(대학에 다닐 당시에는 아무래도 미숙했기에 그러한 그들의 덫에 깊숙이 빨려들었다는 사실을 차후에 납득했다). 이러한 고통과 회환에 빠져 지낼 때인 대학교 고학년~졸업할 즈음 경선샘의 방송을 들으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렇게 위로를 받고는 새로운 삶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말이 차안대(遮眼帶)를 끼고 달리는 것처럼 갇혀 있던 사고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사회의 피상적 현상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제시해주진 못했다. 한국 정치사가 어떻게 이끌어져 왔는지를 그 분의 생생한 경험과 투철한 저항이라는 서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으나 그 뒤에 숨겨진 근본적 맥락을 이해할 수 없었다. 따라서 사회 구조의 저변을 파고드는 철학적 천착이 필요했다. 그것은 '도올 김용옥' 선생님으로부터 얻을 수 있었다. 유튜브에서 김용옥 선생님의 강연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놀라웠다. 어렸을 때 EBS에서 방송하던 불교 금강경 강의를 어머니께서 듣곤 하시던 기억이 났다. 그러한 추억이 나를 도올 선생님께로 이끌었고, 도올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철학 강의는 흑암에 갇혀있던 두 눈을 뜨게 했다.
'소각(小覺)과 대각(大覺)'에 대해 논하시며 자기 자신이라는 자아에서 벗어나는 단계와 차후에 세상에 이를 전파함으로써 다른 이들 역시 자아에서 해방되어 진정한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려는 단계에 대해 논하시는 강연을 들으며 대단한 충격을 받았다. 이러한 대업을 노자, 공자, 싯다르타, 예수, 최수운-최해월, 전태일 등이 행해왔음을 역설하실 때 그 감동은 자못 대단했다. 그래서 교육행정직 9급 공무원에 붙고나서 금방 그만둘 때에 연세대 동양사학과 대학원에 지원했다. 과거의 동양 역사를 공부하면서 도올 선생님이 제시하시는 길을 따라가고자 할 생각을 해본 것이다. 실제로 합격까지 하며 교수님들은 기꺼이 반겨주셨으나, 그렇게 행하기에는 내 자신이 너무나도 부족하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나 자신감이 또한 없었기에 입학을 포기하게 되었다. 무언가를 느끼긴 했으나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기에는 기존 사회 질서에 순응하고 인정받기를 갈구하는 유아적 자세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그 결과 다시금 공무원 세계를 전전하게 된다. 그렇게 3번의 공무원 입직과 퇴직을 추가로 이뤄내고 현재는 그저 자유의 상태에서 소요(逍遙)하며 지내고 있다. 참으로 놀라운 건 제대로 경험해보기 전까지는 특정 조직 및 사회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기가 어렵기 때문에, 거기에 들어가기만 하면 파랑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망상에 쉬이 젖어든다는 점이다. 그것을 4번이나 반복했다. 또한 지금의 소요 상태에 접어들기 전에는 <감이당>이라고 하는 한때 유명하셨던 고미숙 씨 중심의 '사적(私的) 공동체 학습 기관'에서 수학해보기도 했다. 감이당이라는 곳은 대단한 지혜를 한편으로는 지니고 있으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대단한 우매함을 지니고 있는 역설적인 공간이었다. 현 사회 체제를 부정하고 그것이 지니고 있는 허무함과 독선에 대해 경계하는 발상 및 자세를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선 재미난 곳이기도 하였으나, 그렇다고 하여 사회를 도외시하고 자신들끼리 모여 지식 같은 거는 필요없고 '깨달음'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자신들의 상념을 이래저래 주고받는 공부를 한다고 하여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더이상 머물 곳이 아니라고 느끼기도 했다.
현재는 대중에 전향적인 활동을 하려고 노력하시는 <내면소통>의 김주환 교수님, <유라시아 견문>을 발간하고 중국의 기술 굴기 및 미국의 테크노크라시 등에 관한 글을 내신 이병한 박사님, 한국의 파시즘적 사회 문화를 경고하고 이의 타개책으로 교육개혁을 역설하시는 김누리 교수님 등 제도권에 뿌리를 둔 분들로부터 더 많이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들 훌륭하고 대단하신 분들이며 현재의 나의 사고에 깊은 층위의 기반을 내주셨다. 정말 놀랍고 감사하다. 그렇지만 단순히 그들의 길을 따라가고 바라보며 배우기만 해서는 나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른다. 나는 어디로 가야하나? 세상은 겉으론 화려한 척하지만 속은 썩을 대로 썩어 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청년참여단(네트워크), 주민참여예산위원회, 학원에서 가르치는 학생들, 허드렛일 알바에서 만나는 동료들 등 많은 이들이 사회에서 제대로 인정받는, 부르주아 시민 계층에 속하는 직업군에 속하지 못하거나 속하지 못할까봐 서글퍼하며들 살고 있었다(아니면 퇴직후 철천지 백수가 되어 젊은 시절의 미몽을 그리워하거나). 나 또한 이런 곳에 합류할 때마다 같은 부류로 전락하진 않을까 하는 깊은 두려움이 마음 속에서 자라났다.
