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집

정보라의《아이들의 집》을 읽고

by 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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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림원에서 출간된 책들의 독특하고도 아름다운 표지 디자인을 좋아한다. 이번《아이들의 집》역시 가상의 세계로 빨려가는 듯한 몽환적인 표지에 흥미를 가지고 책을 펼쳤다. 소설집 《저주토끼》,《너의 유토피아》로 세계 문학계에 이름을 알리고, 한국 장르 문학의 새 지평을 여는 대표 작가로서 주목받아온 정보라 작가가 25년 5월, SF 스릴러 장편 소설 《아이들의 집》으로 돌아왔다. 작가가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농성을 보고 충격받아 쓰게 됐다는 《아이들의 집》은 국가와 공동체가 아이의 돌봄과 양육에 의무와 책임을 지는 가상의 세계를 통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대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주인공 무정형이 사는 나라에는 '아이들의 집'이라는 제도가 있다. 기본적으로 모든 아동의 양육을 일정 부분 국가가 책임지는 제도다.(95p) 부모의 존재여부나 가정의 상황과는 관계없이, 아이가 원한다면 언제든 아이들의 집에서 지낼 수 있다. 부모가 아프거나, 아이를 돌볼 여력이 안될 때도 아이를 아이들의 집에 맡기면 되었고, 아이가 집으로 돌아가길 원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부모라도 억지로 데려갈 수는 없었다. 아이들의 집에는 원통형 로봇과 양육선생님들이 상주하며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어느 날, 거주환경관리자인 무정형이 담당하는 집에서 아동학대로 의심되는 아동 사망 사건이 발생한다. 반쯤 미쳐있는 어머니와 미라가 되어버린 아이 '색종이', 그리고 그 집에서 무정형이 마주친 귀신의 존재까지. 진실에 다가갈수록 흩어진 퍼즐조각이 짜 맞춰지듯 현실의 이면이 낱낱이 드러난다.


이 소설은 두 가지 핵심 주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기술발전의 명과 암

소설은 로봇과 일상생활을 함께하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진행된다. '기술과학의 발전을 지지한다'(이하 기과발지)라는 단체도 등장하는데 이들은 남성의 체세포를 생식세포로 바꾸는 기술과 인공 자궁을 전면 활용하여 여성의 개입 없이도 아이를 출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렇게 태어난 아이가 자궁을 빌려서 태어나는 '자연적인' 아이보다 우월하다고까지 말한다.(49p)

또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등장한 '입는 로봇'에 대한 논쟁도 등장한다. 이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뇌파로 기계 팔다리를 움직여 촉감도 느끼고, 실제 본인의 신체처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뇌에서 기계로, 기계에서 뇌로 전파를 양방향으로 전달한다는 것은 곧, 기계가 움직이는 대로 인간이 움직여진다는 위험성도 내포한다. 실제로 기계를 사용했던 무정형의 어머니는 제멋대로 움직이는 기계에 결국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고, 휴대폰을 포함한 모든 기술을 극도로 거부하고 두려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외에도 제조사가 로봇청소기 같은 기계를 통해 실제 이용자의 데이터를 얻는 과정에서 이용자의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누워있는 아기의 얼굴, 집안의 구조 등 모든 데이터가 적나라하게 기록되고 공유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작가는 기술발전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윤리적 문제와 인간존엄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동시에 작가는 기술발전의 명을 제시한다. 시민으로서 아동 돌봄 의무를 다하기 위해 '아이들의 집'에서 양육을 돕고 있던 무정형은 원통형 로봇 '앨리스'를 만난다. 잔소리가 많은 로봇이었지만, 앨리스는 늘 아이들의 곁에서 그들을 지키는 존재이자, 비밀 이야기를 기꺼이 들어주고 지켜주는 존재였다. 훗날 아이들을 해하려는 외부침입자로부터 망치로 두들겨 맞으면서도 앨리스는 아이들을, 그리고 '아이들의 집'을 지키고자 했다. 수리가 끝난 앨리스를 다시 만난 무정형은 앨리스를 이렇게 설명한다. 원통형 로봇이 잔소리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똑같이 생긴 다른 로봇이 아니었다. 무정형의 숙적, 잔소리 대마왕 앨리스였다.(90p) 모두 똑같은 원통형 로봇처럼 보이지만, 인간과 관계를 맺고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 자아를 가진다는 것이다. 소설에 나오는 인공 자궁, 입는 로봇, 양육 로봇 등 모두 아직 상용화되지는 않았지만 가까운 미래에 충분히 만나게 될 기술들이다. 작가는 미래를 그리고 있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기술발전의 명과 암을 전하고 있다. 이처럼 기술의 양면성을 그려낸 후, 작가는 결국 그 기술이 보호해야 할 대상, 여기서는 '아이'에 집중한다. 두 번째로 부각되는 주제는 바로 아이들의 돌봄 받을 권리다.


