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재잘거리면 우주가 대답하기도 한다
독립 책방에서
독서 모임하며
독립 출판한 이야기
“책을 읽는 자리에서 출발해, 쓰기와 그리기, 출판과 전시로 이어진 여성작가 읽기 모임 기록입니다.”
우리, 딱 한 분만 더 모실 수 있다면
누가 오셨으면 좋겠어요?
2024년 10월 25일 오후, 책방 안에 '버찌'의 낮은 질문이 흐를 때만 해도 그것은 그저 기분 좋은 백일몽이었다.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외쳤다.
“당연히 김하나 작가님이죠!”
일 년 간 함께 읽은 열두 명의 작가 중 우리 원픽은 단연 김하나였다. 우리는 ‘읽는 사람’들이기에, 독서의 지평을 넓혀주는 그녀의 문장을 만날 때마다 눈이 반짝였다. 그녀의 저서 『금빛 종소리』는 고전 소설이란 세계를 소개하면서도, 격식에 갇히지 않은 '책 읽는 진짜 즐거움'에 대해 몇 번이고 강조한다. 지치지도 않고.
'책에 대해 더 자유롭고도 동시에 더 복종적이기를 원한다'는 작가. '내 멋대로 읽고, 다독을 그리 예찬하지 않'으며 '즐거움만을 취하고 싶어 하는 동시에, 책만이 주는 안도감과 신비를 굳게 믿'는, 그리하여 '수행자처럼 묵묵히 읽어 나가는 내가 공존'한다는 작가.
이토록 자유롭고 유쾌한 고전 읽기라니. 읽는 행위의 다채로움을 긍정하는 그녀 문장을 통해 우리는 ‘완독’이나 ‘해석’의 강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었다. 쉽고 유쾌하지만, 결코 얄팍하지 않은 깊이. 그것이 우리가 김하나라는 세계에 매료된 이유였다.
당시(물론 지금도) 김하나 작가는 도서의 인기와 팟캐스트 활동 등으로 명실상부 출판계 ‘슈퍼스타’였다. 게다가 이곳은 대전 우산봉 아래의 작은 책방이 아니던가. 대중의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그녀를 이 작은 공간에 모신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 생각했다.
너도나도 “김하나!”를 외치며 우리는 그저 기분 좋은 상상에 한바탕 웃었다. 책방 안의 재잘거림은 그렇게 가을 허공으로 흩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때 우리는 몰랐다. 간절함이 담긴 목소리는 가끔 물리적인 거리를 건너뛰어 우주의 안테나에 닿기도 한다는 것을.
...
정확히 6시간 뒤, 핸드폰 화면에 뜬 인스타그램 알림 하나가 정적을 깼다. '띵똥'
김하나 작가의 게시물이었다.
"전국의 금종단을 찾습니다. 북토크 의뢰를 보내주세요."
#금종단은어디에 금빛 종소리 출간 후 여러 행사를 열심히 했는데 이상하게도 오프라인에서 정말 이 책을 사랑하는 금종단과는 만나기가 어려웠습니다. (중략) 저는 이제 마음을 가다듬고 일을 점점 줄여서 다시 금빛 종소리 2 집필 모드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이대로는 제가 너무 아쉬워서 안 되겠어요. 의욕도 안 생길 것 같고요. 그래서 모집합니다. 서점의 크기나 지역은 상관없습니다. 다만 <금빛 종소리>를 정말 좋아하는 분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자리라면 좋겠습니다.
단톡방은 일순간 팝콘이 튀는 가마솥처럼 들끓었다. 수십 개의 느낌표와 춤추는 이모티콘들이 화면을 빈틈없이 메우고, 뜨거운 탄성이 손바닥을 달궜다. 우산봉 아래 작은 책방의 재잘거림이 민들레 홀씨처럼 바람을 타고 작가에게 가닿은 듯했다.
우리는 한마음으로 정성껏 구애의 메일을 보냈다. 단순한 섭외 요청이라기보다, 책 곳곳에 숨겨진 '책 읽는 즐거움'을 발견하며 자유로워진 우리가, 그 고마움을 담아 보낸 정중한 손짓이었다.
올여름 읽은 『금빛 종소리 』는 유독 감각을 자극했습니다.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이미지들이 유영했고, 저는 그것들을 부지런히 드로잉으로 옮겼어요. 제게는 어떤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영감을 주었던, 올해 최고의 책이었습니다.
- 김하나 작가에게 보낸 이메일 일부 -
마침내 수락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불가능해 보이던 백일몽이 현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이었다.
