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프랑스 파리가 다가온다

by 책읽는아이린

요즘 김민철 작가의 『무정형의 삶』을 읽고 있다. 책은 20년 동안 다녔던 회사 생활을 정리하고 두 달 동안 파리에서 머물렀던 이야기를 그렸다. 몰랐던 사이가 친구가 될 때 마음을 천천히 내보이듯 새삼스레 파리가 다가오는 책이다.

그는 스무 살에 간 배낭여행에서 파리에 반했다. 그때 우연히 퐁피두 센터 2층의 도서관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그 순간부터 파리를 영혼의 고향처럼 담아두었다. 그곳에서 공부하는 직업을 갖는 것이 일생의 꿈이 된 그 후 몇 번 파리에 갔지만, 22년을 그리워하다 이번엔 두 달을 살러 갔다.

10여 년 전 유럽 배낭여행 때, 처음 에펠탑을 마주했을 때가 떠올랐다. 일일 가이드 투어로 샹들리에 거리, 개선문과 사크레쾨르 대성당에도 갔고, 빵집에서 갓 구운 바게트를 맛보기도 했다. 그 담백하고 따뜻한 빵 맛은 지금도 혀끝을 맴돈다. 테르트르 광장을 둘러보고 골목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가이드가 고개를 왼편으로 천천히 돌려보라고 한다. 엄청나게 큰 철재 구조물이 떡하니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음의 준비도 없이 본 파리의 상징물, 에펠탑의 위용이라니! 탑을 이루는 철재가 그대로 보이는 구조가 인상에 강하게 남았다.

에펠탑을 처음 봤을 때 감동의 순간은 아직도 가슴에 자리한다. 저녁때 바토 무슈 유람선을 타고 본 야경에서는 우아하게 빛이 났다. 탑을 배경으로 사진만 찍었는데, 그때는 왜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작가는 파리에서 에펠탑을 극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길을 알려준다. 포르투갈 시인 카몽이스의 흉상을 지나 계단을 오르고 그 계단을 다 올라 마침내 뒤돌아선다. 그러면 건물들 사이로 센강이 보이고, 그 뒤로 에펠탑이 보인다. 어떤 극적인 만남일지 상상이 되지 않아 직접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회사 다니며 바쁠 때 간 여행이라 사전 준비를 잘하지 못했다. 다시 간다면, 여행의 목적을 정해서 준비를 많이 하고 갈 것 같다. 지난 학기에 서양 미술사를 공부했는데, 인상파 화가 모네의 작품이 기억에 남아 그 그림들을 볼 수 있는 미술관에 가보고 싶다 - 모네의 작품이 있는 오랑주리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 그리고 마르모탕 미술관. 또, 지베르니의 '모네의 정원'에 가서 그의 작품 속 연못, 연꽃, 수면을 직접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상상만으로도 설렌다.

모네는 루앙 대성당을 30점 이상의 연작으로 그렸다. 그중 6점을 한 자리에서 보았는데, 시간에 따라 색을 달리해 같은 성당이라도 다르게 보였다. 붉은, 흰, 노란, 베이지, 회색, 파란빛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 빛을 포착하려고 얼마나 빠르게 집중해서 그렸을까. 그렇게 여러 점으로 연작해서 그린 이유는 뭘까. 무얼 말하고 싶었던 걸까? 시간을 따라서 변하는 성당을 보여주고, 영원한 것은 없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6점의 성당 그림을 보니 마치 사람이 태어나 성장하고, 나이를 먹고, 늙어가고, 병들고, 쇠퇴해 가는 모습들이 겹쳐 보인다. 그렇다. 모든 것에 영원한 것은 없다. 건강했던 가족들과 내 모습, 생각도, 인간관계도, 나를 둘러싼 거의 모든 것이 변했고, 변하고 있다. 그리고 변할 것이다. 그런 인생의 모습을 그림은 내게 보여주고 있었다.

시간을 타고 변한 것들은 강물처럼 흘러간다. 나는 어떻게 변하면 좋을까에 맞추어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본다. 일상에서도 특별한 것을 발견하고, 낮은 곳을 보며 작고 연약한 것들의 속삭임을 듣는 시인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싶다.

퐁피두 센터는 예전에 읽은 책 『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에서도 인상적인 건축물이었다. 건물 안에는 기둥이 없다. 미술품 전시 공간에 걸림이 없도록 한다는 취지에서다. 대신 건물 밖에 건물의 모든 구조체가 보인다. 상수도관 파이프들은 녹색, 공기 순환 공조 덕트는 파란색, 전기선은 노란색으로 나와 있다. 사람들에게 넓은 공간을 쓰게 하려고 배려한 마음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프랑스 국민이 사랑하는 현대 건축물 2순위에 들었다.

미술관에는 화가 '조르주 루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대표작 중 하나가 <미제레레>라는 작품인데, 루오가 제1차 세계대전 중 그린 그림을 화상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요청으로 동판화로 옮겼다. 작품 제목 <미제레레>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뜻으로, 전쟁의 비참함과 그로 인한 사람들의 고통을 담았다. 루오는 인간의 소중함을 그렸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연민으로 바라보았다고 평가받는다. 루오의 작품에서 따스함이 느껴졌다. 예술가로서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참 아름답다. 숭고한 내면을 지닌 그의 작품을 좀 더 찾아보고 싶다. 파리에 갈 때 가고 싶은 곳 목록에 퐁피두 센터를 넣었다.

책으로 파리 여행 중반을 달리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여행이 아껴먹고 싶은 빵처럼 남았다. 천천히 내딛고 가야겠다. 나도 내 모양에 맞는 마음의 고향을 찾았으면 한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쯤 나는 무엇을 더 보고 들으며 어떤 것을 느낄까. 잠시 쉬었으니 다시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하늘이 닫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