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우정에는 어떤 역사가 담겨 있나요?

어른이 되어 배우는 인간관계

by 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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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땐 그냥 같은 학교에 같은 반이라는 이유로 어울리고 친해지잖아요. 다들 그렇게 하고, 집단에 있으려면 그래야만 하니까..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자아가 생기고, 취향, 가치관이 확고해지면 관계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단순히 오래 만났다고 더 편하거나 친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알고 지낸 시간이 길지 않다고 해서 깊이가 없는 것도 아니고."

이 문장은 네이버 웹툰 '도무지 그 애는'에 나오는 대사다. 어릴 적부터 나를 스쳐 지나간 수많은 인간관계와 어른이 된 지금 내 곁에 남은 친구들을 돌아보며, 이 말에 깊이 공감했다.






1.

그렇다. 어릴 땐 같은 반, 같은 학원, 같은 아파트 등 공통점이 하나만 있어도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개인의 취향과 가치관이 확고해지는 것은 물론, 각자 처한 상황과 주변 환경이 달라진다. 그렇게 자연스레 인간관계가 정리되고, 남을 사람과 떠나갈 사람이 정해진다고들 한다. 나 역시, 지금 내 곁에 남은 이들을 떠올려 본다. 한때 가장 친했던 친구와는 연락도 하지 않는 남이 되었고, 안 맞는다고 생각했던 친구와는 꾸준히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어쩌다가 이들은 나와 친구가 되었을까? 왜 이 인연은 스쳐 지나가지 않고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걸까? 어른이 된 지금 내 인간관계를 돌아보고, 친구들과 함께해 온 우정의 시간을 적어보려 한다. 이 글을 읽는 이들도 자신 곁에 있는 사람들을 천천히 돌아보며, 우정의 역사를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2.

가장 오래된 우정은 중학교 동창들과의 것이다. 당시 우리의 우정이 끈끈했던 이유는 '짝사랑'이라는 공통 관심사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 사랑이 이루어지고 말고는 크게 중요치 않았다. 그저 좋아하는 상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영원히 떠들 수 있을 것처럼 굴며, 10대의 진한 우정을 나눌 수 있었다. 그 시절 13명까지 늘어났던 우리의 모임은 각기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하며 자연스레 사이가 멀어졌고, 지금은 4명이 되어 또 새로운 우정을 쌓고 있다. 처음부터 13명이 모두 마음이 맞아 친해진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당연히 같이 있어도 그중 더 친한 친구와 어색한 친구가 있었고, 서로 마음 상하는 일도 있었다. 13명이 4명이 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지만, 그렇다고 당연한 일은 아니었음을 안다. 우리 4명이 긴 시간 동안 편한 친구 사이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중학교 졸업 후에도 꾸준히 연락을 해오며, 각자 다른 학교에 갔음에도 넷이 모일 수 있도록 먼저 약속을 잡아준 한 친구 덕분이다.



3.

고등학교에서는 4인 1실 기숙사 생활을 했다. 처음으로 집에서 나와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대학교 입시까지 준비하던 그 3년이 내게는 몸과 마음이 약해진 시기였다. 자신감이 떨어졌고, 타인과 쉽게 비교하며 자책했다. 하지만 그런 3년 중에도 즐거웠던 순간들이 있다. 그때 그 순간을 함께했던 친구들과 지금까지도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성인들도 같이 여행을 가면 서로의 몰랐던 점을 알게 되고, 안 맞는다고 생각되는 지점들을 발견한다. 몸도 마음도 예민하던 그때, 우리는 몇 개월 간 방 한 칸에서 함께 지내야 했다. 당연히 그때의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물론 함께 있으면 즐거웠지만, 생활패턴이나 휴식방법처럼 서로 다른 점들이 있었기에 거기서 오는 미움의 감정이 있었다. 그때 우리가 지닌 공통점은 '배려'였다. 바로 그 배려가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우리를 이어주고 있다. 분명 서로 불편한 점이 있었을 텐데 우리는 그저 참았다. 그게 배려라고 여겼고, 우정을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고, 한때 매일같이 보던 이들을 이제 더 이상 자주 볼 수는 없지만 볼 때마다 이들과 더 가까워짐을 느낀다. 투박했던 그 시절의 관계가 해를 거듭하며 잘 다듬어지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이제 우리에겐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수용할 능숙함이 있다. 나는 앞으로도 나와 다른 이 친구들에 대해 배워갈 생각이다.



4.

성인이 되고, 대학교에서 처음 친구를 사귈 때는 대단한 혼란과 스트레스를 겪었다. 중고등학교에서처럼 반이 정해져 있지도 않았고, 같은 방을 억지로 쓸 필요도 없었다. 오직 내 노력만으로 친구를 만들어야 했다. 마음만 먹으면 혼자 다녀도 상관없었으나,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어서 두려웠고, 그렇게 10명 가까이 되는 친구들이 생겼다. 중고등학교 때와 가장 달랐던 점은, 보다 쉽게 인연을 끊어냈다는 것. 중고등학교 때는 서로 서운한 게 있어도 졸업할 때까지는 얼굴을 봐야 하니 참는 일이 대부분이었는데, 대학교에 오자 마음 맞지 않는 친구들끼리는 쉽게 등을 돌리고 서로를 떠나갔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는 3명이 되었다. '어쩌다 우리 셋이 남았을까?' 생각해 보면, 우리는 닮은 구석이 많았다. 완벽주의자 성향이 있어서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것도, 일을 곧잘 미루는 것도, 하지만 언젠가는 해낼 거라는 근거 없는 자기 확신도.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해 주는,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구석이 있는 이들에게 편안함을 느꼈던 것 같다. 처음 대학교에 입학할 당시, 주변에서 성인이 돼서는 진정한 친구를 사귀기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따지고 잴 것들이 많아서 진정으로 속내를 보여줄 친구를 찾기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대학교 때 만난 친구들이 가장 나와 닮아있고, 그렇기에 이들에게는 내 모습을 숨김없이 꺼내 보일 수 있다. 오래 만난 친구일수록 편하다거나 친하다거나 하는 말은 틀렸다는 것을 이들과의 관계에서 배웠다. 인간관계에서 시간은 깊이를 결정짓는 요소가 아니다.



5.

돌이켜보니, 성인이 되어 만난 관계일수록 나와 닮은 구석이 많다. '성인이 되어서는 진정한 친구를 만날 수 없다'는 말이 어떤 말인지는 어렴풋이 이해가 된다. 나와 잘 맞을 것 같은지 검열하지 않고도, 단순히 매일 본다는 이유만으로도 우정을 나눴던 시기는 어린 시절에서 멈췄으니까. 그러나, 성인이 되어 이런저런 조건을 따져가면서 직접 선택하고 유지해 온 이 관계가 어쩌면 더 대단한 것이 아닌가 싶다. 앞서 말했듯 알고 지낸 기간은 전혀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모두가 노력 중이라는 것이다. 먼저 만나자고 연락하는 일, 날짜와 시간을 조율하는 일이 생각보다 번거롭다는 걸 우리는 안다. 지금이야 서로가 너무 편해져서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이렇게 관계가 진전되기까지 분명히 어색하고 낯선 시기가 있었을 것이다. 그 시기에도, 그리고 지금도, 한결같이 먼저 손 내밀어주고 배려해 준 친구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정이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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