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
출산을 하고 12일이 지났다. 그동안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멈춘 듯 느리게 가면서 많은 일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갑작스럽게 진행된 출산, 준비 없이 시작된 첫째 둘째와 함께한 입원 생활, 크리스마스 날 퇴원, 집 정리와 청소, 집에서의 생활 적응, 남편과의 소소한 갈등과 다툼들, 첫째 아이와 놀아주기, 신생아 생활 리듬에 맞추기, 등등. 이렇게 다사다난했던 열흘 남짓한 시간이 지나갔다. 그리고 12월 30일 월요일 아침, 이렇게 책상에 앉아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얼마 만에 찾아온 여유인가! 이 시간이 어찌나 그립던지! 너무나도 달콤한 안정감이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출산 후 부은 몸을 바라보며 우울감을 느꼈다. 글자를 읽고 쓸 시간이 없어서도 우울했던 것 같다. 신생아도 돌봐야 하고 첫째도 돌봐야 하고 식사 준비도 해야 하고 집안은 난장판이고 버릴 쓰레기들도 쌓여있고...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태였다. 신생아를 돌보느라 새벽에 잠을 못 자서 몸도 마음도 많이 예민해진 상태였다. 남편의 말 하나 행동 하나 표정 하나하나가 거슬리고 서운하고 밉고 그러기도 했다. 기분이 오락가락. 남편도 예민해져 있는 상태라 둘 사이에 잠깐 방심하면 어느 순간 폭발해 버릴 것 같은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돌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첫째의 하이톤 울음소리. 정말 어찌할 수 없는 힘듦이었다. 그럼에도 힘들다고 불평만 하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시간임을 알기에 ‘다르게’ 생각해 보려는 시도를 한다.
첫째 때와는 달리 이번 출산 후에는 몸이 많이 부었다. 일명 코끼리 다리를 장착하게 된 것. 하루 이틀 기다려도 부기가 가라앉지 않아 슬슬 걱정이 되고 이대로 부기가 빠지지 않은 채 살게 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까지 올라왔었다. 예전에 엄마가 준 다리 마사지기가 문득 떠올라 가져와 사용해 보니, 오호라 이거 효과가 있다. 엄마 감사해요. 시댁에 갔다가 돌아온 남편 손에 삼다수병에 가득한 한약이 들려 있다. 시아버님이 한나절 정성으로 손수 달이고 고아 직접 만들어주신 산후조리 한약이다. 하루 아침 점심 저녁 한 컵씩 마실 때마다 시아버님의 사랑과 정성을 고스란히 느낀다. 출산 전보다 늘었던 몸무게가 금세 줄어들고 부기도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 아버님 감사드려요. 몸이 가벼워지면서 기분도 점차 가벼워진다. 우울했던 기분도 어느새 증발해 버린다.
쑥을 먹이고 싶다고 쑥찐빵을 잔뜩 사 온 남편. 아이 맛있다. 출출했는데 하나 먹고 나니 든든하고 좋다. 남편 고마워. 둘째는 울음소리가 크지 않고 또 잘 울지를 않아서 새벽에 내가 소리를 못 듣고 잘 깨어나지 못한다. 대신 귀가 예민한 남편이 둘째 소리를 알아차리고 일어나서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도 갈아준다. 새벽에 일어나는 게 얼마나 피곤한지 알기에 감동이다. 남편 정말 고마워. 애 둘 키우는 워킹맘 친구의 반가운 안부 전화. 바쁠 텐데도 틈이 생기자 놓치지 않고 나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준다. 고마워 친구야. 퇴원은 잘했는지 카톡을 보내준 친구도, 육아가 지치고 힘들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든든한 말을 해주는 육아 선배 친구도, 산후조리에 보탬이 되라고 과일상자를 보내준 친구도, 출산 축하 선물로 현금을 보내준 친구도, 축하한다고 메시지를 보내준 여러 친구들 모두. 고마워. 연세도 있으신데 일도 많이 하셔서 피곤하실 텐데도 직접 오셔서 성게 미역국을 맛있게 끓여주신 우리 시어머님. 감사드려요. 감사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이렇게나 많다. 끝없이 줄줄이 이어진다.
건강하게 태어난 두 딸이 있다는 것, 지금 내가 살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챙기고 보살필 가족이 있다는 것, 가족들과 친구들 모두 건강하게 열심히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들이 모두 거기에 변함없이 그대로 있어준다는 것. 지금 내 곁에 있는 모든 것들과 내가 받아왔고 또 받고 있는 그 따뜻한 사랑. 모두 기적이다. 자주 상기시키려고 하지만 매번 잊어버리는 사실이다. 내가 지금 살아서 그 모든 사랑을 기억하고 그 모든 사랑에 대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 또한 기적이다. 그 모든 것이 어마어마한 기적이다.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내 마음을 채우려고 할 때마다 나를 둘러싼 기적들에 대해서 생각해 볼 일이다. 모든 것에 깃들어 있는 그 기적적인 사랑에 대해서 느껴볼 일이다. 그리고 감사할 일이다.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