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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환 Feb 11. 2020

패션에서 아방가르드는 무엇일까?

디자이너 마틴 마르지엘라로 살펴본 아방가르드 이야기


낯설고 독특하고 이질적인

제가 어렸을 적에 딱 달라 붙는 티셔츠와 카라티, 스키니진이 유행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 유행과 맞지 않게 입은 사람을 보면 이질감이 들면서 아방가르드하다는 말을 되뇌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저 뿐만 아니라 딱 달라 붙지 않는 스타일말고 옷을 크게 입는 사람들을 보면 제 주변에서도 아방가르드하다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모두가 아방가르드라는 단어를 알고서 사용한 것일 수도 있지만 저는 아니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독특한 스타일을 보면 단순히 아방가르드하다라고 말했었죠. 아마도 일반적이게 입지 않는 사람을 보면 아방가르드하다는 말을 옛날부터 사용했기 때문에 제가 무의식적으로 학습했다는 걸로 판단이 됩니다. 단어도 생각보다 모양새가 멋있고 패션쪽에서 허세부리기 딱 좋아서 자주 입에 달았던 걸로 생각이 드네요.

지금도 패션 기사나 블로그에서는 옷의 특정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아방가르드 단어를 사용하고는 합니다. 간간히 일상 대화에서도 아방가르드하다는 말을 듣기도 하죠. 자세히 보면 아방가르드하다고 말할 때 공통적인 특징은 평가하는 스타일들이 독특하고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특정 스타일이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거리에서 보기 힘든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스타일들이 아방가르드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이 아방가르드가 정말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정말로 의미를 알고서 쓰는 단어일까요? 정확히 패션에서 아방가르드하다는 말은 무엇일까요?


 


아방가르드, 앞서나가는 것들

제가 패션을 공부하면서 알게된 점은 아방가르드는 패션에서만 쓰이는 단어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아방가르드가 주로 쓰이는 영역이 있고 유래도 패션이 아니었습니다. 아방가르드(Avant-garde)는 프랑스어로 '앞서 나가는 부대'라는 뜻입니다. 아방가르드는 맨 앞에서 싸우는 부대입니다. 그런데 본래의 뜻과 다르게 주로 쓰이는 영역은 예술입니다. 아방가르드는 '전위예술'로 불립니다. 전위예술은 '기존 예술에 대한 인식, 가치를 부정하고 새로운 예술을 추구하는 예술운동'이라고 합니다. 아방가르드는 문학, 미술, 음악, 영화 등 많은 문화예술 분야에서 보입니다. 미술에서 아방가르드 예를 들자면, 마르쉘 뒤샹의 작품인 변기 '샘'이 대표적일 것입니다. 마르쉘 뒤샹은 그 때 당시 예술로 인정하는 정통 기준을 부정하며 변기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 걸 보여주었죠. 또 하나 예는 파블로 피카소의 큐비즘 작품들이 아방가르드로 볼 수 있습니다. 피카소도 뒤샹처럼 기존 예술의 규칙을 거부했습니다. 그 당시 전통 회화가 입체적인 현실을 평면 캔버스에 옮기는 작업이었는데, 피카소는 반대로 3차원 현실을 평면 캔버스에 옮겨 작품에 묘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평면인 캔버스인데도 얼굴이 한면이 아닌 왼쪽면, 정면, 오른쪽면 모두 보이며 이질적인 입체감을 주었죠. 변기와 피카소의 공통점은 당시 사람들에게 충격적이었고 거부당했다는 점, 지금에 와서야 변기와 큐비즘이 예술로 인정(아직도 의견은 나뉘지만 당시보다는) 받았다는 점입니다. 피카소와 뒤샹을 예로 들었을 때 아방가르드는 본래 뜻처럼 해당 영역에서 선구자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너무 앞서 나가 당시에는 욕만 먹었지만 말이죠.


