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필사1
마음이 한없이 축 가라앉는 날이 있다. 엄마도 나도. 딱 일주일 전 일요일(7월 2일), 그날이 바로 그런 날이다.
오랜만에 막내딸이 손녀들을 데리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엄마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좀 멀리 살고 있고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몇 년째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도 동생이 보고 싶은데 엄마는 오죽할까, 그리움이 차고 올라 터지기 일보 직전일 것이다.
나는 그날 하루 종일 세미나에 참석하고 늦게 집에 들어왔다. 엄마, 아빠가 부엌에서 무슨 일인지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
“너의 엄마, 오늘 넘어져 많이 다쳤다.”
아빠가 속상한 듯 말했다.
“별거 아니고, 자전거 타다가 넘어졌어.”
엄마는 큰딸이 걱정할까 봐 별거 아니라 했다.
별거 아닌 게 아니었다. 타박상이 심해서 터져 나오는 신음 소리를 엄마는 꾹꾹 누르고 있었다. 콕콕 마음이 찔렸다. 왜 하필이면 내가 집을 비운 사이에 이런 일이.
올해에 들어서 무릎이 아파 잘 걷지 못하게 되자, 엄마는 교회 갈 때, 텃밭 갈 때, 수영 갈 때 모두 자전거를 탔다.
“병원 가봤어?”
“내일 병원 가보려고, 이 시간에는 문 여는 병원도 없어. 약 먹고 부황 부치고 버텨봐야지.”
아차, 오늘은 일요일이지. 아플 때 가장 속상하고 짜증 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평일이 아니라 주말 그것도 일요일에 아픈 것이다. 응급이 아니면 버틸 수밖에 없는 그런 날.
자초지종을 물었다. 어쩌다가 자전거를 잘 타는 엄마가 넘어졌는지. 탈 때 항상 조심하던 엄마였기에 더 속상했다.
그날 아침 예배에 갔던 엄마는 혼자 집에 있는 손녀가 마음에 걸렸다. 빨리 집에 가야지라는 생각뿐 이였다. 하필이면 그 사람은 엄마 쪽으로 급하게 유턴했다고 한다. 자전거는 힘없이 넘어졌고 엄마는 심하게 다쳤다. 간신히 집으로 왔는데, 집에 손녀밖에 없어서, 엄마는 아프다는 소리도 못 하고 약 찾아 먹고 버텼다고 한다.
그다음 날 월요일(7월 3일)에 병원 갔다 왔다. 다행히 금이 가지는 않았다.
약을 며칠 먹었지만, 눈에 띄는 효과가 없었다.
“엄마, 이제 일주일밖에 안 되었어. 보통 한 달은 걸린다고 하니까 좀 더 기다려 보자.”
이런 말밖에 건넬 수 없는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렇지, 이제 일주일밖에 안 되었네. 그래도 빨리 나아야 할 텐데. 다음 주에 막내딸 오는데. 할 것이 많은데...”
엄마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면서도 쉬지도 않고 반찬을 하고 세탁기를 돌렸다. 이런 날에는 좀 쉬면 좋으련만.
두 딸을 가진 엄마는 쉴 수가 없다. 몸도 마음도. 한쪽 걱정이 끝나면 또 다른 걱정이 붙는다. 아빠는 엄마가 쓸데없는 걱정만 사서 한다고 하지만, 자식 걱정은 쉽게 버리는 엄마가 몇 될까. 지금 내가 하나뿐인 딸아이를 걱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엄마처럼 자식이 둘인 사람은 걱정 주머니를 양쪽에 차고 다닌다. 손녀들까지 포함한다면 걱정 주머니 셋은 더 차야 하니 점점 힘에 부친다.
막내딸도 벌써 마흔다섯, 충분히 삶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나이이다. 하지만 엄마 입장은 다르다. 딸이 마음 아파할 때마다 명치끝이 아프단다. 이번에 오면 푹 쉬고 갈 수 있게 준비를 가득해 놨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속상한 것이다. 막내딸이 좋아하는 음식을 장만하고, 행여 빠진 것이 없을까, 어떤 선물을 줘야 할까 하는 등 머릿속이 분주하다.
오늘도 이런저런 걱정 하는 엄마를 보며 나는 걱정은 그만하고 건강만 챙기라고 신신당부한다.
걱정은 풍선에 후후 불어 넣어 날려 보내라고.
2023년 7월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