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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성호 Oct 13. 2017

나는 책을 잘읽고 있는 걸까?

활자를 탐닉하는 즐거움에 관하여.


“내가 책을 정말 잘 읽고 있는 게 맞을까?”
“요즘 읽는 책들이 내 삶에 도움이 될까?”


책을 읽어가며 종종 그런 의문을 품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여러 장르의 책을 전투적으로 더 많이 읽곤 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허겁지겁 읽을 당시에는 그 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불현듯 답이 떠올랐던 건 잠시 동안 책을 손에서 뗐을 때였습니다. 조급함을 가진 채 마구 달려갈 땐 보지 못했던 것들이,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며 둘러보니 보이기 시작했던 겁니다.


몇 달 전, 고영성 작가의 책을 읽던 날이었습니다. 책에 빠져들어 무아지경으로 읽고 있던 나는, 어떤 한 구절 앞에서 멈칫하며 한참 동안 곱씹게 되었는데, 그 구절은 이러한 내용이었습니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는 저자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것과 같다. 우리는 책을 읽으며 나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한 사람의 의식의 흐름에 동참하게 된다. 외국인, 여행가, 문화인류학자, 역사학자의 눈으로 세계를 보면,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규범이 명시적인 관찰로 바뀌게 된다. 세상을 다시 보게 되고, 또한 자기 자신을 다시 보게 된다. 소설을 읽으면 저자의 관점뿐만 아니라 다양한 등장인물의 관점도 접할 수 있다. 
_ 『어떻게 읽을 것인가』, 고영성(스마트북스)


한권의 책은 하나의 관점을 내던진다.

그의 말처럼 한 권의 책은 내가 가보지 못했던 상황과 내가 보지 못했던 하나의 관점을 내던집니다. 내가 가보지 못했던 곳과 배경 그리고 사람을 만나게 해주고, 내가 보지 못했던 관점들을 작가의 눈이나 소설 속 등장인물의 눈을 통해 보게 해줍니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것 또한 내 삶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소설을 읽으며 다양한 등장인물에 감정이입, 상황이입을 해볼 수 있으니까요.


비록 직접적이진 않지만 책을 통해 얻게 되는 간접적 경험은 내가 현재 보고 있는 것들과 내가 향후에 볼 것들에 대한 일종의 선행 학습을 제공합니다. 책을 통해 내 삶에 대입해보게 되고, 또 응용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전문적인 노하우와 정보를 전달하는 자기계발 서적과 전공 서적만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감성을 자극하는 에세이와 시도 다양한 관점과 생각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에, 내 삶에 도움이 되는 책이 됩니다.


더욱이 감성을 자극하는 글은 내 삶에 대입되어 많은 공감과 위로를 가져다줍니다. 뭐랄까요. 이 장르의 작가들은 바른말만 딱딱 하며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이라기보다 내 말을 들으며 공감하고 끄덕여주는 친구 같다고 할까요. “나는 너의 고통을 알아. 힘들었지?”라며, 글을 읽고 있는 나를 다독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인지 왠지 모를 친밀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마치 나와 비슷한 고충을 겪은 이가 나를 대변해서 내 마음을 이야기해주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글을 통해 무심결에 흘려보낸 것들을 새삼스레 다시 대면하게 되기도 합니다. 가끔은 역설적이게도, 분명 남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데 마치 내 이야기가 읽히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묘한 기분이 들 때도 있습니다.



작가가 다녀온 여행지는 나의 버킷리스트가 된다.

여행기를 다룬 산문집은 또 어떠한가요? 그러한 글을 읽으면 그 순간만큼은 그때, 거기에 있는 그들이 됩니다. 그들이 밟은 땅, 만난 사람들, 겪은 경험까지. 그들은 그 속으로 나를 잡아당기고 꿈꾸게 합니다. 그리고 때론 그들이 겪은 경험은 미래의 내가 겪는 경험이 되기도 합니다. 가끔은 책을 읽고 나서 그 여행지를 찾아 떠나기도 하니까요. 나는 여행산문집 한 권을 읽고 나면, 종종 책에 나온 여행지를 버킷리스트에 담곤 했습니다. 괜스레 그 지역으로 가는 항공편과 기차편 가격을 알아보기도 하면서요. 물론 순간의 달콤한 꿈으로 간직한 채 금세 일상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합니다. 어느 한여름 밤에 꿨던 나른하고 행복한 꿈처럼.




마치 내 얘기를 적은듯한 사랑 이야기들.

행복한 몽상을 하게 되는 한여름 밤을 말하니, 뜨거운 사랑 이야기가 담긴 책 이야기도 하지 않을 수 없네요. 나는 오래전부터 사랑에 관한 글들을 참 좋아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사랑. 그 사랑은 비슷한 모양새로 아픔이 되기도, 추억이 되기도 합니다. 내가 했던 사랑은 나만의 아주 특별한 추억이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사랑을 했고, 비슷한 행복과 비슷한 이별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누군가가 기록한 아픔과 추억을 볼 때면, 그 속에 나의 옛 사랑과 추억을 투영하고 회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때의 그 사람과 그때의 나를 말이지요. 이런 감정들은 책으로부터 느끼는 일종의 대리만족감 같은 걸까요? 책은 빽빽하고 각박한 내 삶 사이사이에 스페이스 바(space bar)를 입력합니다. 지치고 찌든 내가 잠시 쉬어가고, 돌아볼 수 있게.


물론 때로는 그 ‘띄움’이 찌든 일상을 살고 있는 나를 더 공허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아름다운 기록들은 대부분 행복으로 이끕니다. 그래서 책은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영감과 희로애락을 안겨줍니다. 작가의 글을 보며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과거의 나를 다시 끄집어내기도, 또 현재의 나를 글 위에 올려놓고 들여다보기도 하니까요.


어떤 걸 꼭 새로 얻기만 하는 것이 아닌, 어떤 걸 다시 꺼내 보기도 하는 그런 느낌. 아마도 그것이 책을 읽는 재미, 책을 통해 얻는 기쁨이 아닐까요?






본 글은 작가의 책 '지금은 책과 연애중'의 일부내용을 발췌한 내용입니다.

도서 정보는 아래 이미지와 같습니다. 긴 글 읽어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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