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기준 서울에서 근무하는 의사 수는 3만359명, 경기도는 2만1,210명으로 전국 의사 인력(10만5,628명) 중 절반이 수도권에 집중됐다. 국민 1,000명당 의사 수는 서울이 3.1명인데 반해 경북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1.4명. 이런 지역 간 의료 격차는 그간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됐다.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에 나선 건 이런 이유에서다. 공공 의대를 세워 앞으로 10년간 매년 400명씩 총 4,000명을 증원하겠다는 계획. 400명 중 300명은 지역 의사(지방에서 10년간 의무 복무)로 50명은 ‘특수·전문분야’(감염내과, 소아외과, 역학조사관 등), 50명은 ‘의사과학자’(바이오, 제약 등)로 양성할 예정이다. 현재 전국의 의사 10만여명 중 감염외과의는 277명, 소아외과의는 48명이다. 특히,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관은 5명으로 필수인원(13명)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반면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인턴·레지던트로 구성)는 정부의 의사정원 확충 계획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지난 21일부터 파업에 나섰다. 정부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의사 수 확충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주장. 대한전공의협의회 측은 “의무(10년 의무 복무)로 일을 시키면 의욕과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방 의무복무는 이미 일본에서 실패했던 정책이다. 지방에서 의무 복무를 끝낸 의사들이 도시로 몰려 오히려 지방·도시 간 격차는 더 벌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의사 수를 늘리기보다는 지방에 양질의 의료 시설을 마련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말한다. 대전협 측은 “(힘들고 돈이 되지 않아 의사들이 기피하는 과에 근무하는) 이국종 교수님은 적자가 나서 병원의 눈치가 보인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 사실 외과 수술 원가 보존율이 70%다. 원가 100을 넣으면 30을 손해 보는 거다. 작은 병원은 그걸 감당할 수 없다. 감당 가능한 큰 병원을 지방에 짓고 의료 활성화에 정부가 투자해야 한다. 이런 노력 없이 의사 수만 늘린다는 건 거꾸로 된 발상”이라고 지적한다.
정리하자면 지방 그리고 특정 분야에 의사가 부족하니 의사를 많이 뽑아 공급을 늘리자는 정부와 공급을 늘려도 환경이 변하지 않으면 혼란만 가중될 것이란 의료계의 주장이 맞붙는 상황. 지난 26일 전임의(임상강사, 펠로)와 대한의사협회(동네의원)까지 파업에 돌입하자 정부는 수도권 지역 병원에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고, 지난 28일엔 업무개시명령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진료 현장에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전임의 열명을 서울지방경찰청장에 고발했다.
강 대 강 대치 양상이 계속되는 가운데,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고 있다. 병원이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면서 지난 26일 부산에선 독극물을 마신 40대 남성이 응급실을 전전하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더욱이 코로나19까지 재확산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황이지만 정부와 의료계 양측은 팽팽한 줄다리기를 계속하고 있다.
사실 양측의 주장은 모두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추정’일 뿐이다. 검사 출신인 김웅 미래통합당 국회의원이 책 『검사외전』에서 “도로를 넓히면 그만큼 차에 대한 수요도 늘어나게 된다. 마찬가지로 법률가가 늘어나면 법적 분쟁과 소송도 늘어난다. 변호사가 늘어나면 누구나 손쉽게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때로는 공급이 수요를 만들기도 한다”고 했듯 정부가 주장하는 단순 의사 수 확충은 어쩌면 안일한 대책일 수 있다. 하지만 “이미 공급과 수요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의료계의 주장도 대중 눈높이와는 거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결국 두 주체가 대화를 통해 접점을 찾는 것이 관건인데, 잇따른 대화에서도 양측은 서로의 진심을 확인했다면서도 상대가 먼저 양보하기를 기다리는 태도로 국민 분노를 높이고 있다. 의료계를 향해선 ‘밥그릇 지키기’란 비판이, 파업 동참자 고발이란 강경 대응을 주문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선 “왜 이리도 강경합니까? 대화와 협상이 먼저여야지 공권력이 먼저여서는 안됩니다. 물리력을 중단하고 대화와 협상에 나설 것을 정부에 촉구합니다”(7년 전 철도 파업을 주도한 민주노총 간부에 대해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황에서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한 발언)란 비판이 부메랑처럼 날아와 꽂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