다들 자기보다 잘나가거나 적어도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과 모이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유상종-끼리끼리의 문화가 형성되고 그것은 서로 끊임없이 비교하고 모멸하는 더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거기서 쫓겨나지 않으려고 발악하거나 쫓겨난 이들은 평생 증오와 분노 및 시기로 여생을 보내게 된다. 청년참여단도 기초 지자체와 광역 지자체 두 군데에서 참여하고 있는데, 기초 지자체 청년참여단에서는 '광역시 모 공사'에서 일하는 직원분이 합류하셨고, 내가 몸 담고 있는 분과의 장이 되어 회의를 이끌고자 하였다. 그렇기에 기꺼이 분과장 직을 내어주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 분은 2년 동안 매년 초에 매달 열심히 회의 하자고 말은 하면서 단 한번의 회의도 소집하지 않는 기만적 행태를 보여주었다. 이분으로부터 모종의 강렬한 오만과 자신보다 약자라고 생각되는 이들에 대한 하염없는 괄시를 느꼈는데, 아무래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동네 백수 청년이라는 한심한 작자들이 나라에서 3~5만원씩 수당 받으며 의미 없는 정책제안을 남발하는 꼴을 보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나 또한 공무원을 여러 번 해보았기에 그게 어떤 정서인지 십분 공감할 수 있었다. 어줍잖은 이들이 나랏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모습이 실소를 자아냈을 것이다.
또한 학원 강사 자리를 구하기 위해 여럿 학원에 방문하여 면접을 보기도 하였는데, 개중 한 곳에서는 내 대학 학벌이 괜찮긴 하나 고등학교 이름을 대니 "한번도 들어본 적 없다"는 식으로 비웃음을 머금던 분도 계셨다. 난 속으로 '당신의 학교는 내가 합격했는데도 안 갔을 대학일 것이다', '그리고 그 어떤 9급 공무원을 했어도 동네에서 학원 원장인 당신보단 훨씬 더 나은 미래를 살았을 거다'라는 반발심이 올라옴을 느꼈으나 이 분도 삶이 얼마나 기구하고 갖가지 모욕을 받았길래 이러실까라는 생각이 들어 한껏 용서하기도 했다. 필시 이와 같은 일례들이 사회 도처에 널려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을 혐오하는데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타인을 업신여김으로써 애써 감추고자 한다. 그렇게 타인에게 억하심정을 심어주게 되고 억하심정을 갖게 된 타인은 또 다른 타인을 물색하여 억하심정을 심는다. 그것은 돌고돌아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기실 타인에게 억하심정을 심는 행위의 토대는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였으니 스스로에 대한 혐오가 스스로에 대한 혐오를 낳는 것이다. 그리하여 출산율은 최저로 치닫고 자살율은 최고로 치닫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인간이 인간을 혐오하고 모멸하는 사회. 이것이 작금의 한국이다. 당신의 나라다. 이러한 사회에서 소비는 신나게 즐길 수 있으니 괜찮다고? 현재 수준의 소비를 지속하며 산다면 지구는 필멸(必滅)하게 된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에서는 지구의 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1.5도 이상 상승하면 지구온난화로 인한 위기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고 경고했다. 장기적인 평균 온도 상승이 섭씨 1.5도에 이른 것은 아니나, 단기적으로는 이를 초과해버린 해가 바로 작년인 2024년이다. 2030년까지는 탄소배출을 절반으로 줄이고 2050년경에 탄소중립(Net-Zero)이 달성되어야 한다던데, 2020년대 중후반에 이미 기온온난화 임계점을 넘어버리게 생겼으니 가관일 따름이다. 소비로 모든 걸 충족할 수 있다고 믿는 자본주의와 광고에 기반한 철두철미한 신념이 이미 세상을 절멸케 할 위기라는 사실을 다양한 기후이상 현상을 목도함으로써 관찰할 수 있음에도 꿈나라 같은 동화 세상에서 소비로 연명하는 유아기적 나르시시즘만을 탐착하며 살고 있으니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이러한 생활 습관 이제는 저버려야 하지 않을까? 초저출산/초고자살 사회인 우리나라의 국민으로서 이 같은 문제의식을 반드시 지녀야 한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어차피 자식 낳아봐야 금세기 내에 모두 죽는다. 또한 살아봐야 금세기 내에 모두 죽는데 그때 죽으나 지금 죽으나 무슨 차이인가? 그래서 그렇게들 결혼하지 않고 스스로 죽어가나보다. 한국인이 노벨상은 못 타나 세계에서 가장 똑똑하다고들 하는데, 그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는 듯하다. 미래를 너무나도 확연히 그리고 있으니 자율적으로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인류 안락사 계획'을 이행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거대한 물결에 나름 동참하고자 글이라도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차분하게 하나씩 사회에서 겪어가는 경험을 통해 나름의 사유를 형성해보고자 한다.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글감이 미천하여 많이금 부족하겠으나 무엇이라도 해보겠다는 마음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의거에 성공한 안중근 의사와 최근 도쿄 여행에서 방문하기도 한 메이지 신궁과 요요기 공원 일대에서 1932년 1월 8일 히로히토 일왕을 상대로 폭탄 의거를 감행한 이봉창 의사,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커우 공원 의거를 결행하여 시라카와 요시노리 육군대장의 사망 및 시게미쓰 마모루 주중일본공사 등의 중상이라는 결과를 이끌어 낸 윤봉길 의사 등 대단한 선조들도 완벽히 준비가 되어 거사를 치룬 게 아닐 것이다. 반드시 행해야 하는 일을 그저 적절한 시기에 행했을 뿐이다. 나 또한 이 분들의 자세를 감히 본 받아 졸고를 간간이 써내리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