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테이블에 놓인 노트 (오명은, 다반)
시간의 여유가 좀 생겼길래 모처럼 서울도서관에 다녀왔다. 맘에 담아놨던 책을 빌리려는데, 사야지 사야지 하면서도 때를 놓치고 있던, 작가 오명은의 책 <도시와 테이블에 놓인 노트>를 발견했다. 덕분에 이 찬란한 계절, 청계천 물가에 앉아 읽는 호사를 누렸다.
소개하는 <도시와 테이블에 놓인 노트>는 다큐멘터리 작가인 저자의 시선으로 도시의 숨은 결을 읽어내는 ‘종이 다큐멘터리’ 형식의 에세이다. 도시의 이면을 천천히 더듬으며 기억과 시간을 저자의 사유에 담아 엮어냈다.
도시는 늘 과잉으로 보인다. 빛과 속도, 이름 붙은 장소들로 가득 차 있어 더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 책은 그 과잉의 표면을 걷어내고 사라질 듯 남아 있는 미세한 결을 더듬는다. 그건 마치 오래된 필름 사진처럼, 선명하지 않기에 오히려 오래 바라보게 되는 장면들이다.
저자는 도시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그 안을 천천히 걸으며 이미 지나간 시간들이 남긴 흔적에 귀를 기울인다. 작가와 예술가들이 머물렀던 자리, 누군가의 실패와 방황이 스며든 골목, 이름 없이 이어지는 하루의 풍경들이 저자 오명은의 시선 속에서 서로를 비추며 천천히 돋아난다. 그렇게 도시는 하나의 공간이 아니라, 겹겹이 덧씌워진 문장처럼 읽히기 시작한다.
나는 사실 도시는 걷는 자에게만 허락되는 문법을 지닌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여기서 말하는 ‘걷는 자’는 벤야민이 끌어올린 ‘산책자’, 즉 플라뇌르(Flâneur)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플라뇌르는 목적 없이 도시를 거닐며 관찰하고 경험하는 존재다. 자본주의 도시의 한복판에서 태어났지만, 역설적으로 상품과 광고, 유리 진열창이 넘실대는 거리에서 소비자가 되기를 거부한다. 진열된 사물들을 소유하지 않고, 시선으로만 어루만진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간판의 균열, 쇼윈도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 군중 속에서 스쳐 간 얼굴 하나. 이런 것들이 그의 사유를 촉발한다. 말하자면 이 책의 저자 오명은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이 책이 특히 인상적인 것은 기록이 과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의미를 부풀리기보다, 발견의 순간을 조용히 건네는 방식이다. 그래서 오히려 더 많은 여백이 남고, 그 여백 속에서 각자의 도시가 다시 떠오른다.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이미 알고 있던 장소를 처음처럼 바라보게 만드는 시선이다.
오늘날의 도시에서 산책자는 점점 희귀해진다. 내비게이션과 알고리즘이 길을 선점하고, 걸음마저 데이터로 환산된다. 그럼에도 나는 때때로 목적 없는 발걸음이 우리를 구원한다고 믿는다. 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 걷는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세계가 아직 완전히 설명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다시 배운다.
잠깐 앉아 있다가 일어나야지 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백여 페이지를 넘겼다. 아까워서 도저히 더 읽지 못하고 책을 덮었다. 담겨 있는 사유가 그냥 이렇게 읽고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아름답다. 애초에 사기로 했던 책이니, 내친김에 교보에 들러 구입해서 돌아왔다.
이 책을 대하고 나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지기보다 오히려 익숙한 장소에서 잠시 멈추고 싶어질 것이다. 수없이 오가던 거리에서 발걸음을 늦추고, 사소한 장면 하나를 오래 바라보는 일. 아마도 이 책이 말하는 ‘미지의 땅’은 그렇게 발견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 가까워서 지나쳐왔던 곳이다.
그런 생각은 사실 내가 늘 해오던 생각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늘도 난 역시나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익숙한 장소 이곳저곳을 어슬렁 거렸다. 그래서 더욱 반가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