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앞에서 느끼는 우리의 감정 탐구 / 범지구적인 의문을 향한 탐구
* 본 내용은 제가 쓴 학사 논문을 '의복결핍감'을 중심으로 읽기 편하게 바꾼 내용들입니다.
"의복의 착용은 개인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서 매일 다양한 요인을 고려하며 자신만의 목적과 방향을 두고 어떤 의복을 선택할지 고민하며 착용한다. 이에 따라 소비자는 옷장 앞에서 어떠한 의복을 입고 나갈지 선택하는 과정에서 각자만의 독특한 심리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영국의 한 패션 기업이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성인 여성 평균은 한 평생 아침마다 옷을 고르는 데 6개월을 쓴다고 합니다. 한 평생의 6개월이라 하면 짧은 시간일 듯 하지만 6개월을 시간으로 바꾸면 4,320시간입니다. 4,320시간을 아침마다 옷장 앞에서 깊은 고민을 한다는 것이죠. 영국인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친구들도 옷장과 행거 앞에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학생 때는 학교를 가기전에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을 많이 하고, 회사를 다닐 때는 회사 가기전에 옷장 앞에서 자주 망설이죠. 어떤 친구는 주말에 연인을 만나기 전에 10번 옷을 갈아 입었다고 합니다. 어떤 친구는 새로 산 옷과 어울리는 신발이 집에 없다고 외출을 포기했었습니다. 저 또한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어제 입은 옷은 피해서 오늘 입을 옷을 고르는 데, 그 옷은 엊그제 입은 옷이었습니다. 어제와 엊그제 갔던 곳은 같은 곳이고 오늘 또한 그 곳을 가서 똑같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그 사람들에게 어제와 엊그제 입은 옷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 것을 시작으로 같은 곳을 가기 위해 지난 주부터 입었던 옷들이 떠오르고 옷 선택 사항이 점점 줄어들면서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 심각한 고민에 빠졌었죠. 결국 저는 대충 옷을 입고 나갔습니다. 어떤 결핍과 찝찝함을 느끼면서 말이지요.
옷장 앞에서 망설인 친구들과 제가 했던 말은 똑같았습니다. '옷은 이렇게 많은데 왜 입을 옷이 없을까?'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느끼는 건 도대체 나는 작년 이 계절에 벗고다녔나 싶을정도로 뭘 입었고, 올해는 뭘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옷장에 옷은 산더미처럼 많은 데 말입니다. 저는 이러한 저의 심리 상태를 알고 싶었습니다. 저를 포함해 사람들이 아침마다 입을 옷이 없는 진짜 이유를 말과 글을 통해 알고 싶었습니다. 때 마침 그 당시에 저는 의류학과 학사 졸업 논문 주제를 고르는 시기였습니다. 또한, 패션에 관한 글을 읽고 토론하면서 패션의 재미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목표가 있었습니다. 저는 '옷읽기의 대중화'를 외치며 모든 사람이 흔히 느끼고 말하는 패션에 관한 이야기를 써내려가자고 다짐했었습니다. 입을 옷이 없는 것에 대한 궁금증과 저의 다짐과 논문 시기가 겹치면서 저의 패션 글쓰기 첫 시작을 논문으로 '아침마다 입을 옷이 없는 이유'에 대해 쓰기로 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아침마다 입을 옷이 없는 이유를 알기 위해 논문 작성과 인터뷰라는 수단을 사용했습니다. 교수님의 권유로 그것을 포함해 더 넓은 의미에서 옷장 앞에서 옷을 고를 때 드는 기분과 상황을 이해하고 기록하려 했습니다. 옷장 앞에서 옷선택에 고민을 경험해 본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이 성인 남녀들은 대다수가 그렇듯 외모 가꾸기에 대해 개인적, 사회적 욕구가 증가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기대와 자아실현의 욕구를 자연스럽고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시기였죠. 저는 인터뷰이들을 심층 면접을 했습니다. 면접 질문은 이렇습니다. "옷 선택에서 평균 몇 분정도 쓰나요?", "옷 선택을 고민할 때 어떤 기분이 드나요?", "그 기분이 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옷 선택 후 옷을 입고 나갔을 때 심리상태는 어떤가요?"같이 옷을 선택하고 입기 전부터 입고나서까지 심리를 파악할 수 있는 질문들 이었습니다. 그외에 추가 질문은 면접과정에서 인터뷰이들의 얘기를 바탕으로 만들었죠. 신기하게도 직접적으로 입을 옷이 없는 이유에 대해서 물어보지 않았어도 대부분 인터뷰이의 대답에는 입을 옷이 없는 이유와 그에 따른 감정들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해당 챕터 주제 상, 실제 논문 내용에서 '입을 옷이 없는 이유'를 중심으로 읽기 편하게 순서만 바꿨습니다. 입을 옷이 없는 이유와 연관성이 없는 내용들은 제외했습니다. (없는 내용을 추가했거나 억지로 짜 맞춘 것은 절대 아니라는 점을 알아주세요!)
