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독서신문 Mar 09. 2020

『무궁화의 여왕』 출간… 그는 왜 아직 싸우나?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MBC 드라마 ‘선덕여왕’(최고 시청률 43.6%)의 제작진이 자신의 뮤지컬 대본(「무궁화의 여왕, 선덕」)을 도용했다며 수년간 소를 제기해온 김지영 그레잇웍스 대표가 지난달 25일 자신의 대본을 각색한 책(『무궁화의 여왕』)을 출간했다. 해당 대본은 김 대표가 2004년 쓴 것으로, 16년 만에 세상에 나온 것이다. 김 대표는 이번 작품을 “10년간의 법정 싸움 끝에 태어난 완전히 새로운 희곡”이며 “남의 것을 뺐고 법조 시스템을 악용하는 사회, 물질만능주의 사회에 대한 일종의 문학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법적으로는 표절이 아니라고 판결이 난 상황이지만, 김지영 대표는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계속해서 법정에서 싸워왔다. 그 시작은 2010년 김 대표가 드라마 ‘선덕여왕’의 김영현·박상연 작가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고부터였다. 자신의 뮤지컬 대본을 도용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김 대표에 따르면, 2005년 당시 모 대형 연예기획사로부터 「무궁화의 여왕, 선덕」의 드라마 제작을 위한 투자를 받았고, 이 과정에서 대본이 유출돼 드라마 ‘선덕여왕’ 제작에 이용됐다는 것. 김 대표는 5일 통화에서 “연예기획사의 A씨에게 대본을 믿고 맡겼으나 그것이 A씨와 친한 B씨에게 넘어갔고, B씨가 작가들에게 전해 이를 바탕으로 드라마가 제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B씨와 작가들은 2013년 함께 회사를 설립할 정도로 긴밀한 관계였고, B씨는 그 회사를 팔아 매각차익을 얻었다”고 덧붙였다.    


1심(2012년 2월)은 패소, 2심(2012년 12월)은 승소였다. 1심 재판부는 “주요 등장인물과 이야기 구조가 대부분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하고 있을 뿐 뮤지컬 대본과 드라마 대본이 실질적으로 유사하지 않다”고 판단했고, 2심 재판부는 “전체적인 줄거리가 일치하고 인물 갈등 구조 등이 상당히 유사하다”며 드라마 ‘선덕여왕’이 표절작임을 인정했다. 


당시 법원의 표절 판단 기준은 ‘접근 가능성’(작가들이 김 대표의 대본에 접근할 수 있었는지 여부)과 뮤지컬 대본과 드라마의 ‘실질적 유사성’이었다. 1심에서는 접근 가능성과 실질적 유사성 모두 부족하다고 판단했지만, 2심 재판부는 작가들이 뮤지컬 대본에 접근했다고 할 만한 충분한 근거들이 있고, 드라마가 김 대표의 작품과 실질적으로 유사하다고 봤다. 개인이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저작권 소송에서 승소한 것은 당시 이례적이었다.    

  

2심 패소 후 김영현·박상연 작가는 MBC를 통해 “2010년 초, 이런 일이 있고 나서 그 뮤지컬 대본을 읽어보려 했으나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어 결국 변호인을 통해서 간신히 대본을 입수할 수 있었다”라며 “그 전에 대본을 본 적이 없는데도 도둑으로 몰린 심정을 누가 알겠는가”라고 밝혔고, 대법원에 상고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2014년 7월, 대법원은 “MBC와 ‘선덕여왕’ 작가 등이 대본을 완성하기 전 뮤지컬 대본을 미리 입수해 줄거리를 알고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주인공의 대립 구도나 사건 전개에서 일부 유사한 점이 있지만, 뮤지컬 대본과 드라마 대본이 각각 개별적으로 작성됐는데 우연히 같은 내용이 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을 만큼 완전히 유사하지는 않다”고 판단해 2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뒤집어 원고 패소 취지로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파기환송심에서 법원은 대법원의 판단을 받아들였고, 김 대표는 다시 상고했으나 법원은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재판에서 본안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것)을 내렸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대법원 판결이 있던 2014년은 국정농단의 시대”라며 “당시 제 사안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던 사안들이 줄줄이 파기됐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도 존재했던, 극히 이례적인 시대의 영향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2년 뒤인 2016년 그는 새로운 증거를 바탕으로 소를 제기했다. 김 대표는 “B씨와 작가들 사이에 계약 관계가 있었다는 증거를 새롭게 발견해 소를 제기했다”며 “과거 대법원 판결까지는 그런 증거들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2019년 6월 1심에서 패소하고 다시 항소했다. 5일 기준 2심 재판부는 세 번째 바뀌었고, 김 대표는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김 대표는 “대법원의 판결을 뒤집는 것이 재판부 입장에서는 상당한 부담이어서 승소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 법률가들의 조언”이라며 “1심 재판부도, 2심 재판부도 조정을 권고했지만 거절했다. 이 소송은 더 이상 소송이 아니라 사회를 개혁하려는 문학 행위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그는 “(소송이라는 행위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타인의 것을 무단으로 유출, 도용하는 행태에 경각심을 주는 등 사회의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지난달 25일 출간한 『무궁화의 여왕』에 대해서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우리 사회의 악에 대해 깊이 있게 느끼게 됐고, 사람들이 숨기려는 악의 본질에 대해서 끊임없이 모색했다”며 “지난 10년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무궁화의 여왕, 선덕」을 희곡 『무궁화의 여왕』으로 새롭게 썼다. 소설로도 출간할 예정이며, 영화화 작업도 준비 중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이나 처음에 썼던 대본과는 다른, 새로운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온라인 문학 플랫폼 ‘던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