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이 '우리'라는 책과 전시가 되기까지
독립 책방에서
독서 모임하며
독립 출판한 이야기
“책을 읽는 자리에서 출발해, 쓰기와 그리기, 출판과 전시로 이어진 여성작가 읽기 모임 기록입니다.”
손바닥에 착 감기는 B6 사이즈. 책등은 고작 8mm였다. 1년의 고독과 연대가 응축된 두께치고는 참으로 얄팍했다. 하지만 8mm에 박힌 우리 이름을 손가락으로 가만히 훑을 때, 비로소 실감이 났다.
"진짜 나왔어요, 우리 책."
책날개를 만들지 말지 고민하고, 완성된 책을 투명 봉투에 소중히 담던 그 유난스러운 손길들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는 그 기세를 몰아 책방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문장'으로 탈바꿈시키기로 했다.
전시명은 책 이름과 같은, <우리가 읽고 쓴 것>.
독서모임에서 마주한 엇갈린 해석과 긴 침묵이 나를 깨웠듯, 독립 책방 또한 단순한 상점이 아닌 '이야기가 발생하는 자리'가 되길 바랐다.
끙차.
그녀들과 함께 요기할 먹거리와 준비물을 차 트렁크에서 꺼내 옮겼다.
시트지, 마른걸레, 본드 제거제, 전시할 그림 액자와 엽서, 각종 굿즈들... 그리고 김밥까지.
"별이야. 이리 와서 앉아." "럭키야 고구마 줄까?"
모임장의 반려견 '럭키'와 버찌책방 마스코트 '별이'가 서가 사이를 배회하며 전시 준비가 시작되었다.
예닐곱 명이 좁은 통로에 엉키고 그 사이 강아지들이 먹고 짖고 싸던(?) 무질서한 생동감이 책방을 가득 채웠다.
"일단 먼저 먹고 시작해요."
누군가 김밥 은박지를 까자 커피 향 가득하던 책방에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훅 끼어든다. 입안 가득 김밥을 밀어 넣고 오독오독 씹으며 우리 키보다 큰 유리창 앞에 선다. 이제부터는 진짜 노동의 시간이다.
박박. 박박박.
유리창에 눌어붙은 해묵은 시트지를 마른걸레로 긁어내기 시작한다. 쇠헤라나 칼보다 강력 것은 결연한 손톱이다. 손톱은 갈라지고 손목이 시큰거린다. 본드 제거제 휘발성 냄새에 어지럼증이 일 때쯤, 끈적이는 과거의 흔적들이 때처럼 밀려 나왔다.
시트지 위 그리드 선이 그려진 투명 필름지에 cm를 재가며 붙이던 찰나. 책방 지기 '버찌'가 말했다.
"이런 투명 필름지까지 보내주는 건 대형 출판사나 하는 일인데. 눈대중으로 붙였지 이렇게 해본 적 별로 없어요."
"역시 우리 마인드만큼은 대기업이다!" 해맑은 K가 던진 농에 와르르 웃었다.
농담 반 진담 반의 수다가 오가는 사이, 오른쪽 어깨 근육이 뭉치고 나서야 투명한 바탕이 드러났다. 깨끗해진 유리에 우리가 사랑하는 작가들의 이름을 한 자 한 자 붙여 나갔다.
"자, 수평 맞나 봐주세요. 조금 오른쪽? 아니, 왼쪽!"
거대한 통창에 시트지를 붙이는 건 혼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왼쪽, 오른쪽에서 시트를 잡아줄 사람, 뒤에서 수평을 봐줄 사람, 아래에서 팽팽하게 당겨줄 사람... 우리가 함께 글을 써온 길처럼, 단순한 시트지 작업조차 서로의 손을 맞잡아야만 수평이 맞았다.
마침내 통창 너머 햇살이 작가들의 이름 뒤로 덧입혀졌다. 너른 창에 박힌 이름들은 책방을 찾는 이들에게 뜻밖의 파동을 일으켰다. 어떤 소설가는 창가에 새겨진 동료들의 이름을 멀거니 바라보다, "내 이름도 저 창에 새겨지는 날까지 열심히 쓰겠다"는 포부를 남기기도 했다.
우리가 손목을 시큰거려 가며 닦아낸 건 누군가의 꿈이 머물 자리였을지도 모른다.
책방 통창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지는 일. 그것이 작가에게 얼마나 묵직한 격려인지 그날 유리창을 응시하던 소설가의 눈빛에서 읽었다.
수평을 맞추고 이름을 새긴 손길은, 작가와 독자가 마주 보는 투명한 통로가 되었다.
한국 문학을 사랑하는 우리 ‘여성작가 읽기 모임’이, 읽고 쓰는 삶을 넘어 건넨 다정한 응원이 창가에 머물러있었다.
한쪽 구석에선 모임장 A가 묵묵히 자신의 책을 싸고 있었다. 지난 1년간 함께 읽어온 한국 문학 작품들이다. 그녀는 마치 아이를 어루만지듯, 판매용 새 책 보다 더 정성껏 비닐 커버를 씌워 '작가 소개 코너'를 만들었다. 유리창에는 이름 석 자로 새겨진 작가들이, 그녀의 손길 끝에선 겹겹이 쌓인 책의 물성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왁자지껄 소음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각'을 잡는 그녀의 손길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이 모임을 여기까지 끌고 온 건 저 고요하고도 단단한 성정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내가 '읽고 그린' 그림이 공간과 어우러지며 입체적으로 살아났다. 전시가 시작되자 오히려 타인의 시선에서 해방되는 묘한 해방감을 맛보았다. 겨울이 저물고 봄이 기지개를 켜는 동안, 나는 부지런히 그림을 갈아 끼우며 공간에 매번 새로운 얼굴을 선사했다.
전시가 끝나고 모두가 떠난 자리, 내 손에는 본드 제거제와 마른걸레가 남았다. 성적표는 무덤덤했다. 매출이나 팔로워 수는 드라마틱하게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리창에 들러붙은 해묵은 시트지를 박박 긁어내며 나는 깨달았다.
세상에 나를 내보인다는 건 역설적이게도 비워내는 일이었다. 인정받고 싶어 안달하며 붙였던 기대들을 떼어내고 다시 투명해지는 과정, 그뿐이었다.
가식의 본드 자국을 지우고 투명해진 유리창 위로, 다시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뜨거운 진심이 고개를 들었다. 이 깨끗해진 마음이면 충분하다고, 이제야 기꺼이 관객을 맞이할 진짜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여기까지로도 충분하다 생각했다. 그런데 연말, 비워낸 유리창 너머로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 우리를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