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아이작슨, '일론 머스크'
월터 아이작슨은 그의 저서 서두에서 일론 머스크를 ‘멀리서 보면 훌륭하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문제가 많은 사람’으로 정의한다. 이 한 문장은 스티브 잡스 이후 세상을 가장 극적으로 바꾸고 있는 이 혁신가의 본질을 관통한다. 그는 전기차의 시대를 열었고, 민간 우주 탐사의 문을 활짝 열었으며, 인공지능의 미래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예측 불가능한 언행으로 시장을 혼란에 빠뜨리고, 직원들을 잔인하게 대하며, 심지어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까지 깊은 상처를 주는 인물이다. 여기서 우리는 핵심적인 질문에 도달한다. 인류를 화성으로 보내려는 그의 위대한 추진력과, 파괴적인 그의 본능은 과연 분리될 수 있는 것인가? 아이작슨이 집요하게 파고드는 진실은 ‘아니요’에 가깝다. 그의 천재성과 악마성은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의 뿌리에서 자라난 두 개의 줄기다.
머스크의 성공을 이끈 ‘올인’ 방식의 추진력은 ‘광적인 긴박감’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그는 불가능해 보이는 마감 시한을 설정하고, 물리적 한계를 무시하며 팀을 한계까지 몰아붙인다. 2018년, 월스트리트가 주당 5,000대의 모델 3 생산은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렸을 때, 그는 공장 주차장에 거대한 텐트를 짓고 2주 만에 새로운 생산 라인을 만들어 목표를 달성했다. 이는 그의 방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러한 집요함은 원가 절감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엔진 노즐 작동기에 경쟁사가 12만 달러를 제시하자, 그는 엔지니어에게 5,000달러에 만들라고 지시했다. 모든 것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본질부터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그의 방식은 스페이스 X와 테슬라를 지금의 자리에 올려놓은 핵심 동력이었다.
그러나 이 눈부신 성공의 이면에는 깊은 어둠이 자리한다. 그의 ‘광적인 긴박감’은 주변 사람들에게는 공포와 불안의 원천이 된다. 책에서 그의 최측근인 그윈 숏웰은 머스크의 공감 능력 부재를 정확히 꿰뚫어 본다.
“일론은 다른 사람의 성격을 잘 이해하지만, 그건 느낌으로 아는 게 아니라 공부해서 이해하는 겁니다. 그는 자신이 하는 말이 상대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는 그저 임무를 완수하고 싶을 뿐인 거죠.”
이러한 특성은 그의 커리어 초창기부터 명확하게 드러났다.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 피터 틸은 머스크와 함께 그의 맥라렌 슈퍼카를 타고 가던 일화를 떠올린다. 틸이 차의 장점을 묻자, 머스크는 “한번 보시죠”라고 말하며 전속력으로 질주했고, 결국 차가 공중으로 날아 박살이 났다. 이 아찔한 순간에 머스크는 웃으며 말했다. “적어도 내가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틸에게 보여준 거죠.” 틸은 이때 그가 ‘좀 미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회고한다. 목표를 위해서라면 물리적 위험마저도 게임처럼 여기는 그의 성향은, 훗날 직원들의 감정이나 안위를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는 태도로 이어진다.
이 두 가지 특성이 분리될 수 없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그의 유년 시절, 특히 아버지 에롤 머스크와의 관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머스크는 아버지를 ‘악마’라고 표현하며, 그와 함께한 삶이 자신을 극도로 불안하게 만들었다고 고백한다.
“모든 것이 훌륭할 때조차 1초 안에 사악한 모습으로 변해 욕설을 퍼붓곤 했다. 떠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몇 달 안에 돌아오게 될 거다. 넌 결코 성공하지 못할 거야.’라며 경멸적으로 말했다.”
이런 극심한 정신적 학대 속에서 머스크는 생존을 위해 감정의 수용기를 닫고, 세상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극단적인 리스크를 감수하는 법을 배웠다. 그의 ‘악마 모드’는 아버지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생존 본능이었고, 이 본능은 훗날 비즈니스 세계에서 경쟁자들과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즉, 그의 잔인함과 무모함은 그의 강인함과 회복탄력성의 원천과 정확히 일치한다. 하나를 제거하면 다른 하나도 함께 사라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러한 공감 능력의 부재는 비즈니스 현장을 넘어, 그의 가장 가까운 관계인 가족에게까지 파고들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의 트랜스젠더 딸은 18살이 되자마자 법적으로 아버지와 의절하며 이렇게 밝혔다.