입을 옷이 없는 느낌을 의상심리 용어로 '의복결핍감'이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옷이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실제로 옷이 없을 때 물리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옷을 통해서 결핍을 느끼는 상태죠. 사고 싶은 옷을 못 살 때에도 의복결핍감을 느낍니다. 우리는 주로 아침마다 외출하기 전에 옷을 선택하거나 자기전에 다음 날 입을 옷을 미리 고를 때 의복결핍감에 빠집니다. 옷장이나 행거에 옷이 아예 없어서 느낄 수도 있지만 옷이 정말 많은데도, 빽뺵이 옷이 걸려있는 데도 입을 옷이 없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입을 옷들은 많습니다. 입고 싶은 옷이 없을 뿐이죠. 입고 싶은 옷은 왜 자주 없을까요? 제가 인터뷰한 사람들에게 그 대답을 들어보았습니다. 인터뷰이들의 대답은 대다수가 경험하는 감정과 원인일 것입니다. 어쩌면 사소하고 일상적이서 이렇게 분석하고 글로서 구조화해 본 적만 없을 뿐, 입 밖으로 혹은 속으로 이야기한 말들입니다.
첫번째, 싫증
유행민감도가 높거나 해마다 유행 옷을 구매하는 인터뷰이들은 유행이 지난 옷을 입기 어렵다며 옷 선택에 어려움을 보였습니다. 요일별로 입을 옷을 정하거나 조합된 옷들마다 착용 주기 기간이 있는 인터뷰이들은 착용 주기가 지나면 기존 조합 의복에 싫증을 느낀다고 하였습니다.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에 신경을 많이 쓰는 인터뷰이들은 착용 횟수가 높은 옷에 싫증이 나거나 새로운 스타일이나 컬러를 시도하고 싶은, 변화를 향한 갈망에 기존 옷을 입고 싶지 않아 옷이 부족한 느낌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스타일이 뚜렷한 인터뷰이는 보유한 옷들을 활용하여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새로운 코디네이션을 하고 싶지만 원하는 옷 조합이 나오지 않아 아쉬움을 토로했죠. 몇몇 인터뷰이는 보유한 옷은 있지만 특수 환경에 맞는 변화된 스타일의 옷이 없어 자신의 옷들에 지루함을 나타냈습니다.
"매년 해가 바뀌면 내가 뭘 입었지? 라는 생각이 들어요. 옷이 많은데도. 그래서 요즘 느끼는 건데 너무 유행을 많이타는 옷을 사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요일마다 정한 옷들을 입는 스타일인데, 정해진 사이클 대로 입다보니까 저 스스로가 지겹다고 느껴요."
"저는 인스타그램에서 외국인과 한국인이 입은 옷들을 다 비교하면서 코디네이션하고 색깔을 맞추는데, 막상 비슷한 옷을 사면 제가 원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아쉽고 입기가 싫어지죠."
"그럴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친구 한참 브랜드를 만들어서 런칭 파티를 연데요. 그런 데 갈 때도 이렇게 똑같이 입고 가야 하는 일이 생기는 거죠. 런칭 파티 때는 색다르게 입고 싶은데... 그럴 때 입을 옷이 없다고 생각해요."
두섯째, 경제적 어려움
대부분의 인터뷰이들이 옷 구매 욕망이 있지만 돈이 부족해 구매하지 못하거나 취업 준비 혹은 생활 안정이 우선이 되어 의복 구매 지출 능력이 낮아져 원하는 옷을 보유하지 못하는 의복결핍감을 보였습니다.
