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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신문 Sep 09. 2019

‘브런치’ 작가들이 전하는 가족, 여행 그리고 퇴사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카카오에서 운영하는 콘텐츠 퍼블리싱 플랫폼인 ‘브런치(brunch)’ 앱을 클릭할 때 나오는 글귀다. 『나니아 연대기』로 잘 알려진 영국의 소설가 C.S. 루이스가 한 이 말은 뭇 글쟁이들의 마음을 흔든다. “너는 글을 통해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 브런치는 일상을 힘겹게 파도치는 현대인들에게 ‘작가’라는 명칭을 부여하고, 그들이 자기 생각을 글로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감각적인 글쓰기 공간을 제공했다.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글을 쓰고 있을까. 기자가 추려보니 ‘가족’ ‘여행’ ‘퇴사’ 이 세 가지 키워드로 작성된 글이 상당히 많았다. 사람들은 간혹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글로 풀어낸다. 그 점을 고려하면, 현대인들에겐 가족과 여행 그리고 퇴사가 형용할 수 없는 감정 덩어리인 셈이다. 그 덩어리들을 나름대로 이리저리 조합해보았다. 현대인들에겐 퇴사해서 가족과 함께 여행하는 게 최고인 걸까. 왜 브런치 작가들은 이 키워드들에 골몰하는 것일까.


『작가란 무엇인가』에서 소설가 김연수는 “어떤 젊은이가 갑자기 책상에 앉아서 뭔가를 쓰기 시작한다면, 지금 그의 내면에서 불길이 일어났다는 뜻이다”라며 “불은 결코 홀로 타오르는 법이 없다. 그러니 그 불은 바깥 어딘가에서 그의 내면으로 번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김연수에 따르면 작가는 내면에 모종의 불길을 지닌 존재이다. 그 불길은 외부로부터 기인하는데, 브런치 작가들에게 가족, 여행 그리고 퇴사는 그들을 책상 앞에 앉히고, 글을 쓰게 하는 동인이다. 그들은 그 불길을 굳이 언어로 포착하려 하며, 글자 하나하나에 그 불길로 인한 감정을 꾹꾹 눌러 담는다. 그렇다면 브런치 작가들이 생각하는 가족, 여행, 퇴사는 무엇일까.


‘여정’이라는 필명의 에세이스트는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 이전보다 더 찬란한 방황을 하고 있다”라며 “음울한 감정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특히 그는 브런치에서 어머니에 대한 애잔한 마음을 잘 풀어내는 작가로 유명하다.


엊그제 새벽 세 시에 엄마에게서 카톡이 왔습니다. 아들, 자니? 엄마가 늦은 새벽에 깨어있을 리가 없는데, 무슨 일로 자고 있지 않느냐 물었더니 엄마가 그랬습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잠이 깼다. 그래서 그냥 너한테 카톡 해봤다. 피곤할 텐데 어서 자라. 엄마라는 사람들은 눈만 뜨면 자식들을 생각하는 그런 존재입니다.


“엄마야!” 아르바이트 중 오븐에 손가락을 덴 작가가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말. 우리는 아플 때 항상 엄마를 찾는다. 근데 엄마는 아프면 누굴 찾을까? 엄마도 엄마가 필요할 텐데. 「엄마야 나는 왜」라는 제목의 이 글에서 작가는 언젠가 엄마가 자신에게 아프고, 힘들다는 투정을 부렸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 글은 엄마가 아플 때 “딸아!” “아들아!”라고 외칠 수 있기를 바라는 작가의 애틋한 염원이 담겼다.


다음 키워드는 ‘여행’이다. 사람들은 따분한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우리가 그토록 갈구하던 멋진 여행지도 그곳에 사는 누군가에겐 지루한 일상일 뿐이다. 여행이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것임을. 일상과 일상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된 ‘순간의 움직임’인 것을. 우리는 지나온 여행을 통해서, 여행지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숱한 글을 통해서 이미 잘 알고 있다. 브런치 작가들이 말하는 여행은 어떨까. 기자에게 ‘사람 여행자’라는 필명의 작가가 눈에 들어왔다.


여행 수필은 식상합니다. 대부분 비슷비슷한 이야기로 가득하죠. 본격적으로 이 글을 쓰기 전에 수도 없이 고민했습니다. 어차피 아무도 쳐다보지 않을 제 글에 공들일 필요가 있을까 싶었죠. 그런데 오랜 사유 끝에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제겐 많은 조회 수와 팔로워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이 글이 꼭 필요한 사람이 있고, 그들에게만 오롯이 전달되면 됩니다. 특히, 시간이 많고 돈이 없는 학생들을 위해서요. 드디어 이 글을 써야만 하는 이유를 찾았습니다.