아이들의 돌봄 받을 권리

"귀신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에요.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거예요."(125-126p) 귀신을 본 무정형이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해 내뱉은 말이었지만, 결국 그녀의 말대로 가장 무서운 존재는 인간이었다. 아동학대로 사망한 '삼각형'부터, 개인의 욕망과 단체의 이익을 위해 희생된 여성과 그녀의 아이 '솜', 그리고 경찰의 개입으로 강제로 부모와 떨어져 해외로 입양된 '관'까지. 모두 인간의 욕심으로부터 비롯된 일이었다. 더욱 무서운 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인간의 욕심은 늘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무정형이 주거환경 조사관이 되어 처음 점검을 하게 되었을 때, 선배들은 어린 후배를 놀려주기 위해 귀신이 나온다는 흉가로 데려간다. 나중에 무정형은 그곳이 아동학대 피해자들을 분리해서 가둬 놓고, 강제 노동을 시키고 학대를 일삼았던 감옥과도 같은 곳임을 듣게 된다. 이 사건은 산 너머로 겨우 도망친 아이들이 경찰에 신고해서 밝혀졌지만, 과연 이 세상에 밝혀지지 않은 사건은 얼마나 될까. 지금 이 순간도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고 있는 피해자들은 얼마나 될까.

이토록 어두운 현실에서 아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작가는 '아이들의 집'이라는 가상 세계를 만들었다. 소설에서 계속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이들의 돌봄 받을 권리이다. 시민은 누구나 한 달에 하루, 돌봄 의무를 이행해야 하며(13p) 아이들의 집과 지역 교육청, 교육가족부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모든 돌봄은 국가와 공동체의 책임이다'라는 철학에 기초하여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기 때문에 이름부터 '아이들의 집'인 것이다.(89p)


가장 인상 깊은 구절은, 무정형의 목소리로 작가가 전하는 '아이들의 집'의 의미이다. 제목에도 사용될 만큼 '아이들의 집'은 소설의 핵심 배경이자, 작가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상상한 세계다. 그 존재의미를 이해한 순간, 이 소설이 품고 있는 가치를 비로소 실감하게 된다. 이 책은 작가의 연대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부모가 없어도, 부모가 다쳐도, 부모가 아파도, 부모가 가난해도, 부모가 신뢰할 수 없는 인격을 가졌거나 범죄자라도, 아이들은 그런 부모와 아무 상관없이 자라날 수 있었다. 아이의 삶은 아이의 것이었다. 혈연이 있는 가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기쁜 일이고 행운이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면 슬픈 일이지만, 가족의 불운이 아이의 인생 전체를 지배할 필요는 없었다. 돌봄을 받으며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은 모든 아이가 가진 고유의 권리였다. 아이들의 집에서 아이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면서 어른이 되었다. 아이들의 집은 어른들의 집이기도 했다.(178-179p)


언젠가 대학교의 교양 과목 수강 중, 교수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 떠오른다. "유토피아에 대한 논의는 중요하다. 설령 유토피아란 존재할 수 없을지라도, 끊임없이 그것이 어떤 모습일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고민해 보고 나누어야 한다." 즉 현실에는 없는 이상적인 세계를 상상함으로써 현실에서 더 나은 대안을 고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상상해야 하는 이유이며, 그 상상의 역할을 오늘날의 문학과 작가들이 해내고 있다. 즉 작가는 곧 시인이며, 공상가이자, 더 큰 현실에서의 현실주의자인 셈이다. 정보라 작가 역시 “좀 더 안전하고 평온한 사회를 상상하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국가가 아이를 책임지지 않는 현실에서, 아이는 버려지고 팔려나간다. 그러나 소설 속에는 아이를 돌보려는 기관이 있고, 로봇이 있고, 어른이 있다. 그곳이 바로 ‘아이들의 집’이다. 이 집의 존재 의미를 이해하고 나면, 비로소 이 소설의 가치가 더욱 분명해진다. 아이들을 향한 연대를 바탕으로 '아이들의 집'에 대해 상상하고, 그것을 문학적으로 풀어낸 작가의 노력 덕분에 더 나은 현실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물론 현실 고발과 스릴러 장르 사이의 균형이 완전히 매끄럽지는 않다. 초반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귀신'의 존재가 서사가 진행되며 큰 역할 없이 퇴장하는 점은 독자로서 다소 허무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가상의 세계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가능성을 품고 있다. 아이가 언제든 갈 수 있는 집, 어른도 머물 수 있는 집을 상상하게 하는 이 소설은, 오늘날 문학이 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역할을 보여준다. 사회적 약자와 돌봄의 문제에 관심 있는 독자, 문학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고 싶은 이들에게 특히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 연령을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울림을 줄 수 있는 소설이다.




서평을 쓰고 나서

앞선 글에서 ChatGPT에게 서평 쓰는 법을 물어보았고, 그때 배운 세 문단의 서평 구조에 따라 첫 서평을 써보았다. 막상 글을 쓰며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의외로 '내용 요약'이었다. 3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야기를 단 한 문단에 담으려니 섣불리 시작조차 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장별로 다시 책을 읽으며 핵심 문장과 줄거리를 정리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요약 문장을 다듬고, 최종적으로 한 문단으로 압축하는 과정을 거쳤다. 책에 대한 나만의 관점과 감정이 가장 생생할 때는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직후라는 것도 이번 경험을 통해 새삼 느꼈다.

다음 서평을 쓸 땐 책을 읽는 동안에도 장마다 내용을 요약하고, 인상 깊은 문장을 메모해 두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나의 감상과 생각을 더 정확하게, 더 생생하게 기록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권 한 권을 다르게 읽고, 다르게 써 내려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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