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삶을 지탱해 준 가장 작고 단단한 존재

강아지 별로 떠난 루니 이야기

by Readraw

더 많은 반려동물 그림

www.instagram.com/nunu_artroom







띵동!

한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작가님!

5개월 전 강아지별로 떠난 반려견의 그림이 갖고 싶어 인스타를 검색하던 중 18년도에 작가님께서 그리신 치와와 그림을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개인 의뢰도 받아주시는지요? 꼭 작가님 그림으로 우리 아가 그림 간직하고 싶습니다.


당시는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던 상황이라 메일을 보고선 의아했다. 그리고 한편으론 아직도 내 그림이 누군가에 가닿을 수 있음에 조금 일렁이기도 했다.

게다가 강아지 별로 떠났다니... 어쩐지 이 그리운 마음은 꼭 그려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From. 누누

안녕하세요. 이렇게 오래전 그림을 보고 찾아주셔 감사해요. 제가 지금은 수업이나 기타 활동을 쉬고 있지만 너무 따스한 마음이 느껴져서 예쁘게 그려드리고 싶어 졌어요 ㅎ 연락처 남겨주시면 제가 필요한 것들과 안내 문자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알게 된 루니의 이야기


2013년, 29살의 여름에 처음 만난 ‘루니’는 저의 서툰 군 생활과 독립을 함께 시작한 가족이었습니다. 군인이라는 직업 때문에 1~2년마다 부대를 옮겨 다녀야 했지만, 루니는 그 고단한 이사길 마다 늘 제 곁을 든든히 지켜준 작은 전우였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서해 최북단의 섬, 백령도에서의 2년입니다. 심장병을 앓던 루니를 데리고 배로 4시간이나 걸리는 섬으로 들어가는 건 큰 모험이었습니다. 병원 하나 없는 그곳에서 혹시나 루니를 잃을까 봐 늘 두려웠지만, 루니는 오히려 저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한 번은 강풍에 제 소중한 초록색 모자가 날아가 버린 적이 있었어요. 포기하고 있던 다음 날, 루니는 산책길에 용케 그 냄새를 맡아 배수로에 떨어진 모자를 찾아주었습니다. 그 낡은 모자는 제게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이 되었죠.


루니가 강아지별로 떠난 뒤, 꿈속에서 다시 만난 루니는 아기같이 뽀얀 얼굴을 하고 털 한 올 한 올이 금빛으로 부드럽게 반짝이며 날개를 단 채 “마중 나갈 준비를 해야 해서 바쁘다”며 설레는 표정으로 날아갔습니다. 신기하게도 일주일 뒤, 루니를 끔찍이 아끼시던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루니는 먼저 가서 단짝이었던 할머니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걸까요?


심장병 약을 먹이며 조금 더 잘해주지 못했다는 자책이 여전히 가슴에 남지만, 루니는 누나 힘들지 말라고 약도 밥도 잘 먹어주던 최고의 젠틀맨이었습니다. 이제 루니는 할머니와 함께 아프지 않은 곳에서 소풍을 즐기고 있을 거라 믿어요.


강아지를 떠나보낸 반려인 중에 죄책감이 없는 반려인도 있을까요?

반려동물은 온전히 나에게 맡기고 모든 것을 반려인이 결정하는 존재이기에 어쩌면 사람을 떠나보낸 것보다 더 큰 슬픔일 수 있다고 어느 책에선가 보았습니다.


자기가 심장병 투병을 오래 하면 누나 고생할까 봐 서둘러 떠난 것 같아요. 루니는 누나 힘들지 말라고 쓴 약도 다른 강아지들과 다르게 잘 먹고 밥도 잘 먹는 천사였어요.


이 글을 쓰며 우느라 녹초가 되어 버렸네요. 왠지 오늘 밤엔 루니가 꿈에 찾아올 것 같아요.





루니 그리며 내가 생각한 건...

루니를 그리며 단순히 예쁜 동물의 외형이 아니라, 그들 뒤에 숨은 사람의 문장을 그려보기로 마음먹었다.


반려동물 그림을 의뢰하는 이들에겐 저마다의 서사가 있었다. 가장 힘든 계절을 함께 견뎠다는 고백, 아이를 떠나보낸 뒤 차마 '죽음'이라 부르지 못하고 '이별'이라 부르며 앓는 밤들. 타지에서 홀로 마음 둘 곳 없을 때 그저 가만가만 곁을 지켜주던 그 눈빛을 잊지 못해 뒤척이다 그림을 찾아보곤 한다. 그리고 내게 연락을 한다.


어떤 이는 다시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겠다 결심하면서도, 이내 그 마음을 거두고 새로운 생명을 품에 안는다. 마치 한 번도 이별해 본 적 없는 사람처럼, 다시는 헤어지지 않을 것처럼 먹이고 입히며 사랑을 쏟는다. 나는 그 기꺼운 마음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어졌다.


내가 그리는 것은 동물이지만, 결국 담고 싶은 것은 사람의 이야기다. 여리고 작은 존재에게 기꺼이 다정을 건네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나보다 약한 존재를 돌보는 평범하고도 위대한 행위가 세상을 한 스푼만큼 따뜻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붓 끝에 맑은 물기를 머금으며 다짐한다. 내가 종이 위에 쌓아 올리는 것은 털 뭉치의 형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생애를 지탱해 주었던 가장 작고 단단한 우정이라고. 이 물감의 번짐이 누군가의 마른 마음에 닿아, 이별 뒤에도 여전히 사랑은 흐르고 있다는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루니는 반려인의 말처럼 천사 같아 보였다. 하얀 함박눈 속에 오목하게 파묻혀 눈송이를 맞이하는 모습은, 지상의 풍경이라기보다 이미 어느 평온한 낙원에 닿아있는 듯했다.


붓 끝에 하얀 물감을 조금 덜어내어 점찍었다. 이 눈송이 하나하나가 루니가 머무는 곳의 온기 어린 안부가 되기를, 그리하여 남겨진 이의 시린 마음을 덮어주는 솜이불이 되기를 바랐다. 마지막 점을 찍어 그림을 보내며 나의 바람이 루니 누나의 밤에 무사히 도착하기를.




루니 사진들



[우리가 함께 기록할 사연을 기다립니다]

* 혹시 펫로스의 긴 터널을 지나고 계시거나, 사진 속 슬픔 대신 그림 안에서 환하게 웃는 아이의 온기를 간직하고 싶은 분들이 계신가요?


여러분의 아이가 가진 특별한 입양 이야기나, 차마 다 전하지 못한 고백들을 제게 들려주세요. 그 사연들을 수채화(혹은 색연필)로 정성껏 옮겨 담으려 합니다.

이 따뜻한 기록들이 모이면 언젠가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세상에 내놓을 계획도 세우고 있습니다.

아이를 그림으로 다시 만나고 싶으신 분, 혹은 여러분의 소중한 서사를 책의 한 페이지로 남기고 싶으신 분은 언제든 편하게 아래 메일로 마음을 보내주세요.


e-mail : sun.youn.1029@gmail.com

반려동물의 사진과 사연을 보내주세요. 반려동물과 함께했던 반려인의 이야기와 마음을 그립니다.

*개인적인 원화 소장을 원하실 경우에는 별도의 비용이 발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