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질서] by. 뤼디거 달케
태초의 원칙은 삶에서 결코, 완전히 몰아낼 수 없다. (본문 중)
왜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무언가를 결심해도 왜 작심삼일에 그치고 마는 걸까. <보이지 않는 질서>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인간과 세상을 움직이는 근본적인 법칙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말하는 질서는, 단일성, 대립성, 공명성이다. 모든 존재가 원자로 구성되어 있듯, 우리 역시 결국 하나로 통하는 단일성을 지닌다. 그로부터 음과 양, 남성과 여성 등 대립성이 파생되고, 결혼처럼 양립이 조화를 이루는 공명성이 뒤따른다. 저자는 대립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과 공명할 때, 시작과 끝을 이루는 단일성에 이를 수 있으며, 그때에 온전한 자신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점점 혐오와 극단으로 치닫는 오늘의 시대에, 이러한 통찰은 현대인들에게 깊은 깨달음의 계기를 제공한다.
결국 같은 곳으로 돌아갈 우리
책을 읽으며 딴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지금 우리가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모든 대립성이 사실 하나의 단일성에서 출발했다는 지점이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다.
현재 우리는 수많은 갈등과 반목의 한가운데에서 살고 있다. 인종과 젠더, 세대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같은 지구에서 살아가는 운명 공동체임에도, 왜 우리는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며 경계를 해야만 하는 걸까.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어쩌면 효율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점점 더 전문화되어 온 세상의 흐름 역시 한몫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 본다. 대학 교육은 학과로 세분화되고, 전문성은 하나의 영역 안에서만 깊어진다. 효율의 극치인 분업은 각 개인의 사유를 막은 채 그저 맡은 역할에만 집중하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조차 알기 어렵게 한다. 여기에 개인주의가 더해진 현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고 지금껏 이룩한 문명을 다 내팽개치고 원시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가 말했듯,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타인과 세상 속 대립성들 역시 결국 ‘하나’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건 아닐까.
눈에 보이는 세계는 모두 다르고 낯설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꾸만 자신 안으로 숨어들고 싶어진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이 있다. 우리는 지금도 지구가 내어준 산소를 사이좋게 나눠 마시며 숨 쉬고 있고, 생의 마지막에는 산소를 내어준 나무뿌리 아래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결국 돌고 돌아 우리가 하나임을 안다면, 그 감춰진 진실에 동의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여유로워진 마음으로 서로를 대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깨달음을 마음속 깊이 새기며, 오늘도 집을 나서기 전 다짐해 본다. 지금을 살아갈 수 있음은 수많은 생명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