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 수록 시
박노해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 수록 시 232쪽 중에서
오늘 모처럼 사람을 만났다
그녀는 반듯하고 편안한 자세로
시선을 바로 하고 나를 응시했다
다정한 미소와 탁 트인 웃음이
자연스런 표정과 진실한 감정이
이야기 흐름 따라 물결치는 사이로
생생한 기운이 우리를 감돌았다
분주한 세상을 배경으로 단 둘이만
여기 지구 행성에 마주앉아 있는 듯
우리는 서로에게 온 존재를 기울여
서로 안에 잠든 무언가를 비추고 일깨웠다
내면에서 나오는 음성의 맑은 파동과
진심이 담겨 있는 살아있는 어휘에
난 살며시 눈을 감고 미소 지으며
생기 어린 바람결에 나를 맡겨 두었다
그렇게 소음이 흐르는 도심의 카페에서
오롯이 서로를 향해 온전히 몰입하는
속 깊은 만남을 갖고 있었다
오늘 모처럼 사람을 만났다
스마트폰 한번 들여다보지 않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도 않고
잘 보이려 눈치 보며 맞추지도 않고
대화 사이사이 찾아드는 침묵이 어색해
아무 말이나 꺼내 놓지 않고
그렇게 서로를 '만나버림'으로
삶의 경로를 변경하고 결단하는
깊숙한 떨림이 살아있는 사람
실로 충만하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긴 하루의 생이었다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
제가 '상담할 때 이런 모습이면 좋겠다'고 생각한 바를
박노해 시인이 하나 하나 그려주신 것 같아 놀랐어요.
사람과 진정으로 만난다,
진심으로 대한다는 게 쉽지 않은 요즘입니다.
식당이나 카페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숙여 스마트폰을 보거나
함께 전자기기 화면을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까요.
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정말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침묵이 어색해 아무 말이든 던져놓게 되기도 합니다.
시 속의 장면이 심리상담 같다고 느낀 것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온전하게 함께 있는,
존재하는 경험을 한다는 점에서입니다.
제가 들었던 상담 후기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표현은
"상담사가 나를 존중하는 걸 온 감각으로 느꼈다."
는 말이었어요.
그 말을 듣고 제가 그 분과 상담하는 시간만큼은
온전히 집중하고 있었구나 라고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매 시간 완벽하지 않지만,
가능한 온마음을 다해
함께 있으려 할뿐이거든요.
심리상담이 효과가 있다는 건
내담자가 변하는 건
상담사가 억지로 무언가를 해서가 아니라
상담하는 공간과 시간에서
내담자가 있는 그대로
애쓰지 않고
꾸미지 않고
맞추지 않고
온전히 존재하도록
저 또한 함께 있기만 해도 되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시를 읽으며 제가 상담에서
무언가 효과를 내려할수록
내담자를 변화시키려 애쓸수록
그와 온전히 만나는 것에서
멀어지는 경험이 떠올랐어요.
또 다른 내담자가
'진정 대화다운 대화'를 했다고
써주셨던 후기를 떠올리며
초심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상담 안에서 자꾸 뭘 하려하기보다
앞에 있는 사람의 온전함을 믿고
내면에 있는 빛이 더 환해지기를.
내담자 위에 잠시 드리워진
구름 혹은 그림자가 걷어지기를
기다리고 싶어집니다.