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에 8세 여아를 잔혹하게 성폭행한 조두순이 오는 13일 출소한다. 그는 사건 당시 음주 상태였다는 심신미약이 참작돼 12년형을 선고 받았다. 사건에 관한 국민적 공분과 심각성에 비춰볼 때, 형량이 다소 낮다는 여론이 거세게 일었지만 판결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에 조두순의 출소를 막아 달라는 청와대 국민 청원이 올라왔고, 60만명 이상 동의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그는 곧 출소를 앞두고 있다.
지난 2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조두순 방지법’(아동·청소년 성보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조두순 출소 소식에 불안해하는 국민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제2의 조두순을 방지하자는 일환으로 보인다. 개정안에는 성범죄자의 거주지 공개 범위를 기존 ‘읍·면·동’에서 ‘도로명 및 건물번호’로 확대하고, 접근금지 범위에 유치원을 추가하는 내용이 담겼다. 16세 미만의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성을 사는 행위를 하면 가중처벌 하는 내용도 담겼다.
또한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및 공공단체의 장, 기관 내 피해자 보호 관련 업무 종사자에게는 성폭력 사건 발생 시 해당 사실을 수사기관에 신고하도록 하는 의무를 부과하고 의무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법은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갈수록 강력해지고 촘촘해져만 가는데, 왜 국민들의 ‘법감정’(法感情 :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나 법에 대하여 갖는 정서)은 야박해지고 있는 걸까.
이는 지난달 26일, 텔레그램 대화방 ‘박사방’에서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조주빈이 1심에서 징역 40년을 선고받은 일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조주빈과 조두순을 단순 비교하는 게 합당하진 않지만, 조두순의 죄가 조주빈에 비해 가볍다고 보는 국민들이 과연 있을까. 하지만 법은 조주빈에게 징역 40년을, 조두순에게는 징역 12년을 부과했다. 국민들의 법감정에 비춰볼 때, 조두순의 형량이 잘 납득이 잘 가지 않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저기요! 술 먹었다고 봐주는 게 어디 있어요? 그럼 술 먹고 운전하는 것도 봐줘야지. 술 먹고 운전하는 건 잘못이고, 술 먹고 아이를 이렇게 만들었는데 봐준다고?” - 영화 <소원> 中
‘조두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준익 감독의 영화 <소원>(2013)의 후반부 법정 장면에서 피해자 아버지의 친구가 판사에게 격분하며 내뱉은 말이다. 위 대사를 면밀하게 들여다보면, 그는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아니라 그를 제대로 단죄하지 못하는 ‘법’에 화를 내고 있다. 극중에서 판사는 피의자의 무자비한 범행 수법과 피해자의 극악한 고통을 인정하면서도, 피의자가 당시 술에 만취해 심신미약 상태에 있다는 점을 참작해 그에게 12년형을 선고한다.
책 『법은 얼마나 정의로운가』의 저자 폴커 키츠는 “무엇이 정당한 형벌인가?”라고 질문한다. 그는 “형벌은 보복이 아니라 정산이다. 범죄자는 나쁜 짓을 했고 그에 대한 대가로 나쁜 일을 겪는다. 그것으로 정의가 다시 세워지고 범죄자는 법을 지키는 사람들 영역으로 돌아갈 수 있다. (중략) 모든 형벌에는 타당한 면과 허점이 동시에 있다”며 법을 통해 사회적 신뢰를 지키고 구현하는 것의 딜레마를 설명한다.
책 『법의 이유』의 저자 홍성수 역시 “흔히 재판을 통해 정의를 구현한다는 말을 한다. (중략) 그런데 소송을 통해 정의를 실현하려다가 좌절을 겪는 사람이 적지 않고, 사법에 대한 신뢰는 높지 않은 것 같다”며 “언론에서도 사법 현실을 비판하는 기사들이 자주 나온다. 물론 실제로 그런 부분도 있지만 소송이라는 방법 자체가 가진 한계도 있다. 아무리 선진적인 사법 시스템을 갖춰 놓아도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이어 “만약 소송 자체의 내재적 문제가 핵심이라면, 정의를 실현하고 분쟁을 해결하는 것은 법정이 아닌 다른 곳에 맡겨야 한다. 예컨대 정치적·사회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였다면 법정에 가져오기보다는 다른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때는 법이 아니라 사회 혹은 정치의 문제인 거다. 반면 한국의 사법 자체가 문제라면, 그 사법 현실을 바꿔야 할 것”이라며 “물론 두 가지 문제는 서로 중첩돼 있고, 때로는 구별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도 있다”고 설명한다.
공자는 『논어』에서 “법률 제일주의 하에서는 도덕은 땅에 떨어지고 만다. 백성은 법에 저촉되지만 않으면 어떤 짓을 해도 좋다고 생각하게 된다. 결국 법망을 빠져나가기만 하면 어떤 악한 짓을 범해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 생기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정의로운 법은 윤리와 도덕을 최우선에 둘 때 구현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