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에서 꾸었던 민물장어의 꿈

by 책읽는산타

지금으로부터 무려 10년 전이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 간, 난 줄곧 노량진에 있었다. 가로 30, 세로 30센티미터의 크기로 겨우 밖을 볼 수 있는 창문만이 위안이 되었던 작디 작은 고시원이 있다. 나는 이 곳에서 사람이 배출할 수 있는 온갖 소리를 바로 옆 방에서 줄기차게 들으며 3년을 살았다.



교사 임용시험 합격의 문은 나에겐 정말 좁게만 느껴졌다. 20여 년간 품어왔던 동경의 대상은 나에겐 너무 크게만 느껴졌다. 잠시라도 이 생각을 잊을 수 있는 식후 산책 시간만 기다렸다. 노량진 근처 사육신공원에서 난 줄곧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을 들으며 마음을 다독였다.



저 강물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 신해철 <민물장어의 꿈> 중에서



사회 생활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 나에겐 광화문과 종로 한복판에서 정장을 입고 출근을 하는 직장인이 동경의 대상이었다. 아무리 밖은 지옥이라고, 험난한 파도들이 굽이치는 곳이라고들 하지만 나에겐 그저 딱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손을 뻗어 닿고 싶었던 그런 곳이었다.



노량진에서 공부를 하며 시도때도 없이 권태감이 찾아왔다. 닿고자 하는 곳은 너무 멀어 보이지도 않았고, 내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도 분명치 않았다. 지금 하고 있는 모든 걸 내려 놓고 그저 당장 하고 싶은, 나의 쾌락적인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것만 하고 싶었다.



부끄러운 게으름, 자잘한 욕심들아

얼마나 나이를 먹어야 마음의 안식을 얻을까

- 신해철 <민물장어의 꿈> 중에서



주말이면 노량진으로 술을 마시며 즐기러 오는 사람들을 보며 난 지금 뭐하고 있는 걸까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아디다스 삼선 츄리닝을 입고 삼선 쓰레빠를 끌면서 다녔던 나는, 그들과는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자존감이 낮아질 때마다 교육학개론 책을 일부러 가방 밖으로 꺼내 옆구리에 움켜쥐었다. 목표를 위해서 주변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처럼 나 자신을 코스프레하기 위해.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건, 나와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그래도 적지 않았다는 것 정도였을까. 뭔가 노량진에서 탈출하기 전까지는 이 옷을 입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율이라도 있는 것처럼.



두고 온 고향 보고픈 얼굴

따뜻한 저녁과 웃음 소리

고개를 흔들어 지워버리며

소리를 듣네 나를 부르는

쉬지말고 가라하는

- 신해철 <민물장어의 꿈> 중에서



노량진에서 내 핸드폰은 폴더폰이었다. 뭐 연락이 오지도 않을테지만 카톡을 원천봉쇄하고 딴짓을 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행여나 모를 위험에 빠졌을 때 나를 보호하기 위한, 그런 긴급구조용(?) 정도였다.



그야말로 사회와의 고립이었다. 주말에 부모님과 통화하는 것 이외에는 사람들과 대화도 없었다. 간혹 마트에 들러 점원에게 '수고하세요'라는 말을 할 때 목이 갈라진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입을 계속 닫고 있어서 단내가 나기도 했다.



하루 또 하루 무거워지는

고독의 무게를 참는 것은

그보다 힘든 그보다 슬픈

의미도 없이 잊혀지긴 싫은

두려움 때문이지만

- 신해철 <민물장어의 꿈> 중에서



노량진에서 가장 두려웠던 건, 같은 고시원의 4~50대로 보이는 아저씨를 마주칠 때마다 문득 드는 생각이었다. 저 사람은 무슨 일이 있었길래, 어떻게 살아왔길래 저 나이에 여기에서 살고 있을까. 나도 여기서 빠져 나가지 못하면 여기에 계속 갇혀서 살게 될까. 의미없이 사라지게 되는 건 아닐까.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고 고시원의 닫혀진 작은 공간에서 혼자 산다는 생각을 하면, 지금도 숨이 막혀버릴 것만 같다. 아마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정상이 아닌 삶을 살고 있을 것만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처럼 철저하게 내가 혼자인 시절은 없었다. 가족이든 학교든 어디서든 사람들과 함께였다. 하루를 혼자 시작해 혼자 마무리를 한 날들 속에서 나는 의지 박약하고 게으른 나를 수시로 마주하며 좌절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민물장어의 꿈을 꾸는 또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나의 꿈을 생각하며 정신을 부여 잡았다. '나를 깎고 자르는' 숱한 과정 속에서 나는 매번 쓰러졌다가 일어남을 반복했다.



나는 끝내 민물장어 시절 꿨던, '성난 파도 아래 깊이' 뛰어드는 꿈은 이루었다. 하나 남았던 자존심마저 버리며. 한없이 울고 웃으며 긴여행을 끝냈다고 생각했건만 나는 여전히 그 길 위에 있다.



어쩌면 우리는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기나긴 여행을 계속해나가는 것은 아닐까. 멈추었다 다시,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가 훌훌 털고 다시, 걷다가 혹은 뛰다가.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 신해철 <민물장어의 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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