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책 읽는 사람 곁에는 늘 붓과 먹, 종이와 벼루가 있었다. 읽는 행위와 쓰는 행위는 별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읽는 자는 썼고. 쓰는 자는 또 읽었다. 오늘날 우리도 다르지 않다. 무언가를 게걸스럽게 읽어대고 또 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곁에는 무엇이 있는가. 읽는 행위를 창조 행위와 연결하는 新문방사우를 소개한다.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지금 시국에 언급하기는 조금 불편하지만, 1984년 일본 <소년 점프>에서 연재를 시작한 만화 ‘드래곤볼’에는 ‘호이포이 캡슐’이라는 비현실적인 기술이 등장한다. 조그마한 알약 크기의 이 캡슐은 던지면 ‘펑’ 소리를 내며 그 안에서 바이크부터 집까지 쏟아낸다. 작은 알약에서 커다란 집으로, 그 마법 같은 큰 변화에 남녀노소할 것 없이 이 만화에 빠져들었다. 작은 알약을 가지고 다니며 그 안에서 무엇이든 꺼낼 수 있다면, 세상은 얼마나 편해질까. 그런 미래가 오기나 할까. 이 만화를 보고 한번쯤은 했을 생각이리라.
‘펑’
그런데 이 ‘호이포이 캡슐’을 살짝 떠오르게 하는 큰 변화가 스마트폰 업계에서 일어났다. 지난 6일 출시된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폴더블폰(접을 수 있는 스마트폰), 삼성전자의 ‘갤럭시 폴드’다. 중국의 화웨이, TCL이 삼성보다 먼저인 줄 아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은 단지 시제품을 내놓았을 뿐이다. 폴더블폰을 상용화한 것은 삼성이 세계 최초다.
‘갤럭시 폴드’, 이 폰을 손에 쥐게 되면 본능적으로 언폴드(unfold)하게 된다. 책이 있으면 펼치고, 문이 있으면 여는 것은 인간의 본능일까. 그리고 이 생소한 폰을 언폴드(unfold)하는 느낌은 잘 짜인 오르골을 여는 느낌. 어느 정도 열게 되면 저절로 완전히 열리고, 반대로 어느 정도 닫게 되면 알아서 ‘탁’ 하고 닫힌다. 과거 폴더폰을 열고 닫는 느낌보다는 다소 무겁고, 고급스럽다. ‘손맛이 있다’고까지 표현하면 조금 과하겠다. 그러나 만약 ‘갤럭시 폴드’를 샀다면, 친구나 가족에게는 맡기지는 않기를 권한다. 계속 열고 닫는 통에 기계가 망가질까 걱정하게 될 것이다.
‘펑’
‘호이포이 캡슐’의 진가는 캡슐이 열렸을 때 드러난다. 접었을 때 4.6인치로, 가로 길이가 삼성 ‘노트’ 시리즈의 3분의 2정도 되는 크기의 이 작은 스마트폰은 펼치는 순간 7.3인치, ‘아이패드 미니’ 정도 크기의 태블릿으로 변모한다. 이러한 변화를 가능케 한 것이 기존 디스플레이보다 50% 얇은 복합 폴리머 소재의 ‘인피니티 플랙스 디스플레이’(Infinity Flex Display)와 정교한 힌지(경첩) 때문이라는 설명은 소비자에게는 그리 중요한 정보는 아닐 것이다. 한손에 착 쥐어지던 작은 스마트폰이 양손으로 잡아야 하는 태블릿으로 변하는 순간은 그저 놀랍다.
“창을 내고자. 창을 내고자. 이 내 가슴에 창을 내고자. 고모장지 세살장지 들장지 열장지 암돌저귀 수돌저귀 배목걸쇠 큰 장도리로 뚝딱 박아 이 내 가슴에 창 내고자. 이따금 하도 답답할 때면 여닫아 볼까 하노라.” (「내 마음에 창을」 작자 미상 시조)
작은 스마트폰에서 큰 태블릿으로의 ‘열림’은 그야말로 상쾌하다. 시야가 탁 트인다. 오늘날 의식주를 제외한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가 무엇인가. ‘읽기와 보기’다. 꽉 조여졌던 홍체가 풀리는 느낌, 자유감, 이보다 좋을 수 없다. 기존 스마트폰의 깨알 같은 글씨나 작은 영상을 보다가 눈이 아팠으나 차마 패드를 들고 다니기에는 부담스러웠던 이들에게는 분명 축복이다.
탁 트인 시야는 이용자에게 ‘능력’을 선물한다. 영장류가 직립보행을 시작했을 때의 느낌이 이랬을까. 인간은 직립보행을 함으로써 이동에 쓰이지 않는 손을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었고, 덕분에 다른 종의 우위에 서게 됐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하라리의 통찰은 ‘갤럭시 폴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넓은 화면으로 인해 확 트인 시야는 기존 스마트폰에서는 가능하지 않았던 많은 것을 가능케 한다.
