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지도가 때로는 길을 잃게 만든다

by Peter Kim

나는 복잡한 현상 속에서 보이지 않는 패턴을 찾아내고, 이를 나만의 언어로 심플하게 구조화하는 과정을 사랑한다. 무질서한 데이터들이 하나의 논리적인 체계로 정돈될 때의 쾌감, 그리고 그 구조를 바탕으로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 나가는 과정은 내 삶을 지탱해온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하지만 최근 한 가지 균열을 발견했다. 문제를 깊이 파고들어 '생각-실행-피드백'의 루프를 무한히 반복하다 보니, 그 과정에 쏟아부은 시간과 에너지가 어느새 거대한 매몰비용이 되어 나를 압박하고 있었다. 내가 공들여 쌓아 올린 구조가 견고해질수록, 역설적으로 그 틀 바깥의 세상에는 무뎌지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AI처럼 변화의 속도가 무시무시한 새로운 흐름을 마주할 때 발생한다. 예전 같으면 유연하게 흡수했을 새로운 패러다임 앞에서도, 나는 자꾸만 '기존의 내 구조'에 대입해 해석하려 든다. '내가 이미 이렇게 정돈해 뒀는데, 이게 더 효율적인데'라는 고집이 고개를 드는 것이다. 내가 만든 최선의 구조가 새로운 가능성을 차단하는 벽이 되어버린 셈이다.

구조화는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공들여 만든 지도가 눈앞의 바뀐 지형과 다르다면, 미련 없이 지도를 찢고 다시 그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매몰비용에 발목 잡혀 '익숙한 정답'만 고집하기보다, 가끔은 내가 만든 완벽한 구조를 스스로 허무는 연습을 해보려 한다. 비워내야만 비로소 새로운 시대를 담을 자리가 생길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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