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경험

익숙한 것들 사이에서 불뚝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 무엇

by 하리

동료들과 단체를 꾸려 시에서 주관하는 주민제안 공모사업에 도전했습니다. 첫경험입니다. 용인시에 있는 전통시장의 도시재생 사업에 관한 주민 제안 공모였는데, 내용을 보는 순간 '전통 시장 그림책 창작'이 떠올랐습니다. 이미 타 지역에 유사한 사업이 있었고, 전통 시장 그림책이 만들어지기도 했으며, 전통시장이야말로 그림과 이야기로 서사를 만들어내기에 너무 좋은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면접과 심사에서 어려움을 겪고, 예산이 깎이는 바람에 그림책 제작은 어렵게 되었습니다. 고민 끝에 책이 아닌 달력에 그림과 이야기를 담아보자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지요. 제안을 하고, 면접과 심사를 거쳐 승인이 난 것이 올해 초니까 계절이 세 개나 지났습니다.

책고래 출판사 대표이기도 한 우현옥 동화작가를 모시고 스토레텔링법을 배웠습니다. '데미안' '대주자' 등의 그림책을 낸 용달 작가를 모시고 그림을 배웠습니다. 참여자 모두 만족스런 성장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사업을 이끌어 가는 사람으로서 참으로 보람된 시간이었습니다. 전통시장을 담아 낼 이야기와 그림을 배우는 시간들은 소중한 첫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사업의 마무리로 중앙시장에 체험부스를 열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체험부스에 가서 만들고 꾸미던 일은 있었지만, 직접 체험할 것들을 디자인하고 재료를 구입하여 주어진 부스에서 사람들을 맞이하여 체험을 진행하는 일은 처음입니다.

첫경험은 어릴적에나, 청춘일 때나 하는 것이라 여기던 적이 있었지요. 중년 이후가 되면 새로울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었지요. 하지만 삶이 다 할 때까지 만나는 일의 상당 부분은 처음 겪는 일이라는 걸, 그리고 그것은 진리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구순인 친정 노모의 최근 십여년은, 노인에게서 일어나는 수 많은 변화와 병원 나들이를 지켜보는 일이었습니다. 친정 어머니는 암투병과 노화로 인한 질병들을 마주해야 했고 그럴 때마다 낯선 것들을 겪어내는 방법을 알아내고 대항해야 했습니다. 백년 가까이 살아내신 어머니의 삶에서 조차 익숙한 것들 사이사이에 낯선 것이 하나씩 불뚝 튀어나오곤 합니다. "사과가 그리고 싶어."하는 말씀을 듣고, 미술학원에 모셔가 며칠 사과를 그리던 일. 구순의 수강생을 받은 미술학원 원장님도 처음 겪는 일이었을 겁니다. 인생의 한 페이지 한페이지는 소설의 장면 장면처럼 익숙한듯 처음입니다.

사람을 만나거나 하는 일 모두 앞으로는 예측 가능한 경우가 더 많을 테고, 그리하여 환호나 기쁨과 같은 감정보다는 익숙함에서 오는 무덤덤함이 더 많겠지요. 그리하더라도 살아 있음에 겪을 수 있는 첫 경험들을 대할 때 감사하는 마음, 겸손한 마음으로 마주하리라 생각해 봅니다.



#라라쿠르 #첫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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