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얼굴 알아보겠나?
찾고싶지 않았으나 찾아야했던 나의 친부
"결혼은 했니?"
"너 쌍꺼풀 했니?"
드라마 서른, 아홉.
사기 전과로 수감 중인 엄마와 그녀의 딸, 미조가 성인이 된 후 첫 만남에 나온 대사이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7살에 헤어진 나의 친아버지와
25년 만에 만나 나누었던 표정과 냄새, 대화들이 오버랩되었다.
친아버지는 내가 7살 때 엄마와 이혼을 하고 몇 년 후 재혼하여 새 가정을 꾸리셨다. 이혼 후 단 한 번도 맞대면한 적은 없지만 집으로 전화가 걸려와 그냥 끊어버린 기억은 어렴풋이 있다.
아버지는 잦은 외도와 가정폭력, 한량의 삶을 살며 엄마와 내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배신감을 안겨주었기에 다시는 만나고 싶지도, 장례식에도 안 가리라 마음먹고 살아가던 나였다.
그런데 결혼을 하려고 하니 나의 '굳센 다짐'은 한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존중받지 못했다는 표현이 맞을까. 친정엄마는 내가 20대 초반에 이미 돌아가셔서 안 계시니 아버지라도 결혼식장에 모셔오라는 시아버님의 '분부'가 떨어진 것이다.
나는 차마 연락할 수 없었다. 연락처를 찾아보기도 싫었고 내 결혼식장에 옆 집 아저씨보다도 불편한 '그 사람'을 모셔다 둘 수 없었다.
그래서 아버님께 말씀드렸다. 연락 안 한 지 꽤 오랜 세월이 지났고 어디에 사시는지 거처조차 확인할 길이 없다고-
어떻게든 그 상황을 피하고 싶어 발버둥 쳤지만 아버님의 행동은 내가 둘러댄 핑계보다 이미 저만치 앞서있었다.
내게 직접 수소문하여 알아오신 연락처를 건네시며
"아버지께 전화드려. 그래도 친아버지가 결혼식에 오셔야지. 외삼촌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는 게 말이 되니."
그리하여 나는 친정아버지께 전활 걸었고 만나기로 날짜와 장소까지 정하게 되었다.
이런 식의 만남은 (아무리 죽을 때까지 만나기조차 싫었다 해도 적어도 이런 식으로 만나기는 싫었는데) 내가 더 필요로 해서 결혼식 자리를 빛내주십사 부탁하는 것이었기에 정말 내키지 않았고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으로 만남을 망치고 싶지 않아 나름 아버지를 용서한 것처럼 포장하고 미소 지으며 약속 장소에 나갔다.
"아이고~이게 얼마만이냐! 네 아빠 얼굴 알아보겠나?"(강원도 사투리가 진하게 묻어나는 그 사람의 말투)
"네...?아니요...."
대답하면서 소름이 끼쳤다. 나랑 너무 닮아서.
큰 눈도, 큰 키도, 목소리 큰 것도.
운전은 또 왜 그리 험악하게 하시던지.
엄마와 결혼 전 특전사 출신에 경호원까지 했던 아버지는 여전히 기골이 장대했고 그래서인지 나는 어려서부터 항공모함 같다던 내 커다란 발을 다시 한 번 내려다보게 되었다. 여자애 발이 어쩜 그리 크고 못생겼냐고 발도 지애비 닮았다고. 그 말 들으며 성인될 때까지 '나중에 크면 돈벌어서 이 넓은 발 볼을 깎는 수술을 할꺼야'하고 수도없이 되내었었다. 그 뿐만 아니라 나의 욱하는 성격, 부족한 참을성, 이기적인 면이 모두 그를 향해 있었다. 어릴 적 나의 친아버지를 극도로 혐오했던 외가식구들이 늘 내게 했던 말. "지 애비랑 똑같아"
설령 똑같지 않았더라도 똑같아야만 했던 건 아닌지. 그래야 아버지 대신 비난받을 대상이 생기는거니까.
그런 아버지와 단 둘이 좁은 경차 안에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어색하고 온 몸이 굳을 것만 같아서 죽을 지경이었다.
