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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서재 Sep 29. 2024

오늘 모처럼 사람을 만났다

박노해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 수록 시


박노해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 수록 시 232쪽 중에서


오늘 모처럼 사람을 만났다


그녀는 반듯하고 편안한 자세로

시선을 바로 하고 나를 응시했다

다정한 미소와 탁 트인 웃음이

자연스런 표정과 진실한 감정이

이야기 흐름 따라 물결치는 사이로

생생한 기운이 우리를 감돌았다


분주한 세상을 배경으로 단 둘이만

여기 지구 행성에 마주앉아 있는 듯

우리는 서로에게 온 존재를 기울여

서로 안에 잠든 무언가를 비추고 일깨웠다


내면에서 나오는 음성의 맑은 파동과 

진심이 담겨 있는 살아있는 어휘에

난 살며시 눈을 감고 미소 지으며

생기 어린 바람결에 나를 맡겨 두었다



그렇게 소음이 흐르는 도심의 카페에서

오롯이 서로를 향해 온전히 몰입하는

속 깊은 만남을 갖고 있었다


오늘 모처럼 사람을 만났다


스마트폰 한번 들여다보지 않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도 않고

잘 보이려 눈치 보며 맞추지도 않고 

대화 사이사이 찾아드는 침묵이 어색해

아무 말이나 꺼내 놓지 않고


그렇게 서로를 '만나버림'으로

삶의 경로를 변경하고 결단하는

깊숙한 떨림이 살아있는 사람


실로 충만하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긴 하루의 생이었다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

제가 '상담할 때 이런 모습이면 좋겠다'고 생각한 바를

박노해 시인이 하나 하나 그려주신 것 같아 놀랐어요.


사람과 진정으로 만난다, 

진심으로 대한다는 게 쉽지 않은 요즘입니다.


식당이나 카페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숙여 스마트폰을 보거나 

함께 전자기기 화면을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까요.


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정말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침묵이 어색해 아무 말이든 던져놓게 되기도 합니다.


시 속의 장면이 심리상담 같다고 느낀 것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온전하게 함께 있는, 

존재하는 경험을 한다는 점에서입니다.


제가 들었던 상담 후기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표현은

"상담사가 나를 존중하는 걸 온 감각으로 느꼈다."

는 말이었어요.


그 말을 듣고 제가 그 분과 상담하는 시간만큼은

온전히 집중하고 있었구나 라고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매 시간 완벽하지 않지만, 

가능한 온마음을 다해 

함께 있으려 할뿐이거든요.


심리상담이 효과가 있다는 건

내담자가 변하는 건

상담사가 억지로 무언가를 해서가 아니라



상담하는 공간과 시간에서 

내담자가 있는 그대로

애쓰지 않고 

꾸미지 않고

맞추지 않고

온전히 존재하도록 


저 또한 함께 있기만 해도 되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시를 읽으며 제가 상담에서 

무언가 효과를 내려할수록

내담자를 변화시키려 애쓸수록

그와 온전히 만나는 것에서

멀어지는 경험이 떠올랐어요.


또 다른 내담자가

'진정 대화다운 대화'를 했다고 

써주셨던 후기를 떠올리며

초심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상담 안에서 자꾸 뭘 하려하기보다

앞에 있는 사람의 온전함을 믿고

내면에 있는 빛이 더 환해지기를.



내담자 위에 잠시 드리워진 

구름 혹은 그림자가 걷어지기를 

기다리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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