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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딩퍼피 Feb 29. 2020

[서평] 시집가고 장가가고

소소한 생활사에 대한 역사 도서

시집간다. 장가간다.


이 두 마디는 우리 결혼문화에 대해 간단하면서도 잘 설명한다고 생각이 든다. 물론 2년 전에 결혼한 나는 "시집가요"라는 말을 쓰지 않았고, "결혼합니다" 말로 내 이름이 들어간 청첩장을 지인들께 전달 드렸지만 말이다. 시집을 간다라는 말은 뭔가 떠밀려가는 느낌이 있었고, 결혼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다 내가 평생 같이 살기로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표현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대부분이 알고 있지만, 전통시대에서는 혼인은 당사자가 아닌 두 집안이 맺어지는 것에 중심을 두었다. ‘시집간다.’ ‘장가간다.’라는 말의 어원은 시댁에 간다는 단어의 ‘시집’, 장인의 집을 뜻하는 ‘장가’에 기인하였다. 그러면, 신부는 시집으로 가고, 신랑은 장가로 가면 이 두 신랑신부는 어떻게 함께 살 수 있을까?(104). 이 두 모순적인 단어는 처가살이와 시집살이라는 우리나라의 생활사의 변천을 상징한다. 최근에 읽은 <시집가고 장가가고>에 따르면 신랑이 신부 집에서 사는 풍습은 성리학이 들어오기 전까지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전승되어 왔다고 한다. “며느라기”, “시월드” 등의 단어가 유행하는 요즘 처가살이의 역사는 신기하기만 하고, 과연 우리 조상들의 역사인가 내 눈을 의심하게 된다.


최근에 읽은 <시집가고 장가가고> 책은 우리나라 생활사에 대한 역사 책이다. 서울대 국사학과 송기호 교수님께서 우리 역사 교과서에서 보기 힘든 조상들의 생활사를 6권의 시리즈로 만들어 출간하였다. 이 중에서도 가족과 의식주에 관련된 <시집가고 장가가고>가 개인적 학문과 관심사에 맞아 읽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되게 생활사의 국사책인 줄 알았는데 근친혼, 조혼, 사랑과 인연(?), 동성애, 끼니, 과식, 금주령, 식인 등의 재미있는 소재로 흥미진진하게 즐겁게 읽었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우리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그중에선 나는 조혼과 식인 풍습의 눈길이 갔다.


조혼 풍습


고려 말에 문신이자 학자였던 이색은 14살에 결혼을 하였다고 한다, 그의 아내는 11살에 결혼했다고 하니 지금으로 보면 초등학교 4학년이 중학교 1학년이랑 결혼을 했다는 말이다. 혼인이 뭔지, 성(性)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잡히기도 전에 배우자를 만난 것이다. 이색은 14살에 성균시(일종의 공무원 고시)에 합격하고, 명망 있는 가문의 자녀라고 해서 최고의 신랑감(?)이라고 책에 쓰여 있으니, 아마 많은 좋은 집안에서 탐을 낸 사위였나 보다. 이 글을 읽으며, 조혼이라는 사실도 매우 놀라웠지만, 늘 그렇듯 좋은 남자는 일찍 ‘품절’된다는 사실은 시대를 넘어 통용되는 불변의 진실이라는 사실을 느낀다.


하지만, 유망한 배우자 물색(?)이 우리나라의 조혼 풍습이 원인은 아닌 듯하다. 추가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조혼 풍습을 방지하고자 꾸준히 노력해 왔다. 신하들은 고려 시대, 조선시대 불문하고 조혼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려놓았지만, 이와 달리 시대가 가면 갈수록 결혼의 평균연령이 낮아졌다고 한다. 이는 같은 시기 영국 엘리자베스 시대에 만혼이 유행했던 상황하고는 사뭇 다르다. 책에 나온 특징들을 살펴보면 조혼은 하층민보다 상류층에서, 조혼 풍습은 고려 시대에서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이루어졌다. 1930년까지 이루어졌다고 하니, 지금의 4포 시대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조혼의 배경에는 원나라의 처녀 공출을 피해 시작되었다는 말도 있지만(실제로 원나라에 딸을 보내는 가족들이 통곡을 하고 울었다고 한다), 꼭 그렇지마는 않았다는 게 책에 나온 내용이다. 하지만 명나라에서 처녀를 찾는다는 소문과, 왕실에서 세자빈을 구하기 위한 혼인 금지령은 조혼 풍습이 지속하게 만든 원인이었던 것은 자명해 보인다. 딸을 결혼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결혼을 시키는 아이러니한 역사이다.


기근과 식인 풍습


하지만, 이 책이 “혼인”에만 초점을 맞추지는 않는다. 이 책의 부재는 “가족과 의식주”로 의식주에 대한 부분이 설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우리나라의 슬픈 기근의 역사가 설명되어 있고, 식인의 문화도 소개되는 있어 나눠본다. 우리 조상들이 식이 풍습을 가지고 있다니……. 저 먼 나라 역사에 이런 내용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본 장을 읽으면서, 얼마나 배고프고 힘들었으면 식인은 했을까라는 측은지심이 들기도 하지만 과연 우리나라에 이런 역사가 있었다니 소름이 돋는다.


보릿고개,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 풀뿌리로 생명을 연연하다 등의 말은 익숙하지만, 실제 우리나라의 생활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글을 읽으며 아픔이 아팠다. 한반도는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라 겨울에서 초봄에는 극심한 식량난을 겪었다고 한다. 보릿고개란 이러한 시기를 뜻하여, 이 시기에 우리 조상들은 기근을 피하여 여기저기 떠돌아다녔다. 또한 산과 들에서 칡뿌리, 솔방울 등을 가루로 만들어 하루하루 연명하였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은 소나무 껍질이나 솔잎 따위의 식물성만 너무 먹어서 변비에 걸려 본을 보기 어려울 정도였던 사정을 반영한 말이다”(303). 심한 기근에는 흙까지 파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극단적인 경우에는 인육까지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도 식인 풍습의 기록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 역사에서, 우리 조상의 삶에서 기근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였는지 느껴진다. 전쟁 시에는 이러한 잔인한 풍습이 통제 불가하였다는 정도이니, 얼마나 기근이 심했을까 싶다. 책에서 인용한 난중치사총록을 적어본다.


“사람들이 서로 죽여서 먹으니 여자와 어린아이는 감히 마음 놓고 나다니지 못했다. 굶어 죽은 사람들이 잇달았는데 굶주린 백성이 다투어 그 고기를 먹고, 심지어는 죽은 사람의 뼈를 발라 즙을 내어 마시기도 했는데, 이들도 발길을 돌리기도 전에 모두 죽었다”


최근까지 비만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어, 우리나라의 비만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시기를 보냈다. 본 책을 읽으며, 우리 조상들은 200년 후에 우리나라가 비만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까무러질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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