작가는 ‘사람을 여행하는 방법’을 본인이 직접 경험한 여덟 가지의 에피소드로 풀어냈다. 그는 여행하면서 사람을 놓지 않으려 했고, 잃지 않으려 했다. 작가는 여행을 통해 “새로운 인연을 만났고, 밥을 나눠 먹고, 술잔을 기울이고, 함께 웃고 떠들었다”라며 “한 사람 한 사람이 살아있는 문화였다”라고 회고한다. 그가 만난 여덟 개국, 여덟 가족의 이야기엔 여행지의 아름다운 풍경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 풍경 안에서 각자의 주어진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 냄새가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마지막 키워드는 ‘퇴사’이다. 브런치에는 유독 퇴사에 관한 글들이 많았다. ‘퇴사도 영혼을 담아’ ‘청년 퇴사 문제의 본질’ ‘회사와 작별하는 방법’ 등 저마다의 퇴사 이야기가 즐비했다. 퇴사에 관한 글들을 읽다 보니 ‘참, 사연 없는 사람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건 그들의 퇴사가 홧김이라거나 순간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 퇴사하기까지의 과정이 정말 무겁고 힘겨웠다는 사실이다.


반대로 브런치는 ‘퇴사를 종용하는 플랫폼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기자의 눈에 퇴사를 결심한 브런치 작가들은 대개 뛰어난 능력자들이었다. 그들은 퇴사하고 나서도 긴 시간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자금력이 있으며, 프리랜서로 곧잘 생계를 유지하고, 이른 시일 내에 재취업을 했다.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이직을 준비한다는 작가들도 꽤 있었다. 물론 이런 사례를 일부일 것이고, 단편적인 글을 통해서 그들의 험난했던 퇴사 후의 여정을 마음대로 재단하는 건 옳지 못하다. 또 대한민국의 모든 퇴사자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건 아니니까.


브런치에서 ‘티거 Jang’이라는 필명으로 활동 중인 작가는 브런치북 제1회 대상 수상자이며 『퇴사학교』, 『퇴사의 추억』, 『사직서에는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등의 저서로 유명한 퇴사 전문가(?)이다. ‘모든 직장인이 행복하게 일하는 대한민국 만들기’라는 창립 비전으로 세워진 ‘퇴사학교’ 교장이기도 한 작가는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은 가능할까?’


작가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대기업 직장인이었다. 하지만 퇴사했다. 작가는 “저는 단순히 대기업이 답답해서 나온 게 아니다. 오히려 그런 조건들과 상관없이, ‘내 인생에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리고 ‘나는 누구일까’를 찾고 싶어서 다른 탐색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라며 “그것들을 조금씩 찾아갈 수 있다면, 그곳이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자영업이든 큰 상관은 없는 것 같다”라고 말한다.


몇 년 전 기자가 작성한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린 적이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건, 좋아하는 음악을 모닝콜로 설정해 놓는 것과 같다.” 참 오묘한 댓글이었다. 기사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며 살아가는 한 청년과의 인터뷰였다. 사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일이다. 긴 인생에서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대부분 일하는 시간일 텐데, 그 과정이 괴롭고 불편하다면 인생은 불행해질 확률이 높다.


하지만 좋아한다고 무조건 그것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좋아하는 것에 더해서 내가 그 일을 남들보다 얼마나 더 잘할 수 있는지도 숙고해야 한다. 그래서 최상의 직업은 나의 ‘흥미’와 ‘재능’이 적절히 결합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종국에는 ‘내가 왜 그 일을 하고 싶어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소명(疏明)’이다.


4년 전,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던 유승민 의원은 원내대표 사퇴 기자 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아침, 지난 16년간 매일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을 또 했다.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정치는 현실에 발을 딛고, 열린 가슴으로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진흙에서 연꽃을 피우듯 아무리 욕을 먹어도 세상을 바꾸는 것은 결국 정치라는 신념 하나로 정치를 했다.”


유 의원에게 ‘정치’는 날 때부터 이미 정해져 버린 ‘운명’ 같은 것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오면서 스스로가 긍정하고, 이해하고, 실천해야 할 당위의 영역이었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일이라기보다는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지키는 일이었다. 유 의원의 정치적 스텐스에 크게 동의하진 않지만, 직업에 대한 그의 의식에 적잖이 감동했다.


세상에 마냥 좋은 것은 없다. 여행도, 가족도, 퇴사도 다 마찬가지이다. 그런데도 자신이 좋아하고 또 가치 있다고 믿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것은 덧없는 인생을 그나마 의미 있게 사는 방법이 아닐까.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들은 자신에게 ‘나는 왜 그 일을 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건네고, 거기에 답을 해본 적이 있나. 브런치 작가들은 그 물음에 치열한 글쓰기로 답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행동하는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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