그렇다면 패션에서 아방가르드하다는 말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흔히 아방가르드하다는 말이 붙는 디자이너들이 있습니다. 1980년대 일본 패션의 역사에 셋 획을 그었던 레이 가와쿠보, 요지 야마모토, 이세이 미야케. 뎀나 바잘리아의 스승 마틴 마르지엘라, 패션계의 영원한 악동이자 천재 알렉산더 맥퀸, 그 외 릭 오웬스, 헬 무트랭, 후세인 샬라얀, 앤 드뮐미스터. 이 디자이너들은 또 다른 수식어로 불립니다. 바로 '해체주의 디자이너'입니다. 패션에서 아방가르드는 해체주의로 설명이 됩니다. 패션의 해체주의는 간단히 말하자면 '기존 패션의 규칙과 질서를 박살 낸 것'입니다.



패션에서 아방가르드는 해체주의다

패션에서 해체라는 단어는 1989년 디테일즈라는 잡지에서 처음 언급되었고, 뉴욕에서 1993년에 옷에서의 해체주의를 이론화하였습니다.(해체는 철학자 자끄 데리다가 만들었습니다. 철학에서 해체도 '정통에 대한 반기'를 지닌 단어입니다. 하지만 철학에서 해체는 생략하고 얘기할게요.) 옷에서의 해체는 옷의 겉과 속을 뒤집거나 일부로 찢는 등 옷을 만드는 기존 질서에 혼란을 주고 고정관념을 전복시키는 일입니다. 해체주의의 시작을 알린 디자이너 레이가와 쿠보로 잠깐 패션에서 해체주의를 보여줄게요. 꼼데가르송을 만든 레이 가와쿠보는 해체주의의 대모라고 불립니다. 그녀는 1980년대에 파리로 건너가 서양 패션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일본 전통 옷의 평면적 디자인을 가져와 옷은 몸에 잘 맞아야 한다는 서구가 정의한 미를 찢고 파괴적인 이미지의 옷을 만들었습니다. 1982년 가을/겨울 컬렉션에 등장한 구멍이 송송 나고 찢어진 스웨터(일명 레이스 스웨터)는 옷의 파괴를 보여주는 해체주의 패션의 증거로 볼 수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옷을 찢고 구멍을 내며 훼손시킴으로써 몸을 가리고 동시에 드러내는 양면성으로 미적 고정관념을 전복시키고, 의복은 신체를 덮고 새옷이어야 한다는 기본 개념을 부시며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레이가와 쿠보의 레이스 스웨터. 일부로 다 찢고 옷에 혼란을 주었다는...




해체주의의 대명사, 마틴 마르지엘라

레이가와 쿠보가 못지 않게 아방가르드, 해체주의 디자이너로 유명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매종 마틴 마르지엘라를 만든 마틴 마르지엘라 입니다. 레이가와 쿠보가 해체주의의 대모라면 마틴 마르지엘라는 해체주의의 대명사입니다. 1980년 초반 일본 디자이너 레이가와 쿠보, 이세이 미야케, 요지야마 모토가 해체주의를 먼저 선보이긴 했지만 패션계에서 1989년 10월 파리에서 마틴 마르지엘라가 선보인 1990년도 S/S 컬렉션에서 해체주의가 논의되었습니다. 벨기에 출신인 마틴 마르지엘라는 "모든 확실한 것에 의구심을 가지고, 예상치 못한 것을 예상하며, 아무도 밟지 않는 길을 간다"라는 모토를 갖고 패션계에서 독보적인 행보를 걸어왔습니다. 현대 패션에서 가장 아방가르드한 디자이너로 뽑히는 그는 패션 역사에서 이례적인 작품들을 만들었습니다. 솔기가 노출된 재킷과 청바지, 버려진 것들 혹은 의복 소재가 아닌 것들로 만든 옷, 신체를 덮고도 남는 재킷과 셔츠 등 옷을 일부러 망가트리거나 옷의 구조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며 새로운 옷들을 만들었죠. 마틴 마르지엘라의 작품들은 대중에게 충격을 주었고 많은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가 “지금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마르지엘라의 영향을 받습니다.(Anybody who’s aware of what life is in a contemporary world is influenced by Margiela.)”라고 할 정도로 마틴 마르지엘라가 보여준 해체주의 패션은 여러 디자이너 컬렉션에서 종종 보였고 현재는 길거리에서도 보이고 있습니다. 마틴 마르지엘라가 해체주의로 무엇을 박살 냈는지 브랜드 매종 마틴 마르지엘라에서 은퇴하기 전까지 작품들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디자이너 마틴 마르지엘라. 훤칠하고 잘생긴 사람.