우리의 여름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듯, 마음 깊은 곳에서 금빛 종소리가 공명했다.
일 년 중 밤이 가장 깊은 동짓날, 함박눈이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렸다. 꿈과 현실이 아스라이 겹쳐지는 순간, 나는 눈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의 페이지가 펼쳐지고 있다고 믿었다.
버찌책방 개업 이래 최다 신청자가 몰렸다는 현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서가 사이사이 틈마저 사람들의 열기로 빽빽하게 메워졌다. 영하의 추위를 뚫고 온 이들의 외투에서는 차가운 눈 냄새가 났지만, 서로의 어깨를 맞댄 채 내뿜는 숨결은 금세 실내를 눅진한 열기로 채웠다. 계절을 거스르는 이 기묘하고도 뜨거운 밀도 속에서, 우리는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김하나 작가가 등장하던 순간, 책방은 콘서트장 같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출판계의 '슈스'는 등장부터 달랐다. 무려 깁스를 한 채로 눈길을 헤치며 달려온 그녀의 기꺼운 고단함은 이내 뭉클한 감동으로 변했다.
"뒤에 잘 보이시나요? 불경하지만 두꺼운 책을 깔고 앉아서 할까요?"
엘레나 페란테의 책을 기꺼이 방석 삼아 독자들과 눈을 맞추는 모습. 거침없고 명랑한 태도에 그곳에 있던 모두는 이미 무장해제되었다.
작가는 깁스를 한 채 눈길을 헤쳐 온 고단함 대신, 오늘이 '동지'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오는 길은 무척 고생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정말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여러분 오늘이 동지예요. 일 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긴 날이죠. 근데 이건 다시 바꿔서 생각하면 내일부터는 다시 밤이 점점 짧아진다는 얘기죠. 다시 말해, 태양의 길이가 조금씩 늘어나는 첫날에 여러분과 만난겁니다. 이렇게 만난 것도 너무 좋은 인연이라고 생각해요."
그 말 한마디에 바깥의 혹독한 추위는 녹아내렸고, 우리는 태양을 가장 먼저 목격한 듯 들뜨기 시작했다.
가장 어두운 날에 가장 밝은 목소리를 만나는 기적.
- 2024년 12월 22일 김하나 작가 『금빛 종소리』북토크 中 -
북토크가 끝날 무렵, 사인을 받기 위해 모두들 올망졸망 줄을 섰다. 나는 조심스레 벽면에 걸린 내 그림들 앞으로 작가님을 안내했다. 『금빛 종소리』를 읽으며 여름 내내 곱씹고 길어 올렸던 이미지들. 원작자 앞에서 내 해석의 결과물을 내보이는 일은 마치 비밀 일기장을 들킨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이었다.
"작가님, 이 그림은 카프카 『변신』을 다룬 「어느 낮고 납작한 죽음」을 읽고 그린 거예요."
두서없는 설명 끝에 침묵이 흘렀다. 작가님은 가만가만 들어준 뒤 멈춰 서서 하나하나 깊은 눈으로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고요한 응시가 닿는 곳마다, 여름 내내 종이 위를 부유하던 선들이 제 자리를 찾아 안착하는 기분이었다.
"아! 이건 『아우라』, 이건『순수의 시대 』 노란 장미네요."
그린 의도를 정확히 짚어내는 목소리를 들으며 깨달았다. 지난 계절의 외로운 사유가 나만의 혼잣말이 아니었음을. 독자가 정성을 다해 해석하고 원작자가 그것을 온전히 알아봐 주는 순간, 독서는 비로소 마침표가 아닌 거대한 느낌표로 완성된다. 원작자의 긍정 속에 내 그림은 살아있는 언어가 되었고, 나의 독서는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완결되었다.
*『금빛 종소리 』에 감응을 얻어 그렸던 그림들. 기회가 되면 '읽고 그린 것들'에 관해 글을 써보려 한다.
이 일이 내게 주는 경제적 효용은 사실 0에 수렴한다. 누군가는 무용한 일의 반복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효용으로만 가늠했다면, 폭설을 뚫고 온 이 뜨거운 온기를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나는 오늘도 책이 만들어준 인연의 세계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든다. 그 영감이 나를 다음 계절로 기어이 밀어 올리고 있으므로. 태양의 길이가 조금씩 길어질 내일을 기다리며, 나는 다시 연필을 든다.
그리고, 우리의 놀라운 선물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또 다른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