"저와 사람들이 입을 옷이 없다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다 돈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내가 사고 싶은 옷도 있고 입고 싶은 옷도 많은데 그만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세번째, 몸의 변화와 특성
몇몇 인터뷰이는 다음 날 예상하지 못한 신체 변화 혹은 본인의 체질이 옷 선택에 망설임을 준다고 합니다. 신체적 특성 때문에 계절감에 맞는 의복을 착용하기 어려워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 전보다 살이 찌고 몸무게가 늘어난 사람 등 신체 변화와 신체 특성때문에 옷 선택에 곤란함과 의복결핍감을 보였습니다.
"전날에 기분이 너무 좋았는데 아침에 일어났을 때 컨디션이 너무 안 좋으면 미리 고른 옷을 입는 데 망설여져요."
"저는 추위를 많이 타서 계절감이 다르다고 느껴요. 예를 들어 놀러갈 때 친구와 옷을 맞춰 입고 싶은데 친구는 얇게 입고 저는 체질 때문에 조금은 두껍게 입어야 하거든요. 조금 다른 계절감 때문에 친구와 맞춰 입을 옷이 없을 때 곤란함을 느끼죠."
"일단 체형의 변화가 급격하게 오면 도저히 입을 수가 없어요. 사이즈도 사이즈인데 핏이 문제가 크기 때문에. 내가 원래 바라던 핏이 없으니 오을 입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급격하게 입을 옷이 확 줄어드는 거죠."
네번째, 옷 코디 지식 부족
한 인터뷰이는 옷을 많이 갖고 있지만 반복된 생활 패턴에 다양하게 매치하는 경험이 부족했습니다.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할지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몇몇 사람은 특수 상황에 맞는 옷을 일회성으로만 입거나 충동적으로 샀던 옷은 다른 옷과 조화롭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옷입기에 제한이 있는 것을 보였습니다.
"저는 활동 동선이 고정되어 있고 혼자 다니기 때문에 편한 옷 위주로만 입게 돼요. 그래서 다른 옷들을 어떻게 입어볼까라는 생각은 별로 안 해본 것 같아요."
"그냥 그 옷 자체가 예뻐 충동적으로 산 옷들은 안 입게 돼요. 갖춰 입을 만한 게 없기 때문이죠. 단순히 예뻐서 산 옷은 그 옷에 어울리는 옷을 또 사지 않는 이상 못 입어요."
다섯번째, 갑작스럽게 변한 날씨
한 인터뷰이는 갑작스럽게 바뀐 날씨나 전날 밤에 보았던 옷이 다음 날 미적 인식 변화가 있어 의복 스타일 수정에 부정적인 기분을 느꼈습니다.
"전 날 예뻐보였던 옷이 다음 날 봤을 때 예뻐보이지 않을 때가 있어요. (중략) 또 날씨에 영향이 있어요. 만약에 전날에 날이 좋아서 거기에 맞게 옷을 골랐어요. 그런데 일어나니까 날씨가 안 좋으면 뭘 입어야 할지 모르게 될 때가 있죠."
여섯번째, 옷 기능 상실
한가지 옷을 오래 입은 인터뷰이들은 오랫동안 입어 색이 빠지고 원단이 헤져 의복 기능을 상실한 옷들을 입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또한, 신체 활동에 제한을 주는 옷을 입었던 사람들은 더 이상 불편함이 싫어 그 옷을 입고 싶지 않다고 보였습니다.
"세월이 너무 지나서 색이 바래고 헤진 옷들은 못 입어요. 세월이 지난 만큼 애정이 있어서 입으려고 해도 밖에 나갈 때 입기는 어렵죠."
"활동 자체가 불편한 옷들은 전에는 어떻게든 감수하면서 입었는데 이제는 너무 불편해서 못 입겠더라고요."
인터뷰를 종합하여 분석한 결과 긍정적인 감정보다 부정적인 감정이 더 많았습니다. 신체 변화와 특성, 의복 지식 부족으로 곤란함, 아쉬움, 답답함을 보였습니다. 자신이 통제 할 수 없는 날씨나 미적 인지 변화, 의복 기능 상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불편함, 비참함을 느꼈습니다. 옷 선택과 착용 후에 긍정적인 반응은 인터뷰이 중 절반만 느꼈고, 부정적인 반응은 모두가 느꼈습니다.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들은 '설렘과 기대'를 느낀다고 했습니다.
