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준의 인생은 늘 ‘한 끗’이 모자랐다. 최종 면접에선 예비 번호에서 잘렸고, 큰맘 먹고 올라탄 급등주는 매수 직후 거짓말처럼 고꾸라졌다. 서른을 앞둔 그에게 남은 것은 곰팡이 핀 반지하 방과 유통기한이 임박한 편의점 삼각김밥뿐이었다.
“세상은 나한테만 불공평해.” 그는 매일 밤 천장의 얼룩을 향해 저주를 퍼부으며 잠들었다.
그러던 어느 화요일 오후, 현관문 앞에 정체불명의 택배 상자가 놓여 있었다. 주소는 정확했지만 수취인 이름은 공란이었다.
오배송이라 생각하면서도, 민준은 묘한 이끌림에 상자를 뜯었다. 그 안에는 매끄러운 티타늄 바디의 검은색 태블릿 PC가 들어 있었다.
전원을 켜자 은은한 발광과 함께 문구가 떴다.
[Hello, Sir.]
이어지는 화면에는 빼곡한 영어 문장들이 나열되었다. 민준의 눈에는 ‘Service’, ‘Timeline’, ‘Terms and Conditions’ 같은 단어들만 스치듯 지나갔다.
배고픔과 짜증이 섞인 그는 내용을 읽는 대신 하단의 ‘Skip’ 버튼을 신경질적으로 연타했다. 어차피 잃을 것도 없는 인생이었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굵은 글씨로 단 하나의 문장이 강조되어 있었다.
[계약 체결. 귀하의 타임라인에 존재하는 ‘실체적 보상’을 소환하십시오.]
그 아래에는 기이한 주의사항이 덧붙여져 있었다.
본 기기는 물질적 형태가 없는 데이터(수치)를 생성하지 않음. 귀하의 미래 타임라인에 실재하는 ‘물리적 매개체’를 명시할 것.
소환된 대상은 귀하의 미래 타임라인에서 현재로 앞당겨짐.
원칙적으로 하루에 단 한 가지만 요청 가능함.
“무슨 게임 홍보용인가? 실체적 보상?”
민준은 코웃음을 치며 빈칸에 적었다. 마침 어제 편의점에서 봐두었던 ‘프리미엄 한우 도시락’.
엔터를 누르자마자 방 한복판에 미세한 진동이 일더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도시락이 거짓말처럼 나타났다.
민준은 경악했다. 이것은 환각이 아니었다. 혀끝에 닿는 고기의 질감은 완벽하게 실재했다.
다음 날, 그는 좀 더 대담해졌다. ‘현금 1조 원’이라고 적어보려 했지만, 태블릿은 에러 메시지를 띄웠다.
[에러: 추상적인 수치는 소환할 수 없습니다. 귀하의 미래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물건을 명시하십시오]
민준은 곧 깨달았다. 숫자 그 자체는 허공에 띄울 수 없지만, 그 돈을 소유했음을 증명하는 ‘물질’은 소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그는 머리를 굴려 ‘금고에 보관된 1kg 골드바 1개’를 적었다. 역시나 성공이었다.
민준의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것은 미래의 자신이 가질 행운을 미리 당겨쓰는 기계였다.
하지만 하루에 하나라는 규칙은 너무나 감질났다. 이미 세상의 맛을 본 그에게 24시간의 대기 시간은 영겁처럼 느껴졌다.
‘하루에 하나라니, 이런 보물을 쥐고도 이 곰팡이 방에서 자야 한다고? 어차피 미래의 내 거라면, 지금 다 가져와서 즐기는 게 이득 아냐?’
탐욕은 이성을 마비시켰다. 그는 금기를 깨기로 했다.
설정창 깊숙한 곳에서 ‘강제 소환 모드’를 찾아냈다.
[주의: 동시 소환 시 타임라인의 급격한 왜곡이 발생합니다. 실행하시겠습니까?]
민준은 망설임 없이 ‘YES’를 눌렀다. 그는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해 미래의 자신이 가질 법한, 아니 반드시 가져야만 하는 실체적 물건들을 미친 듯이 써 내려갔다.