먼저, 그동안 스마트폰에서는 유명무실했던 멀티태스킹을 실현한다. 기존 스마트폰에도 창 두 개쯤은 띄워놓고 동시에 작업할 수 있는 멀티태스킹 기능이 있긴 하지만, 멀티태스킹의 전제조건은 기능 그 자체가 아닌 화면의 크기였다. 작디작은 기존 스마트폰 화면에서는 현실적으로 창 하나 띄워놓고 작업하는 것도 버거웠다. 그러나 화면을 2분할 혹은 3분할해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멀티 액티브 윈도우’ 기능은 ‘갤럭시 폴드’의 넓은 화면을 만나 비로소 스마트폰에서 쓸 수 있는 기능이 된다. 그리고 현시점(9월) 삼성전자 스마트폰 중 가장 좋은 프로세서와 12GB RAM, 512GB의 내장 메모리, 4235mAh의 대용량 듀얼 배터리는 심지어 게임을 하면서 영상을 보고, 글을 쓸 수 있게 한다.
또한, 이 기기는 ‘영상 제작 행위’의 새 지평을 연다. ‘갤럭시 폴드’ 이후 ‘스마트폰으로 찍은 영상’을 넘어서 ‘스마트폰으로 찍은 영화’가 많이 만들어질 것이 분명해 보인다. 몇 해 전부터 ‘스마트폰으로 찍은 영화’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해낸다’는 느낌이었다. 영상을 제작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스마트폰이든, 디지털카메라든 작은 화면은 분명히 걸림돌이었다. 작은 화면으로는 자신이 정확히 무엇을 찍고 있는지 확인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갤럭시 폴드’에서는 다르다. 후면의 1600만 화소 초광각 카메라, 1200만 화소 광각 카메라, 1200만 화소 망원 카메라와 전면의 1000만, 800만 화소 카메라는 ‘갤럭시 폴드’의 큰 화면을 만나 영상제작을 수월하게 하는 도구가 된다. 오지에 간 촬영감독이 주머니에서 ‘갤럭시 폴드’를 쏙 꺼내 펼치고 영상을 찍는 모습이 상상되지 않는가. 사막에 떨어진 ‘드래곤볼’의 ‘부루마’가 캡슐에서 바이크를 꺼내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거짓말은 하지 않겠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이 폴더블폰은 이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직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 먼저 두께가 문제다. 접었을 때 가장 두꺼운 부분이 17.1mm, 가장 얇은 부분이 15.7mm다. ‘노트’ 시리즈 두 대를 포개 놓은 것과 비슷하다. 혹자는 집에 있는 TV리모콘을 쥐는 느낌이라고 하는데, TV보다는 에어컨 리모콘 정도가 적당한 표현이다. 무게도 무시 못 한다. 276g으로, ‘갤럭시 노트 10+’(196g), ‘아이폰Xs Max’(208g)보다 약 70~80g 무겁다. 아직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에는 부담스럽다.
키보드의 활용성도 의문이다. 기능적으로는 삼성의 어느 스마트폰보다 타이핑이 잘 되지만, 손이 작은 사람에게는 분명 문제다. 손이 보통 성인 남성 크기인 기자가 쿼티 자판에서 ‘ㅎ’과 ‘ㅗ’를 치기 위해 엄지손가락을 스트레칭 하듯이 쭉 늘려야 했다. 천지인 자판도 마찬가지였다. 키보드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으나, 조절한다고 해도 언폴드된 상태에서 타이핑이 쉽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일반적인 패드를 이용해 타이핑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폴드된 상태에서 타이핑을 하거나, 블루투스 키보드를 챙겨 다니면 해결되는 문제다.
이 외에도 ▲동영상을 전체화면으로 볼 때 영상이 카메라로 인해 일부분 잘리는 점(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으로 보인다.) ▲폰을 가로로 잡으면 손이 조도 센서를 가려 화면이 어두워진다는 점 ▲방수방진이 안 되는 점 ▲접히는 부분의 가운데 주름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예민한 사람에게는 거슬린다.) ▲200만원이 넘는 가격 ▲S펜을 사용할 수 없는 점 등이 옥에 티라고 할 수 있다.
세계최초로 상용화된 폴더블폰 ‘갤럭시 폴드’. 그러나 이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스마트폰의 혁신은 ‘갤럭시 폴드’를 기반으로 이어져 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 ‘호이포이 캡슐’은 앞으로 더 얇아지고, 가벼워지고, 폈을 때는 더 커질 것이다. 이어질 혁신의 최전선에 서서 그 혁신이 주는 편리를 가장 앞장서서 맞고 싶은 이들에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