“저는 더 이상 생물학적 아버지와 어떤 방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싶지 않습니다.”
또한, 연인이었던 그라임스는 머스크가 자신의 동료였던 시본 질리스와 비밀리에 쌍둥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이 전기를 통해 처음 알고 분노했다.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며 거시적인 목표에 집착하는 동안, 그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감정을 살피는 데에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이는 그의 ‘악마 모드’가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가리지 않고 발현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리 같은 투자자는 대체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까? 그 힌트를 책에서 찾을 수 있다.
“머스크에 대한 핵심적인 질문, 즉 그를 성공으로 이끈 ‘올인’ 방식의 추진력과 그의 나쁜 행동 방식이 분리될 수 있는지 여부를 놓고도 고민한다. 성취를 위해 세상 사람들이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진짜 개자식을 리더로 삼아야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 수도 있겠지요.”
엄청난 투자 성과를 올리기 위한 대가가, 조울증 환자 같은 CEO를 견뎌내야 하는 것일 수 있다. 천재적인 혁신가의 단점은 장점과 분리할 수 없는 요인이며, 투자자는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의 말은 이 딜레마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만약 내가 애플을 경영했더라면, 매킨토시 같은 것은 결코 만들어내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는 머스크에 대해서도 유사한 질문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만약 그가 그토록 괴팍하고 공감 능력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과연 우리를 전기차의 미래로, 그리고 화성으로 인도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머스크 자신도, 그리고 그의 곁을 지키는 투자자들도 이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2019년 테슬라 연례 총회에서, 한 청중이 그의 자율주행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지적하자 머스크는 웃으며 답했다.
“네, 제가 때때로 시간 프레임에 대해 너무 낙관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낙관적이지 않다면 과연 이 일을 하고 있을까요?”
청중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들은 그 농담에 공감했고, 그의 단점과 장점이 한 몸이라는 것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머스크의 단점은 장점과 연결되어 있어 분리할 수 없다. 마치 옷감과 같아서, 천 전체를 풀지 않고 어두운 실만 쏙 빼내는 건 불가능하다. 셰익피어가 말했듯이, 모든 영웅은 결점을 가지고 있고, 가장 훌륭한 사람조차도 "결점으로 주조됩니다." 한번 생각해 보라. 어떤 서른두 살짜리가 GM과 포드, 나사와 전부 맞서 싸울 생각을 할까? 화성에 인류를 이주시키겠다며 개인 돈을 쏟아붓는 사람이, 과장된 트윗으로 발생할 주주들의 단기적인 피해를 일일이 걱정할까? 성공한 리더는 단호하고, 낙관적이고, '아니요'라는 대답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리고 무모한 열정으로 선을 넘고 리스크를 무시하는 사람 또한 똑같은 사람이다.
만약 머스크에게 충동 조절 버튼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물론 테슬라 주가의 변동성은 줄었을 거다. 하지만 그렇게 절제된 머스크가 지금처럼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의 여과되지 않고, 과장하고, 리스크를 감수하는 성향이야말로 테슬라 혁신의 핵심 연료일지도 모른다.
결국, 그는 양날의 검입니다. 테슬라에 투자하려면 머스크가 양날의 검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걸 모르고 투자하면, 변동성 속에서 고점에 사고 저점에 파는 걸 반복해서 손이 피로 물들 수 있다. 하지만 알고 투자하면, 견딜 수 있다. 혹은 투자를 안 하더라도,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기로 스스로 선택한 것이니 아쉽지 않을 수 있다.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휘두를 수 있는 사람에게 내 칼을 내어드립니다." 이제 우리는 정해야 한다. 머스크의 리스크를 감수하고 그 칼을 받아 들 것인가, 아니면 조용히 내려놓을 것인가.
마지막으로 머스크 자신의 말을 들으며 글을 마친다.
“혹시 저 때문에 감정이 상한 사람이 있다면, 그저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저는 전기차를 재창조했고, 지금은 사람들을 로켓선에 태워 화성에 보내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 제가 차분하고 정상적인 친구일 거라고 생각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