드라마 서른, 아홉에서처럼 정말이지 옆 집에 사는 그 누군가보다도 불편했다. 친아버지가 내민 손도, 어깨동무도 나를 움찔거리게 만들었다. 심지어 좀 불쾌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생각 없이 형식적인 말을 내뱉고 있는 내 머릿속에는 '언제 집에 가지'라는 생각뿐이었다.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
나도 여느 집 딸래미처럼 "아빠아빠~~~!우리 놀러가자!" 하며 조르며 땡강도 부려보고 싶었던 나날이었는데 그 시간을 송두리째 빼앗아 갔으면서 날 보며 저렇게 환히 웃을 수 있을까.
왜 그랬냐고 엄마가 그렇게 된 건 다 아버지 때문이라고 화도 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하는 이 거지같은 상황. 그것도 이번엔 묻어두자 그래.나는 시아버님의 명령을 전달하러 온 입장일 뿐이니까..
아버지도 어색한 분위기를 어떻게 해서든 풀어보고 싶으셨겠지.다만, 방법도 모르고 공감이라는 걸 잘 할 쭐 모르는 그런 1950년대생 아버지들의 공통점이라고 치부해 버리는게 내 맘도 편하려나. 상처입은 딸은 이제 어른이 되어 사랑받고 싶었던 어린아이를 잠시 숨겨두고 아버지를 이해해보려 안간힘을 쓴다. 나도 아버지도 시아버님의 계획에 맞게 움직여야 하는 부녀지간일 뿐이니까.
저녁 무렵이 되어서 아버지는 기분이 좋으셨는지 세 시간 거리에 살고 있는 작은아버지까지 불러내셨다. 딸이 먼저 취한 연락이 마치 자신의 잘못을 다 용서받을 수 있는 카드쯤으로 생각하신 걸까... 난 그럴 수 없는데, 난 용서가 아직 안되는데 점잖은 결혼식을 위해서 용서해야 하는 건가? 남을 계속 원망하면 내가 더 괴로운 법이라고 하니 그냥 용서하고 친아버지와 계속 잘 지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저녁 드시면서 기분이 좋아 거나하게 술이 취해버린 아버지는 노래방까지 가자며 싫다는 나를 끌고 가셔서는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술냄새를 풍겨댔다.
"아빠가 미안했어..." 이 한마디면 내가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일까지는 막을 수 있었을까?
나는 끝내 아버지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용서해달라는 말도 들을 수가 없었다.
내 의지가 작용한 용서가 아닌 타인에 의한 가짜 용서, 그 용서는 며칠이 지나지 않아 원래의 미움보다 더 큰 미움이 되어 결혼식까지 이어졌다.
비록, 시아버님의 계획은 성사되었을지언정
친아버지를 충분히 원망하고 '아직은'용서할 수 없는 내 권리는 모조리 박탈당했다.
내 친아버지를 결혼식장에 모셔와서 얻는 유익이 대체 무엇이기에 내마음을 이토록 불편하게 하면서까지 그런 결정을 내리셔야 했는지 나는 아직까지도 시아버님의 속내를 알 수가 없다.
또한 아버님의 의사를 끝까지 거절하지 못한 내 스스로를 한동안 한심스러워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그 때의 나였기에.. 내 자신의 결정보다 어른 즉, 시아버님 되실 분의 의견을 무조건 따라야만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거라는 주문을 스스로 만들 수 밖에 없는 약한 내면의 소유자 였기에.. 갈등을 대면하고 맞서기보다는 그저 피하고 빨리 이 상황을 지나가버리자는 게으른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기에...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과거의 나도 안아주려고 의식한다. 연민이라기 보단 내 존재를 본질적으로 귀하게 바라보게 되었달까.
나는 결혼식 이후로 지금까지도 친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함에 관하여 그 어떤 죄책감도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과연 잘못일까?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용서하지 않을 권리가 내게 있음을 선택하며 오늘은 거울에 비친 내 자신에게 '용서하지 못해도 괜찮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이제는 너무 남 같아서 용서가 필요한가 싶을 만큼 무관심하게 된 나의 친아버지를 안아드릴 수 있는 최소한의 자식도리를 해야만 할까싶은 생각은, 그 분에 대한 마지막 예의 쯤으로 남겨두고 싶다. 또한 어떠한 목적이 아닌 '내가 만나고 싶어서' 만나는 그런 순수한 아버지와 딸의 상봉이 된다면 더할나위 없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