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아파트 게시판에 공지가 붙었다.
8/30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변압기 교체로 세대에 정전이 된다는 공지였다. 뭐..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되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아내는 냉장고를 걱정했다. 냉장고와 냉동고에 전기가 끊어지면 안에 내용물이 나 녹거나 상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냉장고를 그렇게 많이 열고 닫으면서도 냉장고에 공급되는 전기를 신경 써 본 적은 없다. 그런데 전기가 끊어지고 나니 온통 전기 생각만 맴돌았다. 화장실을 쓰기 위해 불을 켜다 불이 켜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아..정전!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려다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는 걸 알아챘다. 아...정전! 생각보다 많이 전기를 사용하는 물건들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면서 그런 생각을 해봤다. 앞으로의 삶에 전기가 없어진다면 내 삶은 어떻게 바뀔까?
냉장고(냉동고에도)에 물건을 더 이상 쌓아두지 못하고, 그날 그날 필요한 만큼 식재료를 사게 될 거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못 쓰겠지. 아... 이건 크다... 스마트폰이 사라진다는 건 내 삶에서 온라인이라는 공간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그동안 만들었던 여러 모임들, SNS상에서 이야기 나누던 온라인 인연들, 편하게 누리던 이런저런 서비스들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 정말 엄청난 일일 듯하다. 그래도 하나 좋은 점은 시간은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전기 없이 어떤 삶을 살아갈지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중요한 부분을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TMI(Too much information)의 시대다. 무엇이든 범람하는 잉여의 시대다. 그러면서도 역설적으로 결핍의 시대이기도 한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오늘도 잠시 생각해 본다. 내려놓지 못하고 움켜쥐고 있는 손을 펴고 내가 움켜쥐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볼 시간이다. 그래서 삶이 좀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