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브루잉 - Budapest Concert
<Budapest Concert> (Keith Jarrett, ECM)
키스 자렛(Keith Jarrett)의 2016년 부다페스트 실황 솔로 앨범 <Budapest Concert, ECM>를 손에 쥔 것은 작년 이맘때였다. 딱 1년이 지났다. 키스 자렛의 실황 앨범으로는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무척 조바심을 내며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특히 100장이 넘는 그의 앨범 중에서도 솔로 앨범으로는 정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키스 자렛은 재즈 역사상 최고의 명작 중 하나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피아노 솔로 앨범 <The Koln Concert>의 주인공이다. 수많은 솔로 실황을 통해 현대 재즈의 정수를 펼친 키스 자렛이지만 2018년 두 차례에 걸친 뇌졸중으로 모든 공연과 연주가 중단되었고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본인 스스로 더 이상 연주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발병 전인 2017년 뉴욕 카네기홀 공연 이후 이렇다 할 연주를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렇기에 이 앨범의 발매 소식은 전 세계의 재즈 팬들이 고대했고 흥분했던 뉴스였다.
두 개의 CD로 구성된 <Budapest Concert>는 2016년 7월 3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벨라 바르톡 국립 콘서트홀(Béla Bartók National Concert Hall)에서 있었던 공연의 실황이다. 당시 같은 시기의 유럽 투어 앨범으로 2019년 먼저 발매된 <Munich 2016>이 있다.
특히 헝가리 현대음악의 창시자 바르톡과 그의 음악에 존경을 표하면서 당시 헝가리에서의 공연에 큰 애정과 기대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런 만큼 키스 자렛 자신으로서도 무척 의미 있는 앨범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앨범은 총 12곡의 즉흥 연주에 앙코르로 연주한 재즈 스탠더드 두 곡이 포함되어 있다. CD1과 CD2는 확연한 대비를 이룬다. CD1이 상상과 실제 연주가 혼재된 강렬한 즉흥의 세계를 연상시킨다면 CD2는 키스 자렛 특유의 서정성을 찾아 회귀한다는 기분이 든다. 어쨌든 대부분의 연주는 종종 멜로디를 놓칠 정도로 리스너 입장에서는 다소 난해간 구간들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클래식과 재즈 모두에 달관한 키스 자렛 답게 양 장르의 아폴론적, 디오니소스적 세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움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경계의 확장이 아니라 아예 경계 없음의 경지에 이른 그가 가보지 않은 길을 탐구하는 구도자적인 걸음이다. 그래서 그의 음악적 통찰은 오히려 성숙을 넘어 진보하고 있다고 믿게 된다. 특히 CD2의 세 번째 트랙 Part VII는 키스 자렛의 두 세계를 모두 아우르는 듯한 키스 자렛만의 음악이다.
재미있는 건 앙코르 곡으로 연주한 두 곡 중 하나인 It’s A Lonesome Old Town이다. 재즈 스탠더드로서는 그다지 유명한 곡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가수 현미가 부른 히트곡 ‘밤안개'의 원곡이라는 사실이다. 그간 ‘밤안개’의 작곡가로 알려진 이봉조 씨가 Nat King Cole이 부른 노래를 듣고 편곡하여 1962년 현미의 데뷔곡으로 발표했다. 재즈라는 음악의 확장성을 생각하면 애교로 넘어가도 좋을 일이라고 생각한다.
키스 자렛의 근황, 특히 건강 상태에 대해선 최근까지 별다른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키스 자렛의 새로운 연주는 이대로 영영 들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과거 만성피로 증후군으로 비슷한 처지에 있을 때 아내를 위해 집에서 연주한 음원이 <The Melody at Night, With You>로 발매된 적이 있기에 다시 한번 그와 같은 기적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