‘한남동 빌라 등기권리증’
‘독일제 스포츠카 차키’
‘스위스 은행 비밀 금고 열쇠’
‘세계 일주 퍼스트 클래스 티켓’
‘다이아몬드가 박힌 커플링’
엔터를 칠 때마다 방 안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눈부신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민준은 환희에 찬 비명을 질렀다. “그래, 이게 내 진짜 인생이지!”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물건이 하나씩 소환될 때마다 민준의 몸에서 무언가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엔 가벼운 빈혈인 줄 알았다. 하지만 물건이 나타날수록 팔다리의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지다 이내 힘없이 늘어졌다. 시야가 급격히 흐려졌고, 숨을 쉴 때마다 폐부에서 거친 쇳소리가 났다.
손등을 보았다. 탄력 있던 피부가 순식간에 쭈글쭈글해지더니 검버섯이 피어올랐다.
머리카락은 힘없이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졌고, 허리는 걷잡을 수 없이 굽어갔다.
“이게... 이게 뭐야...”
민준은 비틀거리며 전신거울 앞으로 기어갔다. 거울 속에는 방금 전까지 환호하던 청년은 온데간데없고, 당장 숨이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쇠약한 노인이 서 있었다.
소환된 ‘등기권리증’의 날짜는 지금으로부터 20년 뒤였고, ‘세계 일주 티켓’은 40년 뒤, ‘비밀 금고 열쇠’는 무려 50년 뒤의 날짜가 찍혀 있었다.
그는 자신이 평생에 걸쳐 성실하게 일하고 운이 따라주었을 때 얻었을 결실들을, 단 몇 분 만에 전부 당겨온 것이었다.
태블릿 화면에 마지막 알림이 떴다.
[타임라인 정렬 완료. 사용자의 생체 시계가 소환된 최장 미래 지점(85세)으로 동기화되었습니다.]
민준은 이제 호화로운 빌라의 주인이었고, 수억 원대 스포츠카의 주인이었다.
하지만 그 물건들을 누릴 ‘시간’은 이미 전소되어 버렸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태블릿에 마지막 소원을 적으려 했다. ‘시간을 되돌려줘.’
하지만 화면에는 차가운 문구만 반복될 뿐이었다.
[에러: 귀하의 타임라인에는 더 이상 남은 실체적 보상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잔여 시간 00:00.]
노인이 된 민준은 금방이라도 멈출 것 같은 심장을 움켜쥐고 쓰러졌다. 화려한 명품 정장 더미가 그의 수의(壽衣)가 되었다.
바로 그 순간, 민준의 흐릿해진 시야 속에서 태블릿의 화면이 스스로 전환되었다.
[사용자 생체 활동 정지 확인. 기기를 초기화합니다.]
기기는 민준의 모든 흔적을 지워내더니, 새로운 창을 띄웠다.
[다음 타겟 탐색 중...]
태블릿의 카메라는 잠시 민준의 시신을 비추더니, 곧바로 네트워크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화면에는 실시간으로 수많은 청년의 데이터가 스쳐 지나갔다. 학자금 대출에 허덕이는 청년, 고시원에서 컵라면을 먹는 공시생, 세상의 불공평함에 분노하는 취업 준비생들….
마침내 한 화면에 멈춰 섰다. 서울 외곽의 낡은 고시원, 벽을 치며 울고 있는 한 남자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태블릿의 화면 위로 새로운 명령어가 입력되었다.
[배송지 업데이트 완료: 서울시 관악구 ○○고시원 302호]
[상태: 배송 준비 중]
민준의 식어가는 손 옆에서 태블릿의 불빛이 영롱하게 빛났다. 마치 새로운 사냥감을 찾아낸 포식자의 눈동자처럼.
곧이어 방 안을 가득 채웠던 화려한 보물들이 하나둘씩 신기루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주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행운들은 다시 ‘미래’라는 이름의 상자 속에 담겨, 또 다른 절망을 배달하러 떠날 채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