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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성호 Sep 26. 2017

불빛 속에서 펼쳐지는 책장

혼잡한 출퇴근길, 당신은 전철내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요?

                                                                                                     

러시-아워(rush hour)
[명사] 출퇴근이나 통학 따위로 교통이 몹시 혼잡한 시간.


나는 이 시간에 출근해야 하는 게 싫었습니다.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에 간신히 몸을 구겨 넣고 30~40분 이상을 옴짝달싹 못 한 채 서서 가는 출근길에 진이 다 빠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한 러시아워를 피하기 위해 알람을 좀 더 이른 시간에 맞춰놓곤 했습니다.

06시 50분. 보통 내가 일어났던 시간. 그러나 내 알람은 06시 30분부터 울리게 되어 있었고, 10분 간격으로 3개를 맞춰놓았지만 일어나는 시간은 늘 맨 마지막 알람이 울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오히려 알람을 여러 개 맞춰놓는 게 독이라는 생각에, 알람을 한 개로 줄여본 적도 있었습니다. 덕분에 그날은 데드라인에 겨우 턱걸이로 출근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렇게 보통은 마지막 알람에 몸을 일으키는 나였지만, 가끔은 눈이 빨리 떠져서 평소보다 30분 일찍 집을 나설 때가 있었습니다. 그 시간의 지하철은 매우 평온했으며 또 한적했습니다. 평화가 공존하는 붐비지 않는 지하철 1호선 안, 그 시간에 종종 만나는 중년 남성이 있었습니다. 그는 늘 비슷한 캐주얼 정장 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늘 같은 자리에 앉아 까만 가죽 가방 위에 책을 올려놓고 독서를 하곤 했습니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저씨의 모습이었지만, 가끔 지하철에서 마주칠 때마다 나는 금방 그를 알아보곤 했습니다.

지하철에 책 읽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였을까요? 늘 같은 모습으로 책을 펼치고 있는 그 중년 남성은 참 멋져 보였습니다. 그렇게 그를 같은 칸에서 만날 때면, 혼자 슬며시 미소 짓고는 나도 가방 지퍼를 열어 책을 꺼내곤 했습니다. 30분 단위로 출근하는 회사는 많지 않기에, 분명 그도 나와 출근 시간이 비슷했을 거라 짐작합니다. 어쩌면 그는 일부러 붐비지 않는 이른 시간을 선택해 지하철에 올랐는지도 모릅니다. 하루의 첫 시작을 책과 함께 열기 위해서 말이지요.


오늘 난 지하철 안에서 무엇을 했는가.


대부분 사람들은 지하철 안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봅니다. 나 또한 책을 가져오지 않은 날엔 어김없이 스마트폰에 흠뻑 빠지곤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모든 사람들의 절친이 한 사람(스마트폰)으로 통일돼버렸습니다. 나 역시 그와 친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그의 몸을 만지고,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니까요. 과거에는 가끔 얼굴을 보며 인사를 나누는 정도였는데, 한 5년쯤 됐을까요, 서서히 그와 더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와 절친이 돼버렸습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말이지요.


얼마 전 마지막 예비군 훈련을 받으러 동사무소에 갔던 날이 생각납니다. 그날은 비가 억수같이 내려서 실내 교육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남자들은 압니다. 비 오는 날의 축복을. 비가 오는 날은 예비군 훈련일 중에서 최고의 날입니다. 그렇게 모든 예비군들이 축제를 즐기는 마당에, 갑자기 휴대폰 반납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동대장의 강한 압박이 있었기에, 나를 포함한 모든 예비군들이 휴대폰 수거함에 자신의 절친을 넣어야만 했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저마다의 세상에 심취해 있던 예비군들은 일순간 모두 멍한 상태가 돼버렸습니다. 마치 모든 사람의 의식이 오프(off) 모드가 된 듯했습니다. 개중에는 급한 용무를 핑계 삼아 휴대폰을 되돌려 받는 이도 있었지만, 그날은 대부분이 성당에서 기도라도 하듯 고개를 숙인 채 깊은 잠을 청했습니다. 그러다 훈련이 끝날 무렵이 되어 휴대폰을 다시 돌려받았을 때에는, 모두가 일제히 그 작은 불빛에 빠져들어 버렸습니다.

이렇듯 휴대폰 보는 게 생활화된 요즘이기에, 휴대폰 전원을 끄는 것을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영화관에서 영화가 상영되는 도중에 벨이 울리거나 작은 불빛들이 곳곳에서 반짝이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나 또한 처음에는 휴대폰 전원을 끈다는 게 불안했습니다. ‘나를 찾는 연락이 왔을 텐데, 너무 늦게 답변해줘도 되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휴대폰을 몇 시간 동안 꺼놓고서 다시 켜보았을 때,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나를 찾는 사람이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과연 우린 똑똑해진 것일까?


스마트폰 덕분에 더 스마트해지고 편리해진 우리. 그러나 우리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딱히 그렇게 스마트해진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스마트폰 중독에 빠지는 일이 허다하고, 때론 확실치 않은 정보를 맹신하여 그릇된 생각을 낳게 되기도 하니까요. 특히나 요즘은 SNS를 통해 각양각색의 정보들을 콘텐츠 제작자로부터 빠르게 제공받으면서 자연스레 그 정보들이 사람들의 대화가 되고 이슈가 되곤 하는데, 그런 정보 공간에 입성한 누군가는 무의미한 스크롤을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반복해서 오르내리곤 합니다. 크게 유용하진 않지만 그 시간에 딱히 할 게 마땅치 않기에, 휘발성이 강한 그 콘텐츠 기름에 뿌려지고 또 태워지는 것이지요.


이처럼 매우 광범위하고 다양한 인터넷 정보들. 만약 그 정보들을 차곡차곡 내 머릿속에 정리할 수만 있다면 오히려 책보다 더 많은 정보와 지식을 빠른 시간 안에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한 번의 검색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고 또 다른 정보들을 바로 연이어 접하게 되기에, 대부분의 정보들은 내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못한 채로 증발되고 맙니다.

물론 책 역시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스마트폰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책은 단순히 그런 정보만을 제공하진 않습니다. 책을 읽게 되면 한 사람의 ‘지혜’가 내 맘 깊숙한 곳에 스며듭니다. 그래서 책은 인터넷보다 조금 더 깊고 무거운 활자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무거우면서 깊은, 그렇지만 마냥 딱딱하고 무겁지만은 않은, 그런 활자를 말이지요.                                                  




본 글은 작가의 저서 ‘지금은 책과 연애중’의 일부내용을 발췌한 글입니다. 책에 관한 추가 정보는 아래 이미지를 통해 만나볼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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