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에 다가가며

by 책읽는아이린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미술 바라보기.’

이 문구가 마음을 두드렸다. 지역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 제목이었다. 평소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그 강좌를 보는 순간 이상하게도 나를 부르는 것만 같았다. 망설임 없이 신청 버튼을 눌렀다.

열두 차례에 걸쳐 진행되는 프로그램의 첫 강의가 어제 열렸다. 강사는 모두 세 분인데, 첫 시간은 엘지 아트센터 옆 스페이스 케이 미술관의 이장욱 관장님이 맡았다. 관장님 역시 프로그램 제목이 참 좋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그 질문은 요즘 내 마음을 따라다니던 생각이기도 했다.


그는 현재 세태에 대한 이야기를 서두에 꺼냈다. 우리 인간을 가장 괴롭힌 것은 전쟁, 기어, 질병, 자연재해 그리고 세대 갈등, 세상이 빠르게 바뀌고 있는 점을 이야기했다.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의 한 장면을 들려주었다. 이상한 나라에 간 앨리스가 붉은 여왕을 만나고 붉은 방을 빠져나가려고 뛰고 있다. 그때 배경도 같이 뛴다. 그러다 배경이 그녀보다 더 빠르게 뛴다. 이 정도로 요즘 세상도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이 변화를 받아들여야 할까?


제목처럼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행복해지려면 필요한 게 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 이 말이 오늘 강의의 핵심이다. 이후 강의는 미술 작품들을 살펴보는 시간이었다.


2020년에 미술관을 열고, 2021년에 화가 '헤르난 바스(1978 ~)'의 작품을 전시했는데 그중 두 점을 보여주었다. 한 점의 제목은 <핑크색 플라스틱으로 만든 미끼>였다. 먼저 작품을 이해하려면 그 작가에 대해 알면 더 좋다. 그는 부모가 쿠바 이민자였다. 이민자로서 미국에서 받는 차별이나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이 작품에 나타나 있다.


버려진 주택 앞에 제임스 딘을 닮은 한 남자가 고급 차 페라리 앞 범퍼에 앉아 있다. 그 옆엔 캐딜락도 있다. 그는 집 모기지 파산을 당한 것 같고 차들은 버려졌다. 분홍색 플라스틱으로 만든 플라밍고들을 보고 날아든 하얀 플라밍고, 그물에 발이 묶여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온 이민자들의 모습이 겹친다. 플라밍고는 자연에서 수컷 커플들이 많은데 부모 잃은 새끼를 잘 키운다고 한다. 성소수자라는 화가 자신을 드러내는 의미로 보인다.

그의 옆 자리엔 하얀 손수건이 떨어져 있는데 아무래도 이민자들의 꿈에 안녕을 고하는 것 같다. 그림은 화려한 색감으로 밝아 보이지만, 스토리에서 씁쓸함이 묻어 나온다. 이 그림은 자신의 경험에서 더 나아가 이민자들의 삶을 그려낸 점이 공감을 불러 모은다.


눈에 띈 개념 미술 작품이 있다. 영국의 현대미술가 라이언 갠더(1976~)의 작품 넘어진 의자들이 보인다. 옆으로 돌아 누운 듯한 의자 위에 눈이 하얗게 쌓여 있다.

살다 보면 의자에서 넘어질 때가 있다. 실제 그럴 수도 있고, 의자에 앉아 있던 내 인생이 넘어질 때가 있다. 그러면 어떤 일을 겪지? 넘어지면 내가 보고 있던 시야의 높이가 달라진다. 우선 그 높이가 낮아진다. 바닥을 먼저 본다. 보지 못했던 바닥에서 발견하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곳 세상에 사는 것들을 볼 수도 있고, 거기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그다음엔 하늘을 보게 되지 않을까, 또 그런 상황에 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의자는 사람들에게 가면이 된다. 내겐 직장 생활할 때 직책이 가면이었다. 의자는 넘어졌고, 다른 방향을 보며 일어서고 있다. 의자는 인간 실존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우리나라 이근민 화가(1982 ~)의 작품도 소개되었다. 그는 경계성 인격 장애를 앓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병리적 경험을 캔버스에 담았는데, 붉은 색감의 그림들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의 작품전 제목이 가슴 아팠다. '그리고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엉켜버린 기억>, <문제 구름>처럼 제목들도 자신의 병을 나타내는 듯하다. 마치 머릿속 혈관들 같기도 하고, 마음속에 응어리진 것들이 풀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병을 받아들였기에 이렇게 작품들로 그릴 수 있었다. 그가 아프지 않았다면 이런 작품들은 탄생할 수 없었으리라. 자신의 아픔을 예술로 승화한 그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우리는 우리가 마주하는 어려움을 피하고 싶어 한다. 아프고 슬픈 것, 힘든 것을 피하고 싶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나는 엄마가 아프다는 상황을 맞닥뜨리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예술로 다른 부분을 보게 되며 슬픔의 심연에서 조금씩 헤엄쳐 나오고 있다.


예술은 새로운 시각을 준다. 익숙한 것이라도 낯섦을 선사하고 다르게 보게 한다. 행복해지려면 이해가 필요하다고 한 것은 이점 때문이었다. 미술을 통해 우리는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이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것으로 연결된다.

한 발 더 나아가 우리가 타인과 다름을 인정하는 것, 빠르게 변하는 시대와 내게 놓인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성장과 발전으로 이끈다.


미술 작품을 보며 깨달음을 얻는 시간이었다.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보고 어떤 것을 생각하게 될까 그 여정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