마틴 마르지엘라가 옷에서 박살 낸 3가지

소재를 박살

버려진 스키장갑, 셔틀콕, 가발 등 버려지고 기존 옷감이 아닌 새로운 소재로 옷을 만든 마틴 마르지엘라. 정말 대단한 발상입니다.


매종 마틴 마르지엘라는 빈티지 의류 및 원단, 볼펜 뚜껑, 페이퍼 타월, 운동화 끈, 플라스틱, 금속, 종이, 부채, 병뚜껑, 트럼프 카드, 비닐 백, 풍선, 빗, 커튼 등 다양한 소재로 원피스, 재킷, 블루종, 탑, 볼레로, 팬츠, 부츠까지 많은 의복 아이템으로 재탄생 시켰습니다. 왼쪽의 옷은 매종 마틴 마르지엘라 2006 A/W artisanal collection의 스키 장갑 재킷입니다. artisanal collection(수공예 컬렉션, 일명 '0'라인)은 매종 마틴 마르지엘라에서 가장 전위적인 디자인이 돋보이는 컬렉션입니다. artisanal collection에서는 대부분 기존의 것들을 해체하여 다시 재조립하여 만든 옷, 버려진 것들을 재활용하고 혼합하여 옷이 등장합니다. 마틴 마르지엘라는 위의 옷들처럼 버려진 스키 장갑 재킷, 셔틀콕 드레스, 가발 재킷을 만들어 옷감으로 쓰이지 않는 것들을 사용하여 옷을 만들었죠. 마틴 마르지엘라는 기존의 소재를 사용하는 고정관념을 부시고 버려진 것들, 새로운 것들로 옷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구조를 박살

옷을 해체하고 늘리고 재조립하여 만든 옷들

매종 마틴 마르지엘라는 의복을 해체하고 그대로 내버려두거나 해체한 옷을 재구성을 통해 기존 옷의 구조에서 벗어난 옷들을 만들었습니다. 좌측 사진처럼 잘 만든 재킷 오른쪽 어깨와 진동 둘레를 해체하여 신체가 옷을 뚫고 나오게 했습니다. 해체된 어깨와 진동 둘레의 솔기는 마감처리를 하지 않고 그대로 노출이 되었죠. 가운데 사진은 2000 S/S collection인 'Size 74'에 나온 옷입니다. 마틴 마르지엘라는 일반적인 옷 사이즈에 의문을 품고 옷을 플러스 사이즈로 만들었습니다. 옷의 구조는 신체에 맞게 만들어지는데 옷의 구조를 확대하여 옷을 탈신체화시켰죠. 오른쪽 사진은 청바지를 해체하고 디테일 디자인들을 패치워크로 작업 하였습니다. 청바지 앞부분이 넥라인에 있거나 하의에 거꾸로 덧대어 있는 것처럼 옷을 찢고 재구성하여 새로운 형태의 상의와 하의를 만들었죠.



미를 박살

옷감이 썩고 곰팡이 생기는 것은 알지만, 일부로 옷을 썩게 만드는 발상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과연 누가 자신이 만든 옷에 박테리아를 뿌려 일부러 부패하게 만들까요? 매종 마틴 마르지엘라는 자신이 만든 옷들을 썩게 만들고 그 옷들을 전시하여 세상을 놀라게했습니다. 그는 1997년 네덜란드 로테르담 보이만스 반 뵈니겐 미술관에서 '9/4/1615'라는 특수한 전시를 열었습니다. 전시전 이름의 '9'는 1989 S/S부터 1997 F/W에 등장한 18개의 작품이 등장한 컬렉션 횟수, '4'는 박테리아를 배양시킨 시간, '1615'는 전시 총시간을 의미합니다. 매종 마틴 마르지엘라는 옷에 곰팡이와 박테리아, 효모를 뿌려 누추함, 더러움, 부패 등 옷이 낡는 과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옷을 고의적으로 낡게 만듦으로써 고정된 미의식을 거부하고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었습니다. 이 전시에서 마틴 마르지엘라는 아름다움이 절대적인 미가 아니고 패션에서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다는 메세지와 낡은 것도 새로운 것이라는 역설을 보여주었습니다. 옷을 해체하고 재구성하거나 마감처리를 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는 파괴 작업을 반복하면서 매종 마틴 마르지엘라는 정통 미의식에서 탈피하고자 하였습니다.



