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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의사 Oct 16. 2019

새로운 판타지적 남성의 탄생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흥행을 견인하는 남주 캐릭터




사람의 취향 중에 가장 미묘하면서도 역동적인 것은 무엇일까. 영화, 음악, 패션, 와인, 커피, 다이닝... 다수의 의식주 요인들이 있겠으나 그중에도 상징적인 것이 있다면 인간이 관계 맺는 방식, 그 안에서 가장 극적이랄 수 있는 연애라는 행위일 것이다.


모름지기 폭넓은 연령대 여성들의 두터운 소구력과 인생의 어느 시점이든 자신의 감수성을 발견한 남성이라면 즐겨 소비 가능한 K-드라마의 레드오션에 흥행의 방점을 찍는 작품이 또 나타났다. KBS 수목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드라마로 망한 적이 없는 공효진 배우를 여주로 소박하고 따스한 지방 소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극의 전개에 어떤 긴장감이 있으랴 하는 예상부터 뒤집는다.



KBS drama



성공한 운동선수가 되기 전인 남자 친구와의 임신 사실을 숨긴 채 헤어진 여주 동백(공효진 배우)은 천애 고아보다 못한 버려진 아이라는 이 세상 처연함을 다 지녔다. 가족이 있는 것이 소원이던 그는 자신을 병균 취급하는 남친 엄마의 진저리를 듣고도 맞대응 하기는커녕 너무 쉽게 포기하듯 떠난다. 그리고 옹산이라는 물가가 가장 싼 지방 소도시에 아기를 안고 나타나 술을 파는 식당을 시작한다.


기설정된 플롯은 허다한 '청춘의 덫' 막장 드라마 풍이다. 그러나 본 작은 그 이후부터가 본론이다. 동백이가 이주한 마을에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동백은 우연찮게도 유일하게 살아남은 목격자가 된다. 자리 잡은 터전을 떠나지도 숨어 살지도 않는 동백의 기개를 알아보는 이가 나타난다.  


'처음엔 이 담담한 깡에 반했었다. 근데 지금은... 이 여자의 담담한 깡이 화가 난다. 안쓰러워 화가 나고, 괜히 미안해 더 화가 난다.'


서점에서 책을 꺼내는 그녀의 몸짓에 한눈에 반하는 그, 경찰관 황용식(강하늘 배우)이다.


'서점이 인간의 심성을 약하게 했던 걸까? 서점이 아니라 게장집 같은 데서 그녀를 만났다면 뭐가 달라졌을까?.'



KBS drama


엘리트도 모범생도 아니지만 특출 난 정의감 하나로 모범시민에서 동네 경관이 된 그가 마을 모든 남자가 욕망하지만 사랑하지는 않은 여자를 사랑하겠다고 선언한다. 세상은 자주 자기 이익의 논리로 가장 취약한 대상을 대수롭지 않게 취급하려 한다. 살인사건 취재를 위해 인터뷰를 하겠다는 기자에게 동백이 말한다.


"무슨 보호요? 저를 어떻게 지켜주실 건데요? 지금도 저한테 뭐 허락받고 여길 찾아오셨어요? 전화라도 주셨어요? 아니 뭐 지금도 저를 이렇게 함부로 막 예의 없이 막 헤집어 버리시면서 무슨 보호요?"






동백은 기묘하게 독립적인 여성이다. 연고지가 없는 집단에 홀연히 나타나서는 술을 파는 식당을 하겠다고 하는 것이 무엇이 이상하냐 되묻는다. 기구한 것은 기구한 것이고, 아이를 먹이고 잘 기르기 위해 장사를 하지만 웃음과 손 잡아주는 값은 식대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동백의 말투는 늘 김 빠진 맥주 같다. 선천적 절망과 후천적 실망의 행진 속에서 아들 필구를 희망 삼아 항해해오던 동백에게 새로 주입된 탄산 같은 이가 용식이다.

KBS drama

"남녀가 뒤에서 뭘 허면은 구설이고 카더라지만요, 앞에서 대놓고 그냥 좋아한다! 진짜 좋아한다! 니들이 뭐라든 나는 동백 씨 좋아 죽겄고, 이 엄청난 여자 좋아하는 거 그거! 오냐 그게 내 자랑이다! 하면은, 그래 버리면은, 차라리 찍 소리들도 못하는 거잖아요. 저는 그냥 그게 더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요."


선-예의 후-연애를 말하는 용식은 동백더러 자신을 긍정하라고 지지한다.


"남들 같았으면요, 진작에 나자빠졌어요. 근데 누가 너를 욕해요! 동백씨, 이 동네에서요, 제일로 세고요, 제일로 강하고, 제일로 훌륭하고, 제일로 장해요!"


동백은 들어본 적 없는 찬사다.

그러나 이는 사랑의 전형적인 속성이기도 하다. 흔히 콩깍지라 부르는 주관적 절대성. 그런데 동백에게는 그런 절대성을 투사해주는 대상이 그동안 너무도 빈약했던 거다.


"나한테 그런 말 해주지 마요. 그냥 죽어라 참고 있는데 누가 내 편 들어주면, 나 막, 막, 나 그냥 편들어주지 마요. 칭찬도 해주지 마요. 그냥. 왜 자꾸 이쁘대요, 왜 자꾸 나보고 자랑 이래. 나는 그런 말들 다 너무 처음이라, 막 마음이 울렁울렁, 울렁울렁, 이 악물고 사는 사람 왜 울리고 그래요!"


경계심이 서서히 옅어지지만, 무너지지는 않는 동백에 대한 용식의 고백은 근성이 있다. 연애의 방식과 속도를 결정하자고 제안하는 것은 동백이고 용식은 존중한다.


"용식씨, 만두는 김으로도 다 익잖아요. 안 끓여도 익잖아요? 우리 그냥 불같이 퍼붓지 말고, 그냥 천천히.. 따끈히 해요. 불같이 퍼붓다가 헤어지면 또 다 땡이던데."

KBS drama




이제는 낯설게 된 '우직함'의 현현이나 된 듯한 용식의 연애 방식은 시청자에게 참신함을 주는 동시에 향수를 느끼게 한다. 얕고 조심스러운 '썸'의 관계성이 만연한 가운데 느껴지는 일생을 거는 열정의 향수요, 동등한 상대로서 고백을 숙고하고 관계를 함께 구성해가는 주체로서의 여성이 명확한 참신함이다.


새로운 남성 판타지에는

새로운 여성상이 선행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환상적 케미(chemistry)가 발생한다.


KBS dr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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