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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Dec 12. 2020

크렘 드 라 메르를 사봤다.

깊은 구석에 남겨 두었던 화장품에 대한 로망을 다시 한번 내려놓다.


화장품 브랜드 중에서 가격으로 치면 가장 사악하기로 유명한 라메르.

E사에서 오래 근무하셨던 상사에 의하면 크렘드라메르를 오랜 기간 쓰시면서 효과를 톡톡히 보셨다고 했다. 화장품 회사에 10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화장품에 대해서는 속속들이 다 안다지만 그래도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는 로망이었을까? 그래도 화장대에 하나 올려놓으면 왠지 모르게 근사한 느낌이 드는 그 제품을 사 보기로 했다.


크렘 드 라 메르 CREME DE LA MER
리치한 질감과 촉촉한 마무리의 오리지널 럭셔리 크림 (30ml/225,000원)


CREME DE LA MER


화장품 제조사를 다니면서 수 없이 많은 시장조사를 다니면서 구매한 제품의 가격만 해도 수천만 원 수억이 될지도 모르겠다. 고가의 브랜드라고 하면 라프레리, 코스메 데코르테, 나츄라비쎄도 있었고 또 LG나 설화수의 초고가 라인 제품들도 다 구매해봤던 것 같다. 근데 내 기억에 왠지 라메르를 직접 구매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너무 잘 아니까, 그리고 또 너무 많이들 들고 오니까.


화장품 제조사 재직 시절에 너무 많은 브랜드들이 그 사용감을 벤치마크 하기 위해 타깃으로 들고 와서 그 텍스처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다. 아주 꾸덕한 텍스처에 제대로 발리 지도 않지만 왠지 모르게 '피부의 체온으로 부드럽게 멜팅시켜 바른다'는 느낌이 뭔가 있어 보이는 크림. 그리고 피부에 잘 흡수시켜 바르고 나면 은은하게 광을 살려줘서 피부가 좋아 보이는 크림. 그리고 화장대에 올려놓으면 왠지 모르게 근사한 느낌을 만들어 주는 크림.


진짜 저 제품이 비싼 값어치를 할까? 궁금한 마음에 제품을 구매해봤다.

화장품 회사에 다니면서 법인카드로 쉽게 긁었던 그때와는 다르게 좀 더 신중한 마음으로.




화려한 페이퍼 패키지 안에 자리 잡은 고급스러운 오팔 글라스에 담긴 크렘 드 라 메르. 눈으로 보기만 해도 엄청 리치해 보이는 독특한 질감과 짙은 향이 역시 라메르 구나라는 느낌을 주었다. 감성적인 품평은 잠시 접어 두고 전성분을 보았다. 발라보니 역시 미네랄오일과 페트롤라툼(바세린)이 주는 리치하고 풍성한 보습감과 엄청난 차폐력이 느껴지는 텍스처였다.


역설적이게도 요즘 화장품 브랜드들이 무첨가로 내세우는 미네랄오일과 페트롤라툼은 강력 보습으로 유명한 바세린 젤리나 모이스처라이저계에 베스트 셀러로 손꼽히는 크리니크 노란로션, 시슬리의 에뮐씨옹 에꼴로지끄(에센스 로션) 같은 제품들의 핵심 성분이다. 석유계 성분으로 배제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의료용에도 쓰일 만큼 정제된 성분인데도 다양한 브랜드들의 마케팅 덕에 소비자들 눈에는 안 좋게 보일 수밖에 없다. "사실 미네랄오일이나 페트롤라툼 자체가 나쁜 건 아니라지만 그 성분들은 주로 값이 저렴하고 안정하기 때문에 제형에 널리 이용되는 성분인데, 굳이 저렇게 비싸게 판매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나도 의문이다. 하지만 라메르에서 자체 개발한 Miracle Broth™라는 성분이 있고, 그 성분에 담긴 연구의 역사와 가치가 그만큼의 값어치를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전성분>
조류추출물,미네랄오일,페트롤라툼,글리세린,아이소헥사데칸,마이크로크리스탈린왁스,라놀린알코올,라임추출물,참깨오일,유칼립투스잎오일,참깨가루,자주개자리씨가루,해바라기씨드케이크,스위트아몬드씨드케이크,소듐글루코네이트,카퍼글루코네이트,칼슘글루코네이트,마그네슘글루코네이트,징크글루코네이트,마그네슘설페이트,파라핀,토코페릴석시네이트,나이아신,정제수,베타-카로틴,데실올리에이트,알루미늄다이스테아레이트,옥틸도데칸올,시트릭애씨드,사이아노코발아민,마그네슘스테아레이트,판테놀,리모넨,제라니올,리날룰,하이드록시시트로넬알,시트로넬올,벤질살리실레이트,시트랄,소듐벤조에이트,변성알코올,향료 (ILN38611)


그밖에 성분을 요약하자면:

-논란이 있는 성분들이 들어 있다. (석유계 성분들: 미네랄 오일, 페트롤라툼, 파라핀 등)

-주의해야 할 알레르기 유발성분인 향료 알러젠이 7가지 포함되어 있다.
(리모넨,제라니올,리날룰,하이드록시시트로넬알,시트로넬올,벤질살리실레이트,시트랄)

-양모에서 유래된 동물성 성분이 들어 있다. (라놀린알코올)  

-메칠클로로이소치아졸리논,메칠이소치아졸리논 (CMIT/MIT) 성분이 보존제로 소량 함유된 것 같으나 홈페이지에만 기재되어 있음

-Miracle Broth™로 추정되는 마린에서 유래된 성분들과 식물유래 성분들 포함

-미네랄 성분 함류 (구리, 칼슘, 마그네슘, 아연)

-판테놀, 베타-카로틴, 나이아신 등의 활성 성분 함유 (전성분 뒤편에 위치하여 함량은 소량으로 예상됨)


보습력은 물론 좋다. 전성분 앞 두세 번째에 위치한 성분이 미네랄오일과 페트롤라툼이라면 보습력이 우수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보이는 꾸덕한 텍스처만 보더라도 리치함의 결정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텍스처를 바르면서 계속 연상되는 것은 니베아의 파란통 크림. 주요 성분도 비슷하고 향료 구성성분도 거의 비슷한 것을 보니 자꾸 니베아가 생각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오늘에서야 알았지만 영국에서 두 제품으로 실제 인체 효능시험을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결과는 니베아가 더 좋았다는 후문)




화장품은 감성이다. 고가의 제품이면 왠지 모르게 더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패키지가 예쁘면 바르지 않더라도 화장대에 하나쯤 올려 두고 싶어 진다. 이것이 화장품에 대한 로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제품의 성분을 보고 사용해 본 후 '역시나 로망이었구나'라고 느끼며,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았던 로망을 다시 한번 내려놓게 되었다. 다시는 살 것 같지 않지만..  그래도 역시나 화장대 위에 있으니 분위기가 있어 보인다.


논란이 있는 성분은 최대한 배제하면서도

피부에 효능을 줄 수 있는 좋은 성분들은 적정 함량을 적용하여 제품을 개발하는 것

동시에 그 누구에게 보여줘도 분위기 있고 고급스러운 제품을 만드는 것

감성과 효능이 잘 블렌딩 된 브랜드와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앞으로 화장품 브랜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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