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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수 Sep 02. 2023

눈 감으면 콘서트가 보인다

공간 읽기: 콩치노 콩크리트

평일 오후 파주로 차를 몰았다. 평일에는 콩치노 콩크리트가 오후 2시에서 7시까지만 운영되었다. 그나마도 수, 목은 휴무여서 큰 마음먹고 찾아가야 했다. 자유로에서 빠져나오면, 작은 이정표들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안내했다. 자갈이 깔린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사진: 콘서트 홀 외부]

콩치노 콩크리트의 출입구는 필로티 구조의 동쪽 방향 구석 끝에 숨겨지듯 있었다. 외부와 차단되고 밀폐된 공간으로 들어가는 듯한 입구라는 인상을 주었다. 경사로 따라 올라가 왼쪽으로 180도 회전하면 출입구가 있었다. 문 열리면 들어서는 작은 대기실은 온전히 엘리베이터 탑승을 위해 할애된 곳이었다. 매끈한 노출 콘크리트 벽들로 만들어진 공간에 금속성 엘리베이터 문만 놓여있었다. 이곳이 미니멀 디자인을 추구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야 콩치노 콩크리트의 청음 공간에 들어설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재즈 뮤지션의 액자와 20세기 초반의 축음기들이 손님을 맞이했다. 이곳에서도 우측으로 180도 회전해야 홀로 들어갈 수 있었다. 홀까지 가는 짧은 동선이 미로에 들어가는 인상을 주었다. 경로가 복잡할수록 점점 더 기대감이 커졌다. 회전을 통한 변화의 과정 끝에 결과적으로 마주한 공간은 개방감이 큰 청음실이었다. 건축가는 방문객이 ‘오~’ 하는 작은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경험을 유도했던 것이다.


[사진: 콘서트 홀 내부]

콘서트 홀은 오페라 극장처럼 1층과 2층으로 분리되고, 2층의 좌석은 오페라 극장과 유사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좌측에 있는 통창들로 빛이 들어와, 조명 없는 내부 공간을 밝혀주고 있었다. 좌측이 서북쪽이라, 낮 시간에 직사광선이 내부로 깊숙이 들어오지 않는다. 직사광선이 내부의 음향장비와 앨범들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의도했던 것이다. 서북 측에서 들어오는 빛은 시간대에 따라 양과 색이 바뀌었다. 그에 따라 청음 공간도 함께 미묘하게 변해가며 어두워졌다. 

콘서트홀은 3층 높이의 개방된 공간이었다. 커다랗고 견고한 울림통이었다. 객석의 청음자들은 울림통 안에 들어와서 온몸으로 소리를 마주하고 느낄 수 있었다. 단지 소리가 커서 자극적으로 들리는 것은 아니었다. 저음, 중음, 고음이 모두 살아서 조화롭게 들렸다. 연주에 사용한 악기들의 음이 모두 살아서 청각을 만지작 거렸다. 전체적인 감흥은 현장에서 듣는 생생함에 가깝다.

간혹 정면의 스피커 사이에 있는 콘크리트 벽으로 영상이 맺혔다. 뮤직 비디오처럼 영상 제공이 가능한 경우에는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LP 사운드가 아닌 디지털 음원이 사용되는 것이다. 소리가 좋아 영상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고 객석의 시선을 빼앗고 있었다. 


[사진: 클랑필름 유로노어 주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리는 LP로 들을 때 가장 매력적이었다. 이곳에서 사용하는 축음기는 영국의 HMV 202였다. 20세기 초에 제조한 제품이다. LP로 들려주는 음악은 특유의 잡음이 있는데, 곡이 연주되는 동안에는 잡음이 들리지 않았다. 곡이 끝나고 다음 트랙까지 공백기간에서 LP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30년대 독일에서 제조한 대형 스피커, 클랑필름 유로노어 주니어(Klangfilm Euronor Junior KL L441)를 통해 들리는 소리는 놀라웠다. 콘서트 현장에서 음악을 듣는 것처럼 소리를 재현했다. 


[사진: 웨스턴 일렉트릭 미러포닉]


사실 콩치노 콩크리트의 음향 재현 능력의 핵심은 장비의 이원화에 있았다. 앞서 언급한 유로노어 주니어가 클래식을 청음 하기 위한 용도라면, 블루노트와 같은 재즈 레이블을 듣기 위해 별도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었다. 1930년대 최고의 오디오 웨스턴 일렉트릭 미러포닉 M2(Western Electric Mirrophonic M2)이다. 1930년대 미국의 대형극장에서 사용했던 풀 사이즈의 Sound System이었다.   


명연주자들의 연주를 직접 들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에서는 여러 이유로 쉬운 일이 아니다. 차선책을 찾는다면 현장에 듣는 것과 흡사한 느낌이 나게 음악을 듣는 방법이 될 것이다. 이곳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과거에 활동했던 뮤지션의 음반으로 그 현장을 간접적이지만 거의 유사하게 체험하도록 만들었다. 이곳의 진정한 매력은 유명 연주자의 연주가 끝나면, 다른 유명 연주자의 연주를 이어서 듣는다는 점이다. 현실에서는 그 모든 연주자를 한 자리에 불러 모을 수가 없다. 이곳은 그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했다. 

오래된 재즈와 클래식 음반을 소개하는 곳이다 보니, 처음 알게 되는, 새로운 가수와 음악을 만나는 즐거움이 컸다. 네이버 음악에게 들려줘도 알려주지 않는 곡들이 많았다. 놓치고 싶지 않은 음악을 듣게 되면, 샤잠으로 음원을 확인하고 스포티파이에서 찾아 플레이 리스트에 저장을 했다. 이곳을 벗어나도 그 감동을 다시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좌석은 편하게 앉고 싶은 곳에 앉으면 되었다. 음악에 집중하고 싶은 사람은 스피커를 향해 놓인 청음용 좌석에 앉았다. 반면 경치를 보고 싶은 사람은 창가에 놓은 좌석을 찾아서 앉았다. 공간을 가득 채우는 소리는 어디에 앉아있던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했다. 나는 좌우 밸러스가 맞는 객석 맨 뒷줄의 한가운데 앉아 온몸을 감싸고도는 음악 소리에 몸과 마음을 모두 맡겼다. 

눈을 감고 있으면, 콘서트 홀에서 음악을 듣는 유일한 청취자가 된 것 같았다.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나 한 사람을 위해 연주해 주는 뮤지션들과 함께 호흡을 했다. 그 순간은 내 안의 많은 감정들이 만들어내는 상념들을 사라지게 했다. 잡념에서 벗어나 나를 편안한 상태가 되게 도와주었다. 마음을 빼앗는 시각과 달리, 청각은 마음을 잡아주었다.

음악에만 집중하던 시간을 보내고 이번에는 풍경이 보이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이다 보니, 그 자리에 앉으려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2층 창가에 앉아서 바라보는 풍경은 개방감이 커서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북측으로 난 높은 통창에 담긴 드넓은 하늘과 구름이 너무 거대하게 다가왔다. 그 아래에 놓인 대지가 너무 작게 느껴질 정도였다. 창밖, 멀리 보이는 임진강에서 보내는 윤슬은 유혹적이었다. 말없이 바라보게 만드는 풍경이었다. 


콩치노 콩크리트의 의자에 앉아 창밖의 풍경을 보며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러다 보면 바쁘고 정신없이 사느라 미처 돌보지 못했던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잠시동안 나를 만나는 곳이다 보니 혼자와도 좋고 연인과 와도 좋다. 연인 곁에 앉아 묵묵히 풍경을 바라보며 음악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쉼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서로에게 쉼이란 선물을 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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