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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아이린 Oct 09. 2024

구름이 가져다준 추억

시 <구름의 말>

 요즘 가을 하늘이 참 맑다. 산책로를 걷다가 하늘을 보면, 구름의 다양한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구름이 솜사탕처럼 뭉쳐 보일 때도 있고, 면사포가 펼쳐진 듯한 모양일 때도 있다. 바람이 불 때는 구름이 옆으로 흘러가며 움직인다. 구름은 생김새나 어디에 어떻게 있어야 할지 정해진 것이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 하늘에 몸을 맡긴다. 나도 저 구름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는 걸까 생각해 본다.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순간이든 마음에 평안이 있을 때 행복하지 않을까. 나는 요즘처럼 따스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걸을 때 평안하다. 하루 한 시간 남짓, 구름 위에 앉아 쉬는 것처럼 잠시 지난한 일상을 잊고 둘레길을 걷는 시간소중하고 행복하다.


 구름은 어떤 생각을 하며 떠다닐까. 하늘에 태어난 구름은 성장하고, 이동하고, 흩어지고, 모이고... 그러다 사라진다. 하나하나의 물방울이 모여 구름이 되고, 무거워지면 빗방울이 되어 떨어진다. 땅 위를 걷고 싶었던 구름이 할 수 있는 것은 비로 내리는 일. 땅에 내린 수증기가 다시 하늘로 올라가고 반복되는 일이 우리의 일상 같다. 구름은 지상에 있었던 추억을 떠올리며 하늘을 떠다니지 않을까.


  가족들과 남이섬에 갔던 추억이 떠올랐다. 드라마 <겨울연가> 촬영을 했던 장소, 그림책 놀이터에서 사진도 찍고 이곳저곳 산책하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나미나라 공화국'이라는 섬 위에 세워진 국가 개념을 표방하는 콘셉트가 새로웠다. 그곳에서만 쓸 수 있는 엽전 모양의 화폐를 기념품으로 샀는데, 지금도 쓰이는지 궁금하다. 그곳에서도 맑은 하늘의 구름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십여 년 전, 구름바다를 내려다본 적이 있다. 엄마와 첫 해외여행으로 간 하와이 마우이 섬의 할레아칼레 산에 올랐을 때였다. 구름이 우리 발아래 뭉게뭉게 펼쳐져 있는데, 꿈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에 입이 벌어졌다. 구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구름과 어떻게 같은 높이, 아니 구름 위에 있을 수가 있지! 신기했다. 사정상 3박 5일의 짧은 일정으로 다녀왔지만, 그곳에서의 경험은 인상 깊게 남아 있다. 특별했던 손에 꼽는 추억이 나를 미소 짓게 한다. 나중에 다시 여유 있게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걷다 보니 빗방울이 떨어졌다. 구름은 비로 제 몸을 산산조각으로 떨어뜨리며 사라진다. 땅 위의 먼지를 씻어주고, 대지를 촉촉하게 적시며 생명을 주고 간다. 우리의 주식이 되는 벼와 보리 같은 곡식에도, 달콤한 과일나무, 채소에도 떨어지며 사람들을 돕는다. 고마운 구름이다.





구름의 말


물방울이 엉겨 붙어

무거워진 몸으로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어


어느 곳에 비로 떨어질까?


붉은 햇빛이 날카롭게 내리는 오후

수북한 상자들을 배달하는 택배 아저씨

머리 위에 떨어져 땀을 씻어주고 싶어


아장아장 걸음마 연습을 하는 아가

잘 자라길 바라며 톡톡 물을 주고 싶어


벼이삭에

홍로 사과나무에

상추와 호박에

산산조각 되어 떨어진다


내가 사라진다고 슬퍼하지 마

내가 준

사랑을

기억해 주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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