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K 서울에 다녀와서
하늘이 점점 높아지는 가을날, 문화예술 공간 ‘스페이스K 서울’에 다녀왔다. 마침, 배윤환 작가의 개인전이 ‘딥 다이버’라는 주제로 열리고 있었다. 매표소 입구의 소책자는 전시를 이렇게 소개한다.
“배윤환은 서사 중심 회화로 개인의 불안부터 인류 보편의 위기까지 관심을 확장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회화, 드로잉, 설치,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우리 시대의 서사를 더욱 심화시킨다. 검정으로 재현된 작품과 전시구성은 관람객을 마치 심해로 접수하게 하듯, 배윤환 작가의 내면세계로 깊이 몰입하게 한다.”
검정 바탕 위에 하얀 붓질로 이루어진 <서커스> 시리즈 세 점이 눈에 들어왔다. 큐레이터는 무대 한가운데 서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 맞혀보라고 했다. 발레리나라고 생각했는데, 곰이라고 했다. 오른쪽 작품을 보니 곰이라는 형상이 확연히 보였다. 단순한 형상인데도 몇 바퀴를 빠르게 회전하는 느낌이 강렬했다. 그때, 곰이 아프다고 신음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보통 곰은 느긋하고 무거운 동물로 알고 있는데, 저토록 세차게 돌기까지는 분명 훈련이 필요했을 것이다. 무대에 서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받아야 하는 훈련—그 사실이 우리 인생과 겹쳐 보였다. 무대에 오르려면 누구나 보이지 않는 노력을 해야 한다. 노력하지 않고는 무대에 설 수 없다는 메시지가 읽혔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곰은 행복할까? 훈련을 받는 동안, 무대에 서는 순간, 곰은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예전에 서커스 동물 학대에 관한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코끼리를 훈련 시키는 장면이었는데, 잔혹한 방식이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동물에게도 감정이 있을 텐데, 그들의 권리는 왜 무시되는 걸까.
또 하나의 생각은 ‘곰을 인간에 대입해 본다면’ 이였다. 사람들은 무대에 오르는 순간만을 바라보며, 그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은 얼마나 돌아보는가. 몇 년 전 국가 공인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던 시기가 떠올랐다. 두 해 동안 매달려 공부했지만, 그 시간은 즐겁지 않았다.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자신을 다그치며, 좋아하는 일은 잠시 뒤로 미뤘다. 결국 자격증을 취득하긴 했지만, 사용하지 않은채 놔두었다. 지식을 넓혔다는 점은 의미 있었지만, 방황하던 시절 그냥 붙잡은 선택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에 좀 더 일찍 지금 걷고 있는 길을 찾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곰의 회전하는 몸짓을 떠올리며 전시장을 나섰다. 한때 나도 저렇게 돌았던 것 같다. 멈추면 뒤처질까 봐, 아파도 돌았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무대 위에 오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꼭 박수를 받지 않아도, 나답게 서 있는 순간 행복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