옷을 입는 데 즐거움을 느끼고 취미라고 했던 인터뷰이는 옷을 다양하게 조합하는 매칭능력과 옷 만큼은 자신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의복통제력이 자신에게 설렘을 준다고 했습니다. 몇몇 인터뷰이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러 간다거나, 연인 혹은 이성과 약속이 있을 때 옷장앞에서 설렘, 기대심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들을 느낀다고 하였습니다. 스타일이 뚜렷한 인터뷰이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이미지 혹은 타인에게 보이고 싶은 이미지처럼 자신이 만족하는 이미지의 옷 선택이 기분에 영향을 준다고 했습니다.
입을 옷이 없는 이유는 제가 알아낸 이유들말고 다른 이유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외부의 시선을 신경써서 그럴 수도 있고, 갑자기 새로운 스타일로 도전하고 싶은데 그 스타일에 맞는 옷이 없어서도 그럴 수 있습니다. 어떤 이유든 앞으로도 입을 옷은 없을 것입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점은 옷장은 사람에게 폭력적이고, 사람은 평생 옷장 앞에서 괴로움에 시달린다는 점입니다. 옷장앞에서 좋은 감정을 보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인터뷰이는 옷장앞에서 짜증과 불쾌를 토로했습니다. 화도 내고, 비명도 지르며 '진짜 입을 옷 없다'고 말했죠. 사람들이 옷장앞에서 불쾌한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대부분 의복결핍감이 주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콘서트에 가고 싶은데 적당한 의상이 없거나, 어제 입은 옷은 또 입기 싫은데 옷장에 어제 입은 옷밖에 없거나, 원하는 옷은 인스타그램에 있고 옷장에 없을 때와 같이 다양한 이유로 옷에 결핍을 느낍니다. 결핍을 느끼고 난 후 옷을 입고 나서면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다. 그렇게 고민하고 시간이 지났는데도 결국 전에 입은 옷을 또 입었기 때문이죠.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은 신경이 쓰일겁니다. (사실, 그 누구도 자신이 어제 입은 옷을 오늘 또 입은 걸 모릅니다.) 의복결핍감은 문 밖을 나서면 자연스럽게 의복불만감으로 바뀝니다. 어떤 인터뷰이는 그날 하루가 망치는 기분이어서 빨리 집에 들어오고 싶다고 했습니다. 옷장의 폭력에 휘둘렸지만 다시 옷장앞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아이러니합니다. 옷장으로의 회귀를 보면 옷장과 사람은 가학과 피학의 관계입니다.
예전의 저는 의복결핍감을 느끼는 이유가 돈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돈이 없어서 어제 입은 옷 또 입고, 격식에 맞는 옷이 없으며, 옷장은 늘 그대로인 겁니다. 불만이 많았죠. 하지만, 항상 입을 옷이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싫증'이 나서 결핍을 채우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옷장에 있는 옷을 다 입어보고 계속 입으면 싫증나고 입을 옷이 없어집니다. 차츰 입을 만한 옷의 범위가 줄어들면서 옷장은 옷이 가득해도 허전합니다. 돈이 생겨 새옷을 사면 몇일, 몇주는 입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의 옷으로 변해 낡은 옷이 되죠. 옷장은 옷이 아니라 텅빔이 걸려있습니다. 우리는 돈이 많든 적든 평생 옷장안에 옷을 가득 채우지 못할 것입니다.
아침에 옷입기는 패션이 내린 현대인들의 오랜 숙제입니다. 어제의 옷을 입은 나 자신을 오늘 극복해야 하고, 다가오는 나의 모습을 연구하고 표현해야 합니다. 의복결핍을 느끼며 해소하고, 다시 싫증이나 의복결핍을 느끼고 해소해야 합니다. 출구없는 미로에 갇힌 듯 하지만, 패션이 내려준 숙제는 꽤나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매일 새로운 나를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드는 것처럼, 나를 죽이지 못하는 옷장은 나를 더 멋있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