마틴 마르지엘라가 옷 이외 패션의 관습을 해체한 것들

매종 마틴 마르지엘라는 옷 이외에 아방가르드한 작업을 실천했습니다. 좌측 사진은 2009 S/S collection 사진입니다. 모델 얼굴에 가림막을 씌워 시각적으로 혼란을 주고 모델이 아닌 옷을 강조하는 효과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진짜 옷이 아닌 옷이 그려진 천을 입고 옷을 입은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전위적인 런웨이 방식을 진행했습니다. 오른쪽 사진은 1998 S/S collection으로 흰색 가운을 입은 남자가 모델 없는 옷만 들고 런웨이에 등장한 사진입니다. 패션쇼에 모델이 있어야 하고 모델이 옷을 입고 나와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탈피하면서 새로운 패션쇼를 진행했죠. 위 두 사례 이외에도 전위적인 행보는 다양합니다. 브랜드 네임택에 브랜드 네임 없이 흰색택만 있다는 것, 브랜드를 대표하는 모델(뮤즈)이 없다는 것, 갖춰진 패션쇼장이 아닌 공터에서 패션쇼를 했다는 것. 나열을 하자면 무수히 많습니다. 그만큼 마틴 마르지엘라는 현대에서 가장 아방가르드한 패션 디자이너 중 한명입니다.

모델 얼굴이 없거나, 모델 없이 옷걸이로 런웨이 하거나. 



아방가르드. 너무 앞서 나갔거나, 미래에서 왔거나

아방가르드한 옷은 마르셸 뒤샹의 변기처럼 기성을 거부한 만큼 대중에게 거부당하기 쉽습니다. 예술성과 독창성이 강해서 비실용적이고 입지 못해 대중에게 외면당하죠.(아이러니한 건 마르지엘라는 항상 옷은 실용적인 공예라고 했습니다) 입지 못하는 옷은 자연스럽게 소외되고 사라집니다. 누가 박테리아 재킷, 붕대 스커트, 셔틀콕 드레스를 입고 거리로 나서겠습니까. Size 74 컬렉션인 빅사이즈 옷도 당시에는 무시당했습니다. 오트 쿠튀르가 아닌 기성복 컬렉션이었는데도 대중은 불편하고 실용적이지 못한 빅사이즈 옷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는 빅사이즈 옷이 유행입니다. 아방가르드하고 실험적인 옷을 만드는 베트멍의 수장 '뎀나 즈바살리아'가 90년대 스트릿 무드를 곁들인 빅사이즈 옷을 만들고 거리를 지배했죠. 베트멍의 2014년 F/W부터 시작으로 유명 셀럽들이 팔과 다리를 덮는 거대한 항공점퍼를 입고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일반 사람들도 오버사이즈 후드티와 셔츠, 아빠 재킷 같은 커다란 재킷, 통이 큰 바지를 입고 다닙니다. 또한, 찢어진 청바지(디스트로이드 진)와 바지 밑단을 컷팅하고 마감처리를 안 해 올이 풀린 청바지(컷팅진)도 길거리에서 쉽게 보입니다. 마틴 마르지엘라가 빅 사이즈 옷과 솔기가 노출되고 마감처리가 안된 옷을 만들었을 때와 대우가 다르죠. 아방가르 유래처럼 너무 앞서 나간 것일까요? 아니면 미래에서 온 것일까요?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방가르드 패션은 '패션의 파이를 넓히는 기능'이 있는 건 확실합니다. 옷을 파괴하고 망가트리고 해체했기 때문에 틀에 갇혔던 패션이 몸집을 키운거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드는 패션이 고정관념이 있